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뉴욕타임스(NYT)는 17일(현지시간) "한국과 일본, 호주 등은 코로나19 초기 대응을 잘했으나, 백신 접종이 늦어 경제회복이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NYT는 '이 국가들은 코로나19에 잘 대처했는데 왜 백신은 느린가?'란 제목의 기사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감염률과 사망률 덕분에 코로나19 대응에 시간적 여유를 얻었지만 이를 낭비했다고 평가했다. 한국과 호주의 백신 접종률은 3% 미만, 일본과 뉴질랜드는 1%도 채 되지 않는다고 NYT는 소개했다.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2일 열린 방역대책회의에서 "다방면의 노력과 대비책으로 백신 수급의 불확실성을 현저하게 낮추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다"며 자화자찬을 했다. 심지어 "11월 집단면역이라는 당초 목표달성은 물론 달성 시기를 목표보다 앞당기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변이 바이러스용 개량 백신과 내년도 이후의 백신 확보도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백신 접종률이 3%도 안되는 수준이고, 백신 확보에 국가별 비상이 걸렸다는 상황을 알았다면, 이런 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과연 이 연설문은 누가 작성했고, 누구의 검증을 거쳤을까?
2021.04.19 julyn11@newspim.com |
◆ 백신 확보 실패에도 희망고문 계속하는 정부
18일 기준 국내 백신 접종률은 2.91% 수준이다. OECD 37개 회원국 중 35위로 사실상 최하위다. 당초 정부는 올 상반기 1200만명에게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고, 오는 11월까지 전 국민의 70%가 백신 접종을 마쳐 '집단면역'을 형성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지금 벌어지고 있는 각국의 백신 확보 경쟁과 코로나19 변이 발생 등에 비춰 11월 '집단면역'은 사실상 물거너 간 듯 보인다.
그런데도 정부 인사들은 희망고문을 계속하고 있다. 홍남기 국무총리 직무대행은 19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대정부질문에서 올해 상반기 중으로 1200만명에 대한 백신 공급이 가능하며 11월 집단면역 형성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 같다고 답했다. 홍 직무대행은 "이제껏 정부가 구매 계약을 맺은 것은 1억5200만회분이고 사람으로 치면 7900만명분"이라고 종전 내용을 되풀이했다.
문제는 백신 수급 상황이 녹록치 않다는 점이다. 미국 방역당국자는 물론 화이자와 모더나 최고경영자들까지 "백신을 맞은 사람이 1년 안에 세 번째 접종을 받아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이른바 '부스터 샷'이다. 두 번 맞으면 됐으나 세 번을 맞아야 하니 백신 확보 경쟁이 한층 치열해 질 수 밖에 없게 됐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28일 모더나 CEO와의 화상 통화를 갖고 "2021년 5월부터 4000만 회분을 공급받기로 했다"는 통화 내용을 소개한 바 있다. 정부의 백신 수급계획에 포함된 내용이고, 정부는 아직도 금과옥조로 여기는 듯 하다. 최근 모더나가 "5월 말까지 미국 정부에 1억 회분, 7월 말까지 추가로 1억 회분을 공급할 계획"이라고 밝힘으로써 문 대통령과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가능성이 커졌다. 모더나로서는 미국 정부에 이어 우리 보다 먼저 계약한 유럽연합(EU)·영국·일본·캐나다·스위스·카타르 등에도 공급해야 한다. 유럽연합(EU), 인도 등 주요 백신 생산국들은 수출을 통제하고 있다. 아스트라제네카와 얀센 백신은 혈전 등 부작용이 의심받는 상황이다. 다급해진 정부는 지난주 8월부터 해외 백신의 국내 위탁생산을 한다고 밝혔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없다. NYT가 한국 등 백신 접종이 더딘 나라들을 '굼벵이들(laggards)'이라고 했듯이 백신 확보가 더욱 더뎌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 4차 팬데믹 우려 커지는데 믿음 못주는 방역당국
이달 들어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가 크게 늘어나면서 4차 대유행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최근 몇일새 600~700명 선을 오르내리고 있다. 19일 500명대로 줄었으나, 이는 휴일 검사건수 감소에 따른 것이어서 추세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방역당국의 설명이다.
업친 데 덮친 격으로 방역당국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도 예사롭지 않다. 민감한 사안들에 대해 제대로 발표하지 않는다는 의심 때문이다. 장기간 이어지고 있는 엄격한 방역수칙에 지칠 데로 지친 국민들로서는 방역당국의 발표가 믿음을 주지 못한다면, 그 혼란은 가중될 수 밖에 없다.
K방역의 성과로 칭송받았던 K주사기에 대한 정부의 최근 대응은 국민들의 불신에 부채질한 꼴이 됐다. 'K주사기'에서 이물질이 발견돼 사용중지 후 회수조치에 들어간 것. 문제는 이물질이 발견됐다는 신고가 접수된 지 20일이 지나서야 사용중지 조치가 이뤄졌다. '늑장조치', '밀실방역'이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이에 앞서 백신 접종 후 나타난 희귀혈전 논란도 있다. 지난달 유럽에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희귀혈전증 논란이 발생했으나 백신추진단은 "혈전과의 관련성이 확인된 사례는 없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다음날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국회에서 "사망 사례 중 1건의 부검 소견에서 혈전 생성이 보고됐다"고 밝히면서 거짓말 논란이 불거졌다. 추진단은 "혈전 이상반응으로 보고된 게 아니라 사망사례로 보고됐기 때문에 더 정확한 조사가 필요했다"는 취지의 구차한 해명에 그쳤다.
청와대 비서실에 새롭게 마련한 방역기획관에 대한 논란도 거세다. 지난해 9월 효율적인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질병관리청을 출범시켰으나 불과 7개월여 만에 청와대에 방역담당 참모를 둔 것은 사실상 K방역의 실패를 인정한 것과 다를바 없다.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청와대 비서실에 방역기획관을 둠으로써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 간 업무 중복 문제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옥상옥 논란도 피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기모란 국립암센터 교수가 방역기획관으로 임명됨으로써 방역행정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은 증폭될 수 밖에 없다. 기모란 교수는 백신 확보 논란이 한창일 때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 도입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거나, "백신 접종을 늦게 시작하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등의 발언으로 상황을 호도했던 인물이다. 이처럼 현실 인식이 떨어지는 사람을 청와대에 앉힐 경우 잘못된 정보와 판단으로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에 간섭할 경우 K방역이 더 큰 혼선을 빚을 것은 명약관화하다. 문 대통령이 지난 12일 방역대책회의에서 했던 발언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이처럼 우리 정부의 코로나19 방역이 실패로 귀결되는 가운데 백신 접종율 세계 1위인 이스라엘 국민들이 마스크를 벗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많은 국민들이 부러워했을 것이다. 여기에 백신접종 여행 상품까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탈리아 한 여행사는 지난 17일(현지시간) 홈페이지에 화이자·모더나·스푸트니크V·시노팜·아스트라제네카 등 모든 종류의 백신 접종이 가능하다는 3박4일 세르비아 여행상품을 내놨다. 미 알래스카주는 "오는 6월 1일부터 알래스카 내 앵커리지, 주노, 케치칸, 페어뱅크스 공항 등 4개 공항에 입·출국하는 관광객에게 백신을 무료 접종하겠다"고 최근 밝혔다. 침체된 관광업을 살리기 위해서다. 미국에선 화이자·모더나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노르웨이에선 러시아가 개발한 스푸트니크V 백신을 맞고 관광도 하는 상품을 출시했다. 우리 국민들 사이에서 백신 여행 바람이 불지 않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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