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수사지휘권 폐지에 경찰 1차 수사종결권 부여
수사권 조정 시행령으로 검찰 권한 늘려 취지 퇴색 지적도
영장심의위로 검찰 독점 영장청구권 견제…강제력 없어 한계
[서울=뉴스핌] 한태희 기자 = 경찰은 새해부터 검찰 수사지휘에서 벗어나고 자체 수사종결이 가능해졌다. 형사소송법(형소법) 제정 67년 만에 검찰과 형식상 대등한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하지만 수사권 조정 시행령 등 검찰이 경찰을 지휘하고 통제할 수 있는 장치가 곳곳에 박혀 있어 '무늬만 대등한 위치'라는 지적도 나온다.
1일 경찰청에 따르면 이날부터 시행되는 수사권 조정 핵심은 ▲검사의 수사지휘권 폐지 ▲경찰에 1차 수사종결권 부여 ▲검사의 직접 수사 범위 제한 등이다.
◆ 검사의 수사지휘권 폐지하고, 경찰은 1차 수사종결권 행사하고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수사권 조정안의 성과 중 하나는 검찰과 경찰 관계를 수직 관계에서 상호 협력 관계로 바꿔놨다는 점이다. 기존 형소법에는 '수사관, 경무관, 총경, 경정, 경감, 경위는 사법 경찰관으로서 모든 수사에 관해 검사 지휘를 받는다'고 명시돼 있었다.
하지만 수사권 조정에 따른 형소법 개정안에는 '검사와 사법경찰관은 수사, 공소제기 및 공소유지에 관해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문구가 새로 담겼다.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 이후 검찰의 수사 지휘를 받던 경찰이 2021년부터 대등한 위치에 놓이게 된 것이다.
검사 수사지휘권 폐지와 함께 경찰의 1차 수사종결권 행사는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경찰의 대변화로 꼽힌다. 지난해까지 경찰이 사건을 입건하고 수사를 종결할 때 검찰에 모두 송치해야 했지만 올해부터는 경찰이 자체적으로 수사를 끝낼 수 있다. 경찰은 혐의가 인정된 사건을 검사에게 넘기고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사건을 자체 종결할 수 있다.
[사진=김아랑 기자] |
국민들 입장에서는 사건 처리가 빨라지고 중복 조사 부담이 줄어든다는 장점이 있다. 경찰청 범죄통계를 보면 경찰은 10명 중 4명을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긴다. 2019년 불기소 의견 송치자와 기소 의견 송치자는 각각 70만7897명, 98만5923명으로 집계됐다.
김영수 치안정책연구소 연구부장은 "과거에는 경찰이 한번 수사한 사건을 검찰이 다시 들여다 보고 필요하면 불러서 조사를 했다"며 "이중 조사 부담이 생기는데 경찰이 1차 수사종결권을 갖게 됨에 따라 중복 조사 부담을 줄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경찰이 1차 수사종결권을 남용, 사건을 덮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검찰이 경찰에서 불송치한 사건을 90일 동안 들여다보고 재수사 요청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형소법 개정안에 담겼지만 검찰 반발이 거센 이유다.
최근 불거진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사건이 대표적 사례다. 경찰은 차량이 멈춘 상태였기 때문에 특정범죄가중처벌에 관한 법률상 '차량 운행 중'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단순 폭행죄를 적용했고, 이마저도 택시기사가 처벌 불원 의사를 밝혀 사건을 내사 종결했다. 하지만 경찰의 '봐주기 조사'라는 비판이 커지면서 검찰이 직접 수사에 나섰다. 검찰 관계자는 "경찰에게 수사종결권을 부여한 만큼 검찰이 이를 통제하고 감시할 권한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지난 9월 법무부 단독 주관으로 마련된 수사권 조정 시행령(대통령령) 개정 과정에서 90일이 지난 뒤에도 검사가 언제든 재수사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통제장치가 추가됐다. 이에 경찰 내부에서는 시행령으로 1차 수사종결권을 무력화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 관계자는 "검사의 통제 권한을 대통령령에서 다수 신설해 오히려 검찰권을 강화했다"며 "경찰의 수사종결권을 형해화시킴으로써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검사의 직접 수사 범위 제한도 당초 법 개정 취지가 퇴색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검찰청법 개정안은 검찰의 직접수사권 축소를 위해 검사의 수사 개시 범위를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등 6개 범죄로 한정했으나 시행령 마련 과정에서 마약범죄가 경제범죄에 들어갔다. 경찰 내부에서는 "마약을 6대 범죄에 욱여넣었다. 마약이 무슨 경제범죄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 검찰 영장청구권 독점 여전…강제력 없는 영장심의위 실효성 의문
수사에 어느 정도 책임을 갖게 된 경찰 입장에서 영장청구권은 여전히 남은 과제다.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해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해야 한다'는 헌법 조항에 따라 영장청구권은 검찰이 독점하고 있다. 지난해 검찰개혁 일환으로 진행된 수사권 조정 논의 과정에서 영장청구권이 빠진 것도 개헌 사안이기 때문이다.
경찰은 영장청구권 없는 1차 수사권은 의미가 없다는 입장이다. 수사 때 압수수색으로 대물(對物)에 대한 증거 확보, 체포에 따른 대인(對人)에 대한 증거 확보가 중요한데 영장청구권이 없으면 수사에 차질을 빚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수사경찰 관계자는 "이미 영장 신청 단계에서 경찰은 검찰에 종속되는 구조"라며 "경찰에 영장청구권을 주고 발부 여부는 법원이 판단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검찰이 경찰의 영장 신청을 거부하는 방법으로 수사를 무력화시키는 일이 잦았다는 지적도 있다. 2012년 11월 희대의 다단계 사기범 '조희팔 사건'이 일례다. 당시 경찰은 '조희팔 측근으로부터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김광준 전 서울고검 검사에 대해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으나 검찰이 불청구했고 이후 특임검사를 임명해 논란이 일었다. 또 다른 수사경찰 관계자는 "피해자를 협박하는 피의자를 검거한 후 2차례에 걸쳐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검사가 불청구해 석방된 피의자가 4일 만에 피해자를 찾아가 살해한 적도 있다"고 했다.
[서울=뉴스핌] 백인혁 기자 = 김창룡 신임 경찰청장이 2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제22대 경찰청장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2020.07.24 dlsgur9757@newspim.com |
경찰은 개헌 대신 영장심의위원회(영장심의위)를 신설해 검찰의 영장청구권 독점을 견제할 계획이다. 수사권 조정 후속 조치에 따라 새해 각 고등검찰청 산하에 영장심의위가 꾸려진다. 경찰은 영장을 신청한 지 5일이 지나도록 검찰이 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하지 않거나 검사가 보완 수사 요구 없이 영장을 법원에 청구하지 않으면 영장심의위에 심의를 요청할 수 있다.
영장심의위는 심의 신청이 들어오면 10일 안에 회의를 열어야 한다. 영장심의위는 법조계와 언론계, 학계 추천을 받은 전문가 20~50명으로 구성된다. 심의 날짜가 잡히면 무작위 추첨을 통해 9명이 회의에 참석한다.
문제는 영장심의위 결과에 강제력이 없다는 점이다. 영장심의위에서 검찰에 영장을 청구하라는 결과를 통보해도 검찰은 이를 이행하지 않아도 된다. 법무부가 마련한 영장심의위 규칙을 보면 '검사와 사법경찰관은 위원회 심의 결과를 존중해야 한다'고만 적혀 있다.
일선 경찰서의 수사 담당 경찰관은 "증거 인멸·훼손을 막거나 피의자 신병을 빠르게 확보하기 위해 영장을 발부 받는 것"이라며 "영장심의위 심의 결과에 불복했을 때 다시 심의 요청하는 등 수사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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