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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시론] 못지킨 '당헌', 안지키는 '공약'

기사입력 : 2020년11월02일 17:23

최종수정 : 2020년11월02일 17:24

[서울=뉴스핌] 더불어민주당이 내년 서울 및 부산시장 재보궐선거 후보공천을 위해 당헌을 개정키로 했다. 지난달 31일과 이달 1일 이틀에 걸쳐 '당헌 96조 2항을 개정해 2021년 4월 보궐선거에 후보자를 추천하고자 합니다. 이에 찬성합니까?'라는 문항으로 실시한 전당원 투표에서 86.64%의 압도적 찬성율로 당헌 개정을 결정했다. 당헌 96조 2항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하여 재·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아니한다.'로 돼 있던 것에 '단, 전당원 투표로 달리 정할 수 있다.'는 내용을 추가하면서 서울과 부산시장 후보를 낼 수 있게 됐다.

당헌 96조 2항은 5년여 전인 지난 2015년 개정됐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경남 고성군수 재선거에 대해 "새누리당은 재선거의 원인 제공자이기에 후보를 내지 말아야 한다"고 공세를 폈다. 문 대표는 그후 보란 듯이 당헌 제96조 2항을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하여 재·보궐 선거를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아니한다'로 고쳤다. '부정부패 사건'으로 한정했던 무공천 사유를 '부정부패 등 중대한 잘못'으로 확대하면서 권고 규정을 의무 규정으로 강화했다.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이란 문구를 넣은 것이 화근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표 시절 개정한 당헌을 이낙연 대표가 지키지 못하게 되자 '전 당원 투표'라는 방법으로 이번에 개정키로 한 것이다.

당헌 개정이 결정되던 날, 문 대통령은 지난 1968년 '김신조 사건' 후 52년간 닫혀 있던 북악산 철문을 직접 열어 국민들에게 개방했다. 대통령 대선 후보 당시 공약을 지켰다는 게 청와대 설명이다. 틀렸다. 문 후보는 지난 2017년 1월 "대통령 집무 청사를 광화문으로 옮기고 청와대와 북악산을 국민에게 돌려드리겠다'"고 약속했다. 이 공약의 중요한 전제는 실천되지 않은 채 부가사항인 '북악산 일부'만 개방한 채 공약 이행이라고 내세운 것.
문 대통령의 공약 불이행에 대해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지난 6월 SNS에 올린 글이 세간의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대통령 취임식 때 한 30개의 공약 중 단 1개는 지켰다'는 글이다. 그는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비롯해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다 ▲권력기관은 정치로부터 완전히 독립시키겠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다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겠다 등의 공약을 문 대통령이 지키지 않았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유일하게 지킨 단 하나의 공약은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습니다."라고 꼬집었다.

이낙연 대표는 당원 투표를 통한 당헌 개정을 결정한 배경에 대해 "후보자를 내지 않는 것만이 책임있는 선택이 아니며 오히려 공천으로 심판을 받는 것이 책임 있는 도리라는 생각에 이르렀다"고 했지만 구차하다. 민주당이 당헌에 따라 내년 서울 및 부산시장 재보궐 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을 것이라 믿었던 국민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문 대통령과 민주당의 말 바꾸기와 약속 뭉개기는 새삼스럽지 않다. 고위공직자 인사검증 기준이 대표적이다. 지금은 기준 자체가 의미없어 졌을 정도로 문재인 정부의 고위공직자 인사검증은 날림 그 자체다. '전 당원 투표'라는 요식행위로 원칙을 어긴 것도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총선 때 비례위성정당 창당이나, 지난 2014년 4월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이 시군구 기초의원·기초자치단체장 등 기초 선거 무공천 당론도 전당원 투표를 통해 뒤집었다.
헌법도 바꾸는데 정당의 당헌을 바꾸지 말라는 법은 없다. 대통령의 공약(公約) 도 공약(空約)일 뿐이라면 할 말은 없다. 그래도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됐으면, 국민들에게 사과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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