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내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및 기관생명윤리위원회 공정성 회복 방안 마련해야"
[서울=뉴스핌] 김경민 기자 = #1. 대학원생 A씨는 교수의 종용으로 본인의 실험 데이터를 후배에게 넘겨야 했다. A씨는 "어느 날 지도 교수가 '이 논문은 후배의 것이니 데이터도 모두 넘기고 다른 프로젝트를 맡으라'고 했다"며 "몇 달 뒤 내가 수행한 실험 데이터가 고스란히 반영된 논문이 후배의 명의로 논문이 발표됐다"고 설명했다. 나중에서야 그 후배가 지도교수의 아들이란 것을 알게 된 A씨는 "너무 허탈하고 분하기까지 했다"고 토로했다.
#2. 대학원생 B씨는 교수의 요청으로 20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B씨는 자신이 작성한 글이 교수의 이름으로 버젓이 출판된 사실을 알게 됐고 이를 대학 연구진실성위원회에 알렸다. 1심에서 연구윤리위반 결과가 나왔지만 이에 불복한 교수가 이의 신청을 했다. B씨는 "이번엔 1심의 위원들 5명이 모두 교체됐고 1심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통보 받았다"며 "너무 억울해 민사소송을 진행했고 교수를 상대로 승소했다"고 회상했다.
대학에서 교수가 제자의 논문을 빼앗는 등 각종 연구부정행위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원생들은 연구·생명윤리 위반 사건에 대한 엄격한 사후 조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공공운수노조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지부(대학원생노조)는 13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학원생들이 피해를 입게 된 연구윤리의 문제들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며 "대학 내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및 기관생명윤리위원회(IRB)의 공정성과 신뢰성 회복을 위한 방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사진=대학원생노조 제공] |
한국연구재단이 지난 5월 발표한 '대학 연구윤리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연구부정행위 의혹이 제기된 544건 중 연구에 기여하지 않은 저자를 논문에 표기한 '부당저자 표시'는 36.9%로 가장 많았다. 하지만 연구부정행위로 판정된 사례 대다수(43.7%)는 주의·경고·조치 없음에 해당하는 경징계 미만의 처분에 그쳤다.
대학원생노조는 "고려대 대학원생이었던 이승주씨도 본인의 아이디어로 공동 연구를 기획했던 대학 교수와 정부출연 연구소 연구원이 본인을 속여 따돌리고 몰래 해당 과제를 추진해 수십억의 연구 과제를 수행한 상황을 적발하고 이를 신고했으나 각 기관의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지적재산권 침해가 아니라는 답변을 하면서 오히려 그들을 비호하고 있다"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문제가 확인된 연구결과물의 성과 철회 등의 사후 조치 역시 미비한 상황"이라며 "학계 내 잔존하는 위계 구조 맨 아래에 위치한 대학원생 등의 신진 연구자가 피해를 보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대학원생노조는 "학계가 인류 사회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책임 있는 연구수행을 통해 연구진실성을 확보해 신뢰할만한 지식을 생산해야 한다"며 "연구·생명윤리 위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철저한 제도 구축과 운영 및 예방활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학원생노조는 ▲대학 내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및 IRB의 공정성 및 신뢰성 회복을 위한 방안을 마련할 것 ▲연구·생명윤리 위반 사건에 대한 엄격한 사후조치를 취할 것 ▲국정감사에서 한국연구재단 등 연구관리전문기관과 대학, 연구소 등 연구기관에 연구·생명윤리 위반 문제 및 해결책을 철저히 질의할 것 등을 촉구했다.
kmki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