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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나선 장애인들, 왜?…20년째 '이동권' 외쳐도 제자리

기사입력 : 2021년12월10일 17:16

최종수정 : 2021년12월10일 17:16

2011년 1차 계획 당시 저상버스 보급률 현재까지 달성 못 해
교통약자법 개정안 발의됐지만 국회에 계류 중

[서울=뉴스핌] 지혜진 기자=지난 3일 오전 서울 지하철 5호선 여의도역에 열차가 멈추고 문이 열리자 전동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나타났다. 일부는 휠체어를 반쯤 걸쳐 놓고 문을 닫지 못하게 막았고, 나머지 휠체어 6~7대는 열차 안으로 진입, 점거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회원들로, 세계 장애인의 날을 맞아 기습시위에 나선 것이다. 이들은 이날 지하철 공덕역에서도 기습시위를 진행했으며,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 집 앞에서도 결의대회를 열었다. 이후 10일까지 이들은 일주일째 지하철 혜화역에서 출근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이 행동에 나서게 된 까닭은 '장애인 이동권'을 주장하기 위해서다. 이동권은 장애인이 자기 결정적인 삶과 사회참여를 위한 요소로 핵심적인 기본권에 속한다.

국내에서는 1997년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 증진에 관한 법률' 이후 2005년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교통약자법)'이 제정됐다. 이후 5년마다 '교통약자이동편의 증진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있으며 현재 3차 계획이 진행 중이다.

'교통약자법' 연내 개정 촉구 지하철 출근 선전전 모습. [사진=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문제는 3차 계획 동안 단 한 차례도 장애인들이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1차 계획 당시 2011년까지 저상버스 31.5%를 도입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제 보급률은 12%에 그쳤다. 2021년까지 계획은 42.1%(1만5178대)지만 2020년 9월 기준 보급률은 28.4%(9791대)에 그쳤다. 지난 15년 동안 1차 계획조차 달성하지 못한 셈이다.

저상버스는 차체 바닥이 낮아 장애인들이 휠체어를 탄 채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오를 수 있으며 출입구에 계단 대신 경사판이 설치된다. 휠체어뿐 아니라 유모차는 물론 노약자들도 쉽게 이용할 수 있다.

전장연은 저상버스 도입률이 저조한 이유에 대해 "관련 법상 저상버스 의무 조항이 없어 지자체나 운수 사업체의 재량에 맡겨지고 있기 때문"이라며 "장애인 콜택시 등을 일컫는 특별교통수단의 공공 운영에도 여러 법률적 사각지대가 있어 지금의 교통약자법은 실효성이 매우 저조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국회에는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40인이 발의한 교통약자법 일부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개정안에는 '저상버스 및 일반버스 대·폐차시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 내용이 담겨 있다.

'지역 간 이동 차별철폐'를 위해서는 ▲특별교통수단 및 (광역)이동지원센터 설치 운영 의무 ▲지역 간 간편 환승체계 구축 ▲(광역)이동지원센터 운영의 공공화 ▲특별교통수단 및 바우처 택시 등의 중앙정부 예산지원 등의 내용이 담긴 심상정 정의당 의원 개정안이 발의돼 있지만, 역시 계류 중이다.

전장연 회원들은 매일 오전 혜화역에 나와 두 법안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하는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선전전도 녹록지 않았다. 첫날인 지난 6일 서울교통공사는 혜화역 2번 출구 엘리베이터를 오전 7시30분부터 1시간30분동안 중단했다.

지난 6일 서울교통공사가 혜화역 엘리베이터를 봉쇄했다. [사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서울교통공사는 "6일 혜화역 출근길 지하철 시위가 예고돼 있었고 4호선 출근길 시민들의 불편이 우려되는 상황이었다"며 "출근시간대만이라도 부득이하게 엘리베이터를 잠정 중단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전장연은 "혜화역에서 지하철을 타지 않고 선전전을 진행하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혔는데도 지하철 엘리베이터 운행을 원천 봉쇄했다"며 "20년을 외쳐도 제대로 장애인의 이동할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현실과 꿈쩍도 하지 않는 국회의 모습과 함께 서울교통공사와 혜화역의 지하철 장애인 엘리베이터 원천 봉쇄는 장애인들의 권리를 토막토막 잘라내며 철저하게 배척하고 무시한 결과"라고 분노했다.

이후 전장연은 지난 9일 서울교통공사, 서울경찰청장, 혜화역장, 종로경찰서장, 혜화경찰서장 등을 장애인권리침해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다.

시민들의 따가운 눈총도 선전전을 어렵게 하는 요인 중 하나다. 전장연 관계자는 "아무래도 출근길에 선전전을 진행하다 보니 시민들로부터 항의를 받는 일도 비일비재하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반대로 응원과 격려를 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는 이들이 힘을 내게 하는 또 다른 원동력이다. 혜화역 엘리베이터 가동 중단 사실이 알려지면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장애인 이동권 집회 막으려고 엘리베이터 사용 막은 혜화역. 어쩜 이렇게까지 잔인한 짓을 벌일까', '혜화역 앞 건물에서는 무장애 예술주간을 하는데 그 앞 엘리베이터 사용을 막다니' 등 항의 목소리가 올라왔다.

10일 기준 서울교통공사에만 70여건의 항의 민원이 접수됐다. 하지만 정기국회 마지막날인 지난 9일까지 교통약자법 개정안은 본회의 안건으로 상정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전장연 회원들은 당분간 선전전을 이어갈 계획이다. 전장연 관계자는 "내년까지도 시위를 이어갈 계획이며 교통약자법이 개정될 때까지 선전전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heyjin@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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