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뉴스핌] 이민 기자 = 경북 안동시의 대표관광지 하회마을이 최근 주민의 전동차 불법영업 의혹과 무단 증·개축으로 세계유산의 가치가 심각하게 훼손돼 논란이다.
▲ 세계유산 훼손한 '하회마을'…알고도 연간 20여억 원 지원한 안동시
[안동=뉴스핌] 이민 기자 =무단 증.개축된 하회마을. 2020.10.26 lm8008@newspim.com |
현재 하회마을 초가집과 기와집 130여 가구 대부분이 무단 증·개축을 했다. 여기에 관람객들이 출입할 수 없게 대문을 굳게 걸어 잠근 곳도 다반사다. 문화재 보호란 명목이나 실상은 주민이 거주하거나 혹은 거주하지 않더라도 가옥 내부가 지저분해지는 것이 싫다는 게 하회마을 한 주민의 귀띔이다.
확인결과 증·개축은 주로 화장실, 다용도실, 보일러실로 드러났다. 세계문화유산 선정 당시 600여 년 이어온 전통가옥을 앞뒤, 혹은 양옆으로 무단 확장해 현대식으로 고쳤다. 본래 전통가옥 화장실은 집 마당 가장자리나 멀리 떨어진 별도 건물에 마련돼있다.
그러나 하회마을 주민들은 은근슬쩍 무단 증·개축을 자행하면서 문화재청에 '현상변경 허가'를 받지 않았다. 게다가 안동시 역시 이를 알고도 단속은커녕 계도장만 발송해 암암리 눈감아 준 것 아니냐는 비난의 눈총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를 본 관광객 A (49. 서울시)씨는 "세계문화유산을 보전의식 없이 현대식으로 개조한 것이 오히려 처음부터 현대식을 전통가옥처럼 보이게 꾸며 놓았다는 생각이 든다"며 "세계문화유산 기준은 정확하게 모르지만, 수백 년간 주민이 살면서 예전 모습을 그대로 지키고 있어서 선정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5000원의 입장권까지 받으며 원형을 훼손시키면 관람객을 속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람객 B(38.여·부산시)씨는 "실제 초가집이나 문화재 내부를 둘러볼 수 있는 곳이 없어 골목길을 걷거나 가로수길을 걷는 게 고작이다"며 "문화재 보호를 위해 접근금지 표식을 해놓더라도 대문은 열어놓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안동시는 하회마을에 가옥보수 6억 원, 초가집 지붕 이엉잇기 5억 원 등 연간 20여억 원을 지원한다. 이외에 셔틀버스비, 입장권 수입, 각종 상권 관련 등도 하회마을 주민에게 돌아간다. 화장실 불편을 감수하면서 세계문화유산을 지켜야 하는 이유임에는 분명하다.
이에 대해 안동시 관계자는 "무단으로 증·개축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생활이 불편해서 그런 것이라 계도장만 보냈다"고 설명했다.
▲ 수년을 이어온 전동차문제, 안전사고와 불법논란은 여전…시초는 안동시가 했나?
지난 2018년 하회마을 전동차 문제가 전국적인 이슈로 불거지자 관리기관인 안동시는 불법 건축물 등 문화재보호법 위반 부분에 대해 철거명령을 내리고 행정대집행과 수사기관 고발 등을 진행하겠다고 선언했지만, 2년이 흐른 지금 오히려 규모가 커진 데다 각종 안전사고와 불법 논란은 여전하다.
하회마을 입구 전동차 영업[사진=제보자들] 2020.10.26 lm8008@newspim.com |
하회마을 전동차 업체들은 농지(논·밭)를 메워 그 위에 불법으로 가건물을 짓고 매년 과태료를 내며 영업을 한다는 의혹이 끊이지않고 있다. 또 관람객들에게 "하회마을을 걸어서 둘러보려면 1시간 30분 이상이 걸리니 전동차를 타면 수월하다"는 등 호객행위도 서슴지 않고 있다.
게다가 전동차 충전을 위해 농사용 전력을 사용한다는 의혹도 제기돼 한국전력공사 경북지사가 긴급 현장점검에 나서기도 했다. 한전 측은 "농사용 전력을 주목적 이외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부분이 발견돼 최종 확인 후 위약금을 물리는 등의 조치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하회마을 안팎 전동차업체들의 규모는 오히려 더 커졌고 문화재 담벼락을 충돌해 훼손하거나, 마을 주민 차량, 전동차 간 충돌, 보행자와 충돌 등의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여기에 면허가 없는 관람객에도 전동차를 대여해 주고 있어 보험처리 등의 문제까지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권영세 안동시장은 지난 22일 안동시의회 임시회 시정질의 답변에서 전동차 등 하회마을 문제 해결에 대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말해 세계문화유산 가치 보전의 자정 능력을 사실상 외면한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최근 하회마을을 찾은 유교순례단 C(62. 대전시)씨는 "하회마을 입구에서부터 전동차 업체들이 난전을 펴고 호객행위를 하는 모습에 상당히 놀랐다"며 "하회마을이 세계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잃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고 동남아 관광지에 있는 듯 착각이 든다"고 개탄했다.
마을주민 D 씨는 "6년 전 안동시가 하회마을 내 업무를 보기 위해 에코카(전동차)를 사들여 이용하면서 업자들에게 힌트를 제공했고 이제는 골칫거리를 떠안게 됐다"며 "하회마을에 전동차가 처음 발을 붙이게 된 계기는 안동시가 만들어 줬다"고 전했다.
▲ 원형을 훼손한 '하회마을' 세계문화유산 가치 있나…재심사 '탈락' 불가피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 무단 증·개축으로 인한 원형 변경으로 세계문화유산 지정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조심스레 흘러나온다.
[안동=뉴스핌] 이민 기자 =하회마을 입구에 세워진 세계유산 표지석. 2020.10.26 lm8008@newspim.com |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가 삭제된 유산은 '오만의 아라비아 오릭스 보호지역'과 '독일의 드레스덴 엘베 계곡' 등전 세계적으로 두 곳이다.
자연유산이었던 아라비아 오릭스(초식동물로 영양의 일종) 보호지역은 오만 정부가 보호지역을 축소했고 여기에 밀렵과 서식지 파괴로 오릭스 개체수가 줄어들어 2007년 세계유산 목록에서 삭제됐다.
독일의 드레스덴 엘베 계곡의 경우 유산 지역 내 새 다리를 건설하면서 등재 시 인정받았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유지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2009년 세계유산으로서의 자격을 잃었다.
2013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일본 후지산(3776m)도 쓰레기 몸살로 유산 취소 위기를 맞기도 했다.
세계문화유산은 그 유산의 가치가 전 인류가 인정할 만큼 크기 때문에 이를 잘 보존해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는 의미로 세계유산을 보유했지만, 이를 적절히 보호하고 관리하지 못하면 삭제될 수 있다.
지역의 한 전통문화 전문가는 "무단으로 증·개축한 시설물을 다시 원상 복귀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며 "하회마을 역시 최초 지정 당시의 원형을 보존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만큼의 가치가 훼손됐기 때문에 문화재청 혹은 세계유산위원회 등의 판단을 기다려야 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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