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갤러리, 제니 홀저 개인전 12월 10일~내년 1월 31일 개최
'뮬러 보고서' 바탕으로 제작한 회화 소개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40여년 간 언어를 매개로 정치적·사회적 이슈에 대한 생각을 담은 작품을 선보였던 제니 홀저(70)가 미국의 비밀 정부 문서를 바탕으로 한 회화를 선보인다.
국제갤러리는 지난 10일부터 미국의 현대미술가 제니 홀저의 개인전 'It's Crucuial to have an active fantasty life(생생한 공상을 하며 사는 것이 중요하다)'의 막을 열고 전시장 K2, K3에서 내년 1월 31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2004년과 2011년 이후 국제갤러리에서 9년 만에 세 번째는 열리는 전시인 동시에 국내서는 올해 여름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선보인 LED 작품 '당신을 위하여' 공개 이후 약 5개월 만이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ultimate(detail), 2020 Graphite and watercolor on paper 90.8 x 69.2 cm © 2020 Jenny Holzer, ARS [사진= Filip Wolak/국제갤러리] 2020.12.11 89hklee@newspim.com |
문학과 기록에서 발췌한 글귀를 LED에 담아 자신의 철학을 밝혀온 제니 홀저는 이번 전시서도 자신의 주관을 뚜렷하게 담은 LED 작품과 회화 작품으로 관람객과 만난다.
국제갤러리 K2 전시장에는 제니 홀저의 연작 검열회화가 벽면을 채운다. 린넨에 유화를 입히면서 미국 정보 공개법에 따라 공개된 정부 문서를 회화로 번안하는 방식이다. 이미 상당히 검열된 상태로 기밀 해제된 미국 정부 및 군부 문서가 작가의 손을 거쳐 거대한 추상화로 재탄생했다. 정부문서 상의 검정색 검열 막대는 다채로운 금밫과 은박으로 변모했다.
K2의 다른 벽면은 홀저의 최신 수채화 연작으로 꾸며졌다. 2016년도 미국 대선 당시 러시아 정부가 트럼프 후보의 당선을 도왔다는 의혹에 대한 FBI 수사 결과를 담은 '뮬러 보고서'를 바탕으로 제작한 작품이다.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추문'과 '궁극의 죄악' 등 각기 대담한 제목이 붙은 이 36점의 신작 수채화는 지난 분열의 시대를 회고하며 곧 다가올 화합의 시대를 희망한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False, 2020 Caplain gold, moon gold, and palladium leaf and oil on linen 147.3 x 111.8 x 3.8 cm © 2020 Jenny Holzer, ARS [사진= Jonathan Verney/국제갤러리] 2020.12.11 89hklee@newspim.com |
제니 홀저는 최근 국제갤러리가 공개한 인터뷰 영상에서 회화 작품을 하기까지 다소 망설였다고 밝혔다. 그는 "언제나 페인팅 작업을 하고싶었지만 1970년대 실패를 맛본 후로 줄곧 머뭇거렸다"며 "뮬러보고서를 보고 담답함을 느끼던 찰나에 수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그 위에 페인팅 작업을 하기로 결심한 게 수채화의 출발"이라고 귀띔했다.
이 회화와 수채화 앞에는 벤치 모양을 한 대리석 작품이 여러개 설치돼 있다. 상판에 새겨진 텍스트를 손가락으로 따라 읽는 과정에서 관람객은 본능화된 독해 과정을 새삼스럽게 의식하며 감정의 범주와 이해의 범주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갖는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dirt on HILLARY CLINTON, 2020 Ink and watercolor on paper 90.8 x 69.2 cm © 2020 Jenny Holzer, ARS [사진=Filip Wolak/국제갤러리2020.12.11 89hklee@newspim.com |
제니 홀저는 작품에 둔 자신의 철학에 대해 "제 메시지는 작품이 대신 전해주리라 기대한다"고 말을 아꼈다. 그러면서 이번 전시 제목으로 메시지를 암시했다. 그는 이번 전시 제목인 '생생한 공상을 하며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평소 진심으로 믿고 따르는 문구를 제목으로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K3에는 네 점이 LED 작품이 설치된다. 다양한 물질성을 매개로 전달되는 텍스트의 영향력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다시금 엿볼 수 있는 LED 라는 매체는 작가가 1980 년대 초반부터 즐겨 사용했다.
이에 대해 제니 홀저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 바 있다. 제니 홀저는 "LED 사인의 주요 기능 중 하나는 움직일 수 있는 능력에 있는데, 나는 이것이 구두로 전달하는 말과 너무 비슷하여 좋아한다. (LED 사인을 통해서는) 글자를 강조할 수 있고, 흐르게 하거나 멈출 수도 있는데, 내게는 이것이 마치 우리가 목소리로 내는 억양의 동적 등가물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STATEMENT, (detail) 2015 LED sign with blue, green, and red diodes © 2015 Jenny Holzer, ARS [사진= Collin LaFleche/국제갤러리] 2020.12.11 89hklee@newspim.com |
천장으로부터 수직으로 설치된 LED 작품의 시각적 리듬이 흥미롭다. 3m 가량의 본 LED 작품의 제목은 '경구들(TRUISMS)'(2020)이다. 제니 홀저는 "동서양 철학에 대한 제니 홀저 버전의 '리더스 다이제스트(Readers' Digest)'"라며 '경구들'은 작가가 1970년대부터 꾸준히 모아 다양한 방식으로 시각화 해온 일련의 격언 문구들을 칭한다. 유머러스하면서도 공격적인 일련의 경구들이 국문과 영문으로 번갈아 나타난다.
이 밖에 가로 LED 형태의 '서바이벌(Survival)'과 '리빙(Living)'도 함께 선보인다.
제니 홀저는 전 세계 유수의 미술기관뿐 아니라 다채로운 공공장소에서 꾸준히 작품을 공개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비롯해 독일 국회의사당, 베니스비엔날레, 뉴욕과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 휘트니미술관 등이 있다. 1990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여성 작가 최초로 미국관을 대표했을 뿐 아니라 그 해 황금사자상을 받았으며 1996년에는 세계 경제학 포럼의 크리스탈 상을 수상했다. 오하이오 대학, 윌리엄 컬리지, 로드아일랜드 대학을 비롯해 뉴스쿨, 스미스 컬리지에서 명예학위를, 2011년에는 바나드 훈장을 수여 받았다. 현재는 뉴욕에서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다.
89hk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