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지분 100% 계열사에 물량 몰아주기...전형적 편법승계 문법
2017년 재벌개혁 1호로 지목...제재 수위 부실하다는 지적도
[서울=뉴스핌] 전미옥 기자 = 하림그룹이 경영권 승계를 위한 '일감 몰아주기'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49억 과징금을 맞은 가운데 제재 수위에 대한 시각이 엇갈리고 있다.
시민단체 등에선 재벌개혁 1호 대상으로 지목된 지 4년 만에 이뤄진 제재였음에도 대기업의 편법승계 문제를 원천차단하기에는 다소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반면 업계에서는 하림그룹이 공정위의 과징금이 과도하다며 추후 과징금 취소 청구 소송에 나설 가능성도 언급되고 있다.
재계에서는 '하림처럼 찍히면 안 된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공정위가 하림을 통해 편법 승계 기준을 제시한 만큼 다른 기업들도 계열사 내부거래 등에 조심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장남 지분 100% 계열사에 일감 몰아주기...하림 '편법승계' 철퇴
3일 업계에 따르면 하림그룹은 오너 2세에 대한 승계자금 마련을 위해 부당한 일감 몰아주기을 한 혐의로 지난달 27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 총 48억 88000만원의 제재를 받았다. 하림그룹 소속 계열사들이 김홍국 회장의 장남 김준영 씨가 지분 100%를 소유한 계열사 올품에 부당하게 지원하고 이익을 제공한 행위가 적발돼서다.
하림그룹의 일감 몰아주기 의혹은 김홍국 회장에서 장남 김준영 씨로 지분 승계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하림그룹은 김홍국 회장의 장남 김준영씨가 지분 100%를 보유한 올품이 지주사인 하림지주를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구조다. 하림지주는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이 지분 22.95%를 보유한 개인 최대주주지만 올품(4.36%)과 올품의 100% 자회사 한국인베스트먼트(20.25%) 지분을 합치면 준영 씨의 지분(24.61%)이 더 많다.
하림그룹 계통도. [자료=금감원 전자공시] 2021.11.02 romeok@newspim.com |
공정위는 준영 씨가 최대주주로서 그룹 내 최대 지배력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편법승계 등 문제가 있었다고 봤다. 특히 2012년 김홍국 하림 회장이 준영 씨에게 지배구조 최상단 계열사인 올품(당시 한국썸벧판매) 지분 100%를 물려준 이후 계열사를 동원해 부당한 일감몰아주기를 했다는 판단이다.
조사 결과 하림그룹은 동물용의약품과 사료첨가제 물량 몰아주기, 주식저가 매각 등을 통해 올품(당시 한국썸벧판매)에 70억에 달하는 금액을 부당지원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내 최대 수준인 하림그룹 계열사들이 동물약품과 사료첨가제 구매물량을 올품에 몰아주고 올품은 높은 판매마진을 챙겼다는 것이다. 일례로 팜스코 등 하림 계열 농업회사법인의 올품 약품 사용 비중은 2012년 12.9%에서 2016년 26.1%로 2배 이상 올랐다.
또한 2013년 1월 지주회사 체제 전환 과정에서는 하림지주(당시 제일홀딩스)가 보유하고 있던 올품(당시 한국썸벧판매)의 NS쇼핑 주식이 문제가 되자 이를 현저히 낮은 가격으로 매각한 것도 드러났다. 당시 NS쇼핑의 주가는 하림지주가 한국썸벧판매에 매각한 가격 대비 6.7∼19.1배 높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공정위는 이같은 3가지 행위를 통해 올품이 지원받은 금액이 약 70억원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실제 올품(당시 한국썸벧판매)은 준영씨가 최대 주주로 올라서면서 급격한 외형성장을 이뤘다. 준영씨가 지분을 증여받기 전인 2012년 말 한국썸벧판매의 연결 기준 매출액은 861억원에서 이듬해인 2013년 매출액은 3464억원으로 4배가량 뛰었다. 2013년에는 한국썸벧판매는 당시 하림그룹 지주사 제일홀딩스가 지분 100%를 보유한 양계·축산업체 올품을 흡수합병하고 사명을 올품으로 변경했다.
◆재벌개혁 1호 타깃, 4년 만의 결과...'부족한 제재' 지적도
하림그룹은 2017년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목한 첫 대기업 직원조사 대상 기업이다. 당시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재벌개혁을 전면에 내세웠던 만큼 대기업 총수일가의 편법 승계 등 사익편취에 대한 부당한 관행을 깨부수겠다는 취지였다.
업계에서는 하림의 일감몰아주기 등 문제가 기존 대기업들의 전형적인 편법승계 문법에 따른 것이라고 평가된다. 아들이 100% 지분을 가진 계열사가 지주사를 지배하는 전형적인 '옥상옥(屋上屋)' 구조이기 때문이다. 공정위가 1호 재벌개혁 기업으로 하림을 꼽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공정위 조사 착수 후 이번 제재까지는 4년 이상이 걸리면서 다소 김이 빠졌다. 심사절차를 둘러싼 하림그룹과 공정위 간 줄다리기로 조사 기간이 늘어진 것이다. 2018년 말 하림 측은 공정위에 조사에 참고한 실제 자료를 공개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그러나 공정위가 정상가격 산정에 활용한 제3자 업체들의 거래가격 등은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공개를 거부하면서 2년 반 넘게 소송전 등으로 조사가 멈춰섰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14일 오전 서울 강남구 하림타워에서 열린 'The미식 장인라면' 출시 사진행사에서 모델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1.10.14 pangbin@newspim.com |
장기간 조사기간과 드러난 행위에 비해 부족한 제재라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공정위는 공정거래법 위반과 관련 총수 고발조치도 검토한다고 밝혔지만 직접 증거 확보 미비 등으로 이번 제재에서는 빠지게 됐다. 대기업들의 편법승계에 경종을 울리기 위한 취지였지만 과징금 처분 정도에 그치는 등 한계가 명확했다는 것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경실련 재벌개혁운동본부장)은 "하림의 경우 전형적인 편법승계였음에도 이를 막지 못하는 등 실효성 있는 제재로는 이어지지 못했다"며 "현행 공정위의 일감몰아주기 관련 법규가 충분치 않다는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대주주의 일탈을 막기 위해 경영상 결정에 소수주주들의 동의를 받도록 하는 소수주주동의제를 도입하는 등 제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하림처럼 찍힐라'...숨죽인 기업들
정부의 '재벌개혁' 기조에 기업들은 숨을 죽이고 있다. 재벌개혁 1호로 지목된 하림이 승계 문제를 놓고 수년간 공정위의 집중 포화를 받자 '정부에 찍히면 안 된다'는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번 하림에 대한 과장금 부과로 공정위가 전형적인 편법 승계에 대한 제재를 강화한다는 뜻을 공식화한만큼 경영권 승계 또는 지배구조 개편을 앞둔 기업들은 공정당국과 세무당국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승계 과정에서 불필요한 잡음이 나지 않도록 하는데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하림의 경우 과거 공공연히 이뤄지던 전형적인 편법 승계 문제인데 괘씸죄로 찍힌 것 아니냐는 인식이 높다"며 "최근 기업들의 승계나 상속 관련 자문이 늘어나고 있는데 공정위 기조에 따라 계열사간 거래 문제에서 자칫 부당한 이익수취로 판단될 여지가 있는지 조심하고 신경쓰는 추세"라고 말했다.
하림 측은 이번 공정위 판결에 대해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공정위의 의결서를 송달받으면 이를 검토해 해당 처분에 대한 향후 절차를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만약 과징금 처분 취소 소송 등 법적대응으로 이어질 경우 최소 2~3년 이상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
하림 관계자는 "올품에 대한 부당지원이 없었다는 점을 충분히 소명했음에도 과도한 제재가 이뤄졌다"며 "아직 공정위로부터 의결서를 받아보지 못해 대응방안을 논할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romeok@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