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의혹 제기 수준에서도 신사업 막혀
예측가능성·합리성 높이도록 손질 서둘러야
[서울=뉴스핌] 이고은 기자 =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힘이다. 단순 의혹 제기 수준에서도 신사업 진출이 막히고, 까딱하면 다른 계열사의 잘못까지 연대책임을 진다."
여의도 증권가에서 때마다 심심치 않게 흘러나오는 말이다. 얼마 전 마이데이터 사업 인가를 놓고 이 같은 볼멘소리가 터져나왔고, 최근에는 신한금융지주에 중징계가 사전통보되면서 같은 목소리가 나왔다. 바로 금융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두고 하는 얘기다.
여의도 증권가 / 이형석 기자 leehs@ |
금융회사는 금융당국의 인허가가 필요한 신사업을 추진할 때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거쳐야 한다. 대주주가 형사소송 혹은 금융당국의 제재 절차가 진행중이라면 해당 금융회사는 1년간 당국의 인·허가가 필요한 사업에 진출할 수 없다.
그러나 이 같은 제도가 형평성에 맞지 않고 모순적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두 계열사의 잘못으로 지주사까지 징계를 받는다면 아무 관련없는 계열사도 신사업 진출이 막힌다. 최근 신한금융지주 사례가 바로 그 예다.
금감원은 라임펀드 관련 책임을 물어 신한금융지주에 대해 기관경고를 사전통보했다. 라임펀드 판매 책임이 있는 신한금융투자나 신한은행은 물론이고, 관련이 없는 신한생명까지 신사업 진출이 막히는 '연대 책임'을 질 위기에 처했다.
신사업 진출에 있어 본 회사의 문제보다 대주주의 문제가 더 치명적인 것도 모순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지난 1월 마이데이터 인가에서 미래에셋대우의 외환관리법 위반 의혹이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이 때문에 미래에셋대우가 대주주인 네이버파이낸셜은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통과하지 못할 뻔 했으나, 정작 미래에셋대우의 마이데이터 인가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네이버파이낸셜은 미래에셋대우가 보통주를 전환우선주로 전환해 의결권 일부를 포기하며 인가를 통과할 수 있었다.
진실이 규명되지 않은 단순 의혹제기 수준에서도 금융회사의 신사업 진출이 막힐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합리적인 기준 없이 제도가 남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하나은행·하나금융투자 등은 지난 2017년 최순실 사건이 문제가 되며 마이데이터 사업 진출이 좌절됐다. 하나은행이 지난 2017년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씨에 대한 특혜대출을 해줬다는 의혹을 시민단체가 고발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금융 당국은 최종 무혐의 결론이 날 때까지 인가를 보류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나, 해당 사건은 약 4년째 수사에 진척이 없는 상태다. 언제 결론이 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금융 계열사의 신사업 진출이 기약 없이 가로막혔다.
금융당국도 대주주 적격성 심사의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다. 도규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 1월 금융업권 간담회에서 "심사중단제도에 대해 예측가능성과 합리성을 제고할 수 있는 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마련하겠다는 개선안은 두달째 감감무소식이고, 대주주 적격성 문제로 신사업 진출이 막힐 것을 우려하는 금융회사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당국이 혁신을 가로막는 구시대적인 제도에 과감히 칼을 들이댈 때다.
goe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