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 2' 김부겸 국무총리의 헌법상 역할 중요
'넘버 1' 대통령에 쓴소리 마다않는 '넘버 2'돼야
[세종=뉴스핌] 오승주 기자 =대한민국 국무총리는 행정부의 '넘버 2'다. 단순한 '넘버 2'가 아니라 국가의 근본체계인 국체(國體)를 규정한 헌법에는 '넘버 1' 대통령에 버금가는 국무총리의 막중한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헌법에서 정부는 '제4장'에 기술돼 있다. '헌법 제4장'은 크게 2개의 절로 구성된다. 각각의 절은 '대통령'(4장 제1절)과 '행정부'(4장 제2절)로 나뉜다.
헌법은 대통령에 대해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 속한다'(제66조)고 규정하면서 행정부 '넘버 1'임을 확인하고 있다. 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한다'(헌법 제86조2항)고 규정해 '2인자'임을 명확히 한다.
헌법체계상으로도 '대통령의 명을 받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행정각부를 이끄는 주체'는 국무총리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국무총리는 대통령 마음대로 임명할 수도 없다. 반드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헌법 제 86조1항)하게 돼 있다. '넘버 1'의 지명은 자유롭지만, 임명은 국민의 대의를 모은 국회를 통해 허락을 받은 뒤에 '넘버 2'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넘버 1'의 뜻대로만 움직이지도 말라고 헌법은 '명령'한다. 국무위원, 즉 장관들은 국무총리의 제청이 있어야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고(헌법 제87조 1항), 국무위원의 해임도 대통령에게 건의(헌법 제87조 3항) 할 수 있다.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에도 적극 관여한다.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는 문서로써 하며, 이 문서에는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이 부서한다.(헌법 제82조)
다시 말해 대통령이 남긴 국법상 행동 모두에는 해당 장관 사인과 더불어 반드시 '국무총리 서명'이 들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넘버1'이 '넘버2'를 패싱하고 해당 장관과 짬짜미해서 결정한 국정행위는 효력이 없다는 의미다.
헌법적으로는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껄끄러운 관계여야 한다. '순응'이 체질인 총리라면 대통령 마음대로 국정을 좌우할 수 있다. 하지만 헌법상 부여한 권한을 국무총리가 제대로 행사하기 시작한다면 대통령이 어긋난 길로 향하도록 국정을 운영하는 것은 힘들다.
우리 헌법이 이처럼 국무총리의 역할을 강조한 것은 대통령과 소통하면서 어긋난 방향으로 나라가 나가지 못하게 견제하라는 의미가 크다. 때로는 '넘버1'에게 쓴소리를 하면서 소통과 협심을 통해 국정을 바른 길로 이끌게 하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역대 정권에서 총리는 '넘버 2'의 위치에 충실한 측면이 많았다. '넘버 1'이 결정한 것을 따르기 위해 정부 내 각 부처를 독려하는 역할에 그쳤다.
원래 '넘버 2'는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많은 자리다. 회사든 어떤 조직이든 '넘버 2'는 '넘버 1'의 심기를 잘 헤아리고 거스르지만 않으면 '넘버 1'도 노릴 수 있다.
가만히 있어도 탄탄대로가 펼쳐진 판인데, 굳이 '긁어 부스럼'식으로 '넘버 1'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은 인간의 심리상 주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일개 회사나 조직이 아닌 국민의 생명과 재산, 안전 등을 책임진 국가 조직이다. 회사나 사조직이야 '넘버 1'의 독선에 '넘버 2'가 입을 다물어도 망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국가는 그렇지 않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국회 임명 동의가 끝난 뒤 취임사를 비롯해 줄곧 '현장과 소통'을 강조해 왔다. 실제로도 현장을 중시하고 많은 곳을 돌아다니며 열정적으로 일을 하는 인물로 유명하다.
하지만 '현장과 소통'만큼 '넘버1' 과 소통도 중요하다. 어디서나 '넘버 1'이 가지는 권위는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어느 사회든 '넘버 1'이 되면 접근이 어렵다. 그나마 '넘버 2'가 '넘버 1'에 접근도 쉽고 견해를 나눌 시간도 많다.
대한민국 헌정사 초유의 '대통령 탄핵심판'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도 이제 1년 남았다. 김부겸 총리가 문재인 정부 마지막 총리로 남을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마지막이든 아니든 김부겸 총리는 제대로 된 '넘버 2'로 자리매김할 필요가 있다.
때로는 '넘버 1'에 듣기 싫은 쓴소리도 서슴지 않고 정권보다는 국민의 이익을 위해 대통령과 제대로 소통하는 '넘버 2'가 되기를 바란다. 그것이 '넘버 2'의 의무다.
fair77@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