클래식계 "전문성 없는 성악가 임명은 낙하산" 반발
코리안심포니 국립화 움직임도 공감대 형성 노력 없어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이하 코리안심포니)가 잇따른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논란의 시발은 문화체육관광부가 11일 성악가 최정숙 전 숙명여대 겸임교수를 코리안심포니 신임 대표로 임명하면서 비롯됐다.
최정숙 신임 원장이 메조 소프라노 성악가로 오케스트라 운영이나 클래식 음악 기획, 예술행정 등의 이력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전문성이 없는 성악가를 대규모 오케스트라 책임자로 임명하는 것은 임기말의 낙하산 인사로 볼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바로 제기됐다. 수많은 전문 연주자를 이끌어야 하는 교향악단의 특성으로 인해 성악가가 교향악단 대표를 맡는 사례는 거의 없다는 게 음악계의 중론이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11일 서울 용산구 문체부 저작권보호과 서울사무소 회의실에서 신임 최정숙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대표이사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문화체육관광부] 2022.01.12 digibobos@newspim.com |
박선희 전임 대표의 경우 임명 당시 자격 시비가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에 재직하면서 재단의 주력 사업인 국내 음악영재 발굴과 클래식음악 국제교류에 힘써왔던 전문성이 인정됐다. 베를린 필하모닉, 뉴욕 필하모닉 등 세계 정상급 교향악단과 국내 젊은 음악가들의 협연 무대를 기획하는 등 신진 예술가를 육성하는 일에 경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는 이런 경력을 통해 국내에서 첫 국제지휘 콩쿠르를 개최하는 등의 다양한 사업을 추진했다.
클래식계의 한 인사는 "코리안심포니는 국립오페라단과 국립발레단의 공연에 참여하며 연간 100여회 이상 무대에 서는 매우 중요한 악단인데, 이런 곳의 대표를 성악가가 맡는 것 자체가 넌센스"라고 지적하며 "문체부 고위직과의 친분이 이번 임명의 배경으로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해명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문체부 관계자는 "최 신임 대표를 임명한 건 다양한 경험과 전문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라며 "첫 외국인 예술감독 다비트 라일란트와 같은 학교를 나오기도 한 만큼 적극적인 소통으로 코리안심포니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코리안심포니를 국립교향악단으로 명칭을 개정하려는 움직임도 클래식계의 반발을 사면서 구설수를 부추기고 있다. KBS교향악단은 12일 '국립 명칭 논란에 대한 KBS교향악단 입장'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명칭 개정 움직임을 비판했다.
KBS교향악단은 "현재 우리나라에는 30여 개의 공공 성격의 교향악단이 있고 민간에서 운영하는 오케스트라를 포함하면 그 수는 대략 50여 개에 이른다. 음악대학은 대부분 관현학과를 두고 있으며 심지어 초등학교도 오케스트라를 교육 활동으로 장려하고 있다. 그만큼 다른 장르에 비해 교향악단에 대한 국민 의식은 보편화 되었고 수준 또한 높다"라고 지적하면서 "특정 오케스트라에 '국립'이라는 이름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국립'이라는 이름의 무게와 국격을 고려해 그에 걸맞는 실력과 사회적 공론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에 앞서 KBS교향악단 노조도 7일 성명서를 통해 "최근 서울의 한 공연장 상주단체인 오케스트라를 '국립 교향악단'으로 명칭 변경하는 의견조회 서면이 돌고 있다"며 "과연 해당 오케스트라가 '국립'의 명성에 어울릴만한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KBS교향악단 측은 대통령 해외 순방, 국빈 방한, 올림픽 등 각종 국가 기념식에 KBS교향악단이 함께 했다는 사실을 들면서 "국가대표 교향악단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국가의 각종 행사와 함께 해왔던 역사성이 있어야 하는데 코리안심포니가 과연 그런 역사성이 있느냐"는 입장이다.
KBS교향악단은 1956년 서울방송관현악단으로 출범했지만 69년 교향악단 운영권이 국립극장으로 옮겨가면서 국립교향악단으로 바뀌었다. 81년 운영권이 KBS로 이관될 때까지 '국립' 명칭을 유지했다.
KBS교향악단의 한 단원은 "국립오페라단이나 발레단의 반주만해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해서 KBS로 넘어왔고, 그렇게 40년이 지났다"면서 "이런 점을 볼 때도 코리안심포니의 국립화는 역사성과 명분이 결여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KBS교향악단은 지금도 '국립 교향악단'이라는 도장이 찍힌 악보를 쓰는 등 옛 국립교향악단의 자산을 모두 물려받았다"고 강조했다.
문체부는 코리안심포니의 이사회 의결을 통해 올 상반기 중 이름을 바꿀 예정이다. 명칭도 '국립 교향악단'뿐 아니라 '국립 심포니' '국립 오케스트라' 등을 염두에 두고 변경을 추진 중이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코리안심포니의 한 연주회 장면. [사진=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2022.01.12 digibobos@newspim.com |
문체부 담당자는 코리안심포니 명칭 개정의 배경과 관련해 "정부 예산이 계속 지원된 곳이기 때문에 위상에 맞는 명칭을 위해 변경을 추진 중"이라면서 "코리안심포니'라는 이름에서는 공공 예술단체라는 성격을 알 수 없기 때문에 7~8년 전부터 명칭 변경 제안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코리안심포니가 문체부 산하기관으로 전체 예산 중 70%인 60억원 정도를 매년 국비 지원받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이의 확대 발전을 위해 명칭을 개정하는 것은 순기능적 명분도 있다. 1995년 국립중앙극장 분관으로 설립된 정동극장이 지난해 이름에 '국립'을 추가해 '국립정동극장'으로 바뀐 이후 재건축과 예술단 출범을 확정한 사실처럼 명칭 개정이 발전의 초석이 될 수 있다.
그런데 KBS교향악단이 가장 크게 문제 삼고 있는 점은 문체부가 이런 개정 작업을 추진하면서 공감대 형성에 대한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교향악단의 한 단원은 "단순히 인지도가 낮아서 국립을 붙인다는 취지라고 한다면 누가 이에 대해 공감하겠나"라며 "명칭 개정에 합당한 명분을 찾기 위해서라도 공청회 등의 공개적인 사전 논의 과정으로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공감대 형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몇몇이 밀실에서 밀어붙이는 깜깜이 행정추진이라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3대 빅 오케스트라는 코리안심포니, KBS교향악단과 서울시립교향악단이다.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코리안심포니가 국립교향악단이 된다면 다른 두 교향악단과 차별화되는 역할과 목적을 무엇으로 할지 분명히 밝혀야 하고, 이에 대한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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