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보, 3년 연속 민주당 출신 주요직에 임명
문 대통령 "낙하산·보은 인사 없다" 약속
'전문성' 여부가 관건, '최소요건 명시'도 방법
[편집자] '야금(冶金)'은 돌에서 금속을 추출하는 기술입니다. 국민생활과 밀접한 금융에선 하루가 멀다하고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지만, 첫단부터 끝단까지 주목받는 건 몸집이 큰 사안뿐입니다. 야금 기술자가 돌에서 금과 은을 추출하듯 뉴스의 홍수에 휩쓸려 잊혀질 수 있는 의미있는 사건·사고를 되짚어보는 [한국금융의 뒷얘기 야금야금] 코너를 종합뉴스통신 뉴스핌이 선보였습니다.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이후 개선된 건 있는지 등 한국금융의 다사다난한 뒷얘기를 격주 금요일 만나보세요.
[서울=뉴스핌] 박미리 기자 = "공공기관 인사에 있어 부적격자, 낙하산 인사, 보은 인사는 없도록 하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초 여야 4당 대표들과의 오찬회동에서 한 말이다. 낙하산 인사는 전문성과 관계없이 높은 사람의 영향력을 타고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을 가리킨다. 마치 위에서 낙하산을 타고 툭 내려온 모습이라 '낙하산 인사'로 불려왔다. 하지만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 논란은 이번 정권에서도 결국 사라지지 않은 모습이다. 정권 말이 되자 낙하산 인사, 보은 인사가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 예보, 수출입은행 등 줄줄이
금융권이 대표적이다. 예금보험공사는 지난 2일 박상진 전 국회사무처 특별위원회 수석전문위원(차관보급)을 상임이사로 선임했다. 박 상임이사는 제13회 입법고시에 합격해 국회사무처 정무위원회 전문위원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문위원, 기획재정위원회 전문위원 등을 지낸 인물이다. 지난해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속초·인제·고성·양양 예비후보로도 출마했다. 특히 예보는 작년 10월 이한규 전 민주당 정책위원회 정책실장을 감사로 선임했다. 그 역시 지난해 총선에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후보로 나와 비례 10번을 받았다. 2019년 선임한 김영길 전 상임이사도 민주당 정책실장이었다. 같은 당에서 3년 연속 예보 주요직을 차지한 것이다.
수출입은행은 올해 초 김종철 전 법무법인 새서울 대표변호사를 상임감사로 임명했다. 그는 국회 윤리심사자문위원, 보건복지부 고문변호사, 대한변협 법관평가특별위원장 등을 지냈다. 문재인 대통령과 경희대 법학과 동문이고 대선캠프에서 법률자문역을 맡은 경력에 이목이 집중됐다. 최근에는 IBK기업은행이 정재호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상임감사로 선임했다. 정 감사는 외환은행 신용카드사 노조위원장, 노무현 대통령비서실 사회조정비서관, 국무총리실 민정수석, 더불어민주당 노동위원회 대변인 등을 거쳐 20대 국회의원(정무위원회 소속)을 역임했다. 금융권과 인연이 깊다고 평가되나, 일각에서는 21대 국회 공천 컷오프에 따른 보은인사 아니냐는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인사가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한국기업데이터도 차기 대표이사 선임을 앞두고 시끄럽다. 노조는 "대표와 임원들이 3년마다 모두 바뀌고 주식회사임에도 모두 청와대에서 임명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번에도) 전형적인 '청와대 밀실인사'로 진행되고 있다"면서 선임 절차를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반발하는 중이다. 이에 앞서서도 지난해 한국자산관리공사가 이인수 전 캄보디아증권거래소 이사장을 감사로 임명해 노조와 크게 갈등을 빚었다. 출근 저지 운동까지 벌어졌을 정도다. 한국주택금융공사는 사장, 감사, 비상임이사가 민주당 당직자 출신으로 채워져 논란이 됐다. 대부분 업무 연관성이 적은 경력으로 '전문성'을 지적받았다.
◆ 매 정권 논란, 해묵은 논제
사실 낙하산 인사 논란은 해묵은 논제다. "정권 초에 한 번, 그 자리 임기가 끝나는 쯤인 정권 말에 한 번 이렇게 낙하산 인사가 두 번 이뤄진다고들 하죠. 정권이 끝나도 낙하산 인사 임기는 계속되니까…. 특히 이번에 환경부 전 장관이 (산하기관 임원들에 사표를 제출하게 한 혐의로) 실형까지 받았잖아요. 임기가 보다 확실히 보장된 거죠."(금융권 한 관계자) "다음 선거를 감안하면 공신들의 자리를 챙겨주지 않을 수 없을 거예요. 그래야 다음 선거에도 이들이 도와주지 않을까요. 다들 당선 전에는 안하겠다고 하고선 실제로는 자리를 챙겨줬죠."(금융권 다른 관계자)
문재인 대통령도 '낙하산 근절'을 약속했다.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집 '나라를 나라답게'에는 4대 비전과 이를 실천할 12개의 약속이 담겨있다. 이중 1대 약속이 '부정부패 없는 대한민국'이다. "'촛불의 민심, 국민의 명령'은 우리에게 부정부패 없는 대한민국을, 새로운 민주사회를 건설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러한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받들어 부정부패없는 대한민국을 만들어나갈 것이다…(중략)…적재적소 인사로 신뢰받는 공직사회를 만들겠다. 능력과 전문성에 기초한 공정하고 투명한 공직인사로 대전환하겠다"('나라를 나라답게' 발췌) 여기에다 "공공기관 인사에 있어 부적격자, 낙하산 인사, 보은 인사는 없도록 하겠다"는 약속까지 더해지니 기대가 컸던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크게 달라진 건 없는 모습이다. 앞선 사례 외에 지난해 9월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정무위원회 소관 정부부처 및 공공기관 40곳에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임명된 인사는 총 197명이었고 이중 36%(71명)가 문 대통령과 개인적인 인연이 있거나 문 대통령 대선캠퍼 출신이거나 민주당 출신이었다. 내 일이 아닐 때는 지적하고 내 일일 때는 시도하는 사안이 낙하산 인사인 셈이다.
현실적으로 한국 정치풍토에서 보은 인사를 근절하기란 어려워 보인다. 요즘 기업이 외부출신 인사를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도 아니다. 그래도 낙하산 인사는 근절할 수 있다. 최소한 선임된 외부인사의 삶의 궤적에서 업무를 수행해낼 수 있는 '자질'과 '전문성'이 보인다면 말이다. "진짜 해도 너무하다 생각이 들 정도는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전문성 있다고 여길 정도는 돼야하지 않을까요."(한 노조 관계자) "낙하산 인사는 경제 발전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아요. '금융권, 중소기업 등 특정분야에 몇년 이상 재직한 자' 등의 규정을 만든다면 전문성 요건을 어느정도 보완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김대종 세종대 교수)
milpark@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