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지역화폐 예산 1조522억→2403억 감축
내년 지방교부금 51.8조→63.4조 11.6조 증가
기재부 "지방교부금 늘려 지자체 선택권 부여"
[세종=뉴스핌] 정성훈 기자 = "지역화폐가 실제로 경기를 살린다. 기재부가 이걸 모를리 없을 텐데 대형유통기업이나 카드사의 이익이 줄어들까봐 걱정한 것이냐. 현장을 체감했다면 어찌 양극화 시정 효과가 큰 지역화폐 정책에 이렇게 만행에 가까운 예산 편성을 할 수 있느냐. 지역화폐 예산을 작년 액수로 복귀시키는 것은 기본이고, 그 이상인 30조원으로 늘려주도록 노력하겠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지난 15일 '지역화폐·골목상권 살리기 운동본부'를 만난 자리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향해 날린 직언이다. 이 후보의 발언은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가 경기를 살리는데 직접적인 도움이 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가능하면 더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 내년 지역화폐 예산 77.2% 축소…당정 갈등 본격화
이 후보의 맹공은 정부가 내년 지역사랑상품권 예산을 대폭 축소하겠다고 밝힌 지난 8월부터 시작됐다. 이미 여당의 대권후보로 낙점이 된 이 후보는 현 정부의 예산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해왔다. 내년에 대폭 줄어드는 지역사랑상품권 예산도 이 후보의 먹잇감 중의 하나가 됐다.
[서울=뉴스핌] 국회사진취재단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 지역화폐·골목상권살리기 운동본부 농성 현장을 방문해 발언하고 있다. 2021.11.15 photo@newspim.com |
정부는 지난 8월 31일 발표한 '2022년 예산안'에서 지역사랑상품권 발행지원 예산을 올해 1조522억원에서 내년도 2403억원으로 77.2% 감축한다고 밝혔다. 코로나19로 인해 한시적으로 늘렸던 예산을 내년도 경기 회복 안정화에 따라 정상화한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여기에 투입하는 예산을 줄여 더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곳에 집행하겠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지역사랑상품권은 지방자치단체가 발행하고 해당 지자체에 있는 자영업자 가맹점에서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상품권을 말한다. 낙후된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지역 내 소상공인을 보호하고자 하는 목적을 갖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시민단체가 지역화폐 실험을 하면서 첫선을 보인 뒤 지자체에도 확산됐다. 지난해에는 '지역사랑상품권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도 제정됐다.
지역사랑상품권은 할인발행과 정책발행(출산지원금, 청년배당, 기초생활수급자 지원금 등 현금성 복지혜택을 지역화폐로 대체해 지급) 두 가지로 구분된다. 통상적으로 정부 지원금은 할인발행을 위해 투입된다. 할인발행은 지역민이 충전을 희망하는 금액에서 10% 할인된 금액으로 판매하는 방식이다. 10% 할인된 금액은 선충전 또는 후충전 방식으로 나뉜다. 선충전은 30만원의 지역화폐를 구매하면 여기에 10%에 해당하는 3만원을 더해 33만원을, 후충전은 우선 30만원을 충전해주고 사용시 10%에 해당하는 금액을 충천해주는 방식이다.
정부가 지역사랑상품권 발행을 본격적으로 지원한건 지난해부터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한 목적이다. 지원 초기에는 10% 할인된 금액의 8%를 국고보조금으로 지원하고 나머지 2%는 지자체가 부담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다 올해는 국고보조금 6~8%, 나머지 2~4%는 지자체가 부담했다. 올해 현재까지 발행된 지역사랑상품권은 20조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9년 발행액(3조2000억원) 대비 6배 이상 늘었다.
당정간 갈등은 기재부가 내년도 예산을 편성하며 내년 지역사랑상품권 발행액을 6조원으로 축소한다고 밝히면서 본격화됐다. 정부 지원 예산도 기존 발행액의 6~8%에서 4%로 줄인 2400억원만 배정했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지역사랑상품권 국고 지원은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정부가 3년간 한시적으로 지원하기로 예정돼 있었다"며 "내년도 코로나 상황이 안정될 것으로 보여 과도하게 증액된 예산을 정상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내년 지방교부세 11조6000억 증액…줄어든 지역화폐 예산의 14배 규모
정부의 지역사랑상품권 예산 축소는 내년 지방교부세가 11.6조원이나 늘어난 점도 반영됐다. 이는 줄어든 지역화폐 예산의 약 14배에 해당하는 큰 규모다.
지방교부금(세)는 국가가 지방교부세법의 규정에 의해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운영에 필요한 재정지원을 위해 지급하는 교부금이다. 교부금은 국가가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을 지원하기 위한 지원금이다. 대표적으로 '지방교부금'과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나뉜다.
정부는 매년 예산을 편성하면서 전체 예산의 일정 부분을 교부금으로 편성한다. 지난해까지 25% 수준이던 교부금 예산은 올해 28%까지 늘었다. 정부는 올해 51조8000억원 규모인 지방교부금을 내년에 63조4000억원으로 11조6000억원 증액하기로 결정했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1.11.09 leehs@newspim.com |
재정당국인 기재부는 증액해준 지방교부금을 지역사랑상품권 발행에 활용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사실상 관련 예산을 축소한 것이 아닌 지자체에 선택권을 준 것이라는 논리다.
홍 부총리는 내년 정부 예산 편성 이후 지난 9월 16일 경제분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내년 지역사랑상품권 예산이 삭감된 데 대해 "지자체도 충분히 발행할 여력이 있고, 정부는 재정 여력 내에서 발행액의 일부를 지원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코로나19 등 여러 변수들을 고려해 적정 지원 규모 등을 다시 협의할 수 있다"며 여지를 남겼다.
최근에는 여당 압박에 예산을 늘리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홍 부총리는 지난 10일 열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서 "국회 예산소위를 할 때 지역사랑상품권 예산을 6조원 보다 늘리는 방향으로 적극적으로 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소상공인연합회 등 소상공인·자영업자 단체들의 입김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정부 관계자는 "대선을 얼마 앞둔 시점에서 700만 자영업자의 표심을 얻기 위한 여당의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면서 "정부도 국회의 요구, 자영업자들의 외침을 모른 채 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js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