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뉴스핌] 전경훈 기자 = 지난 설날이 떠올랐다. 휠체어를 타고 1주일간 일상을 지냈다.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휠체어 타면 당연히 힘들겠지"가 아니라 정말 그들의 삶을 들여다 보고 싶었다. 도보 5분 거리도 몇cm의 턱 때문에 수백미터를 돌아가야 했다. 버스라도 한번 타려면 "씨XX이 바빠 죽겠는데 버스를 타냐"는 승객의 욕설도 참아야 했다. 직접 겪어보니 알았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이동권' 조차 휠체어 장애인에겐 사치였음을. 그래서 이들을 위해 기사도 써보고, 시청·버스터미널 등에 직접 민원도 넣어봤다.
하지만 한가지 간과하고 있던게 있었다. '이동권' 관련해서 휠체어 장애인들의 문제에 대해서만 많이 접하다 보니 시각장애인의 이동권에 대해선 무심(無心)했다. 아니 문제 인식 조차 못했었다. 그러다 시각장애인의 이동권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다. 버스터미널 키오스크(무인단말기) 앞에서 당황한 모습이 역력한 할아버지에게서 시각장애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시각장애인 점자블록이 없는 인도를 걷는건 지뢰밭길을 걷는 것과 같았다.[사진=전경훈 기자] 2020.09.28 kh10890@newspim.com |
할아버지는 보여도 무인단말기 사용법을 모르는데 시각장애인들은 아예 사용을 못하겠구나 싶었다. '장애인이 편하면 모두에게 편하다'라는 말처럼 철저하게 비장애인 위주로 돌아가는 이 사회에서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짐작해보고 싶었다. 광주시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5일(9월 24~28일)동안 흰 지팡이를 빌렸다.
◆ 읽는 법, 걷는 법을 배웠다
6개의 돌출된 점을 이용해서 숫자, 한글, 영어 표기법을 배웠다.[사진=전경훈 기자] 2020.09.28 kh10890@newspim.com |
바깥에 나가기 전, 광주시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점자 교육을 받았다. 생전 처음 배워보는 점자 교육은 암호를 푸는 것처럼 쉽지 않았다. 6개의 돌출된 점으로 숫자, 한글, 심지어 영어까지도 읽어야 했다. 손가락 끝에 모든 신경을 집중해야 했다. 1시간의 교육으로 모든 점자를 인지할 수는 없었지만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정도는 배울 수 있었다.
점자 교육 뒤에는 흰 지팡이 보행 방법을 배웠다. 점자 읽는 법도 배웠고, 흰 지팡이를 이용해 걷는 방법도 배웠으니 바로 거리로 나가겠다고 한 것을 복지관 관계자가 안된다고 말렸다. "기자님 체험도 좋지만 동네에서만 체험하세요. 안그러면 다쳐요" 낯선 동네에서는 도로 상황이 어떤지, 무슨 장애물이 있을지 모르니 익숙한 길을 돌아다니라는 의미였다. 그래서 집에서부터 먼저 체험 해보기로 했다.
◆ 8층 버튼 찾는 데 40초...항균필름 때문에 점자를 읽을 수 없었다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붙여놓은 항균필름이 시각장애인에겐 점자를 읽지 못하게 방해하는 장애물이 됐다.[사진=전경훈 기자] 2020.09.28 kh10890@newspim.com |
아파트 입구에 도착해서 먼저 연습을 해봤다. 20여년을 살아왔던 만큼 아파트 엘리베이터 버튼 누르는 것쯤은 아무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선 지금 내가 어디까지 걸어왔는지, 층수를 누르는 버튼은 어디에 있는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앞으로 쭉 걷다보니 벽에 머리를 부딪혔다. 우여곡절 끝에 열림 버튼을 누르고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왔지만 또 한번 난관에 봉착했다.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승강기 버튼에 붙이는 항균필름 때문이었다. 두꺼운 항균필름이 점자를 가려 잘 만져지지 않았다. 게다가 사람들의 손길이 많이 닿은 경우, 필름이 떨어지거나 훼손돼 점자를 읽는 것이 더욱 어려웠다. 열심히 외웠던 점자가 의미 없게 됐다. 결국 점자로 인식하는게 아닌 1층부터 한칸 한칸 손가락으로 더듬어가며 8층 버튼을 눌렀다. 평소 1~2초만에 눌렀던 버튼을 눈을 감으니 40초가 걸렸다.
◆ 어둠 속에선 동네도 위험천만한 무법지대였다
안전하다고 느꼈던 집에서 조차 방향과 거리감각을 익히는데 힘이 들었다. 세수 할때는 보이지 않으니 옷에 물이 다 튀었다.[사진=전경훈 기자] 2020.09.28 kh10890@newspim.com |
눈 감고 돌아다니는 연습을 집에서 먼저 해봤다. 식탁은 어디에 있는지, 냉장고는 어디에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집에서 연습은 해보나 마나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녔다. 식사를 하기 위해 의자에 앉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다. 칠흑 같은 어둠은 빛 속에 살아온 사람에겐 녹록지 않은 환경이었다. 두어번 우당탕 소란을 피우며 부딪히고 난 후에야 가까스로 의자를 찾아 앉았다. 걷는건 더 어려웠다.
눈을 감으니 발길질로 바닥에 뭐가 있는지 확인하면서 걸어야 했고, 손은 벽을 더듬으며 걸어야만 그나마 안정이 됐다. 몸을 최대한 다치지 않게 조심조심 다녔어도 식탁 모서리에 옆구리를 찔리고 '윽' 하며 넘어졌다. 가장 안전할 줄 알았던 집도 눈을 감으니 더 이상 안전한 공간이 아니었다. 가족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집에서 걷는 연습을 하루종일 했더니 그래도 조금은 감각을 익히는데 도움이 됐다.
흰 지팡이를 들고 밖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의지할 곳이라고는 흰 지팡이 뿐이라는 생각에 20여년을 매일 같이 걸어온 길이 무서워졌다. 긴장된 나머지 땀이 줄줄 흘렀다. 머릿속에는 어디에 계단이 있고, 횡단보도가 있는지 지도가 이미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방향과 거리를 가늠하기 힘들어서 거북이 걸음으로 천천히 걸었다.
어디서 차량이 튀어나올지 몰랐다. 소리에 집중할 뿐이었다.[사진=전경훈 기자] 2020.09.28 kh10890@newspim.com |
누가 대신 안내라도 해주면 좋겠다 싶었다. 하지만 모든 순간마다 누군가 도움을 줄 수가 없으니까 시각장애인 보도블록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신호등 앞에만 드문드문 있을 뿐이었다. 시각장애인 보도블럭을 이용해서 어딘가를 이동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진짜로 목숨이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
지팡이로 땅바닥을 치면서 걸어가고 있을 무렵 '빠아아앙!!!' 자동차 경적이 울렸다. 너무 놀라서 눈을 뜨고 보니 차도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시각장애인들은 걷는 것 조차 위험천만한 모험을 하고 있는거였다.
◆ 당신의 양심은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여기는 인도입니다..[사진=전경훈 기자] 2020.09.28 kh10890@newspim.com |
한번 위험한 상황을 겪으니 체험을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시각장애인들은 이것이 일상이라는 생각을 하니 알리고 싶었다. 이들이 매일 어떤 위험을 안고 살아가는지. 그래서 조금 더 동네를 걸었다. 흰 지팡이 사용법도 어느정도 익숙해지니 좌우에 벽이 있는지 정도는 쉽게 알 수 있었다. 문제는 앞에 뭐가 있는지를 모른다는거였다.
점자블럭이 앞으로 향하라는 표시가 있어서 갔더니 머리를 '쾅'하고 부딪혔다. 불법주정차 차량이었다. 지난번 휠체어 체험을 할때도 불법주정차 차량 때문에 지나갈 수가 없어서 수백미터를 돌아서 가야 했는데 이번에도 골칫거리였다. 심지어는 인도 위에 올라온 차량까지도 있었다. 속으론 흰 지팡이로 자동차 한 대 딱 때려봤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당신의 양심은 어디에 [사진=전경훈 기자] 2020.09.28 kh10890@newspim.com |
횡단보도나 차도 쪽만 조심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옆으로 쌩쌩 달리는 오토바이, 전동킥보드까지 살인무기가 판 치고 있었다. 인도에서 타고 다니면 안되는 것들이다. 하지만 편리함을 이유로 무법자처럼 다니는 이들의 만행에 인도에서조차 안심할 수 없었다.
◆ "초록불로 바뀌면 말씀 좀 해주세요"
음향신호기 없는 신호등 앞에서는 초록불인지 아닌지 알 방법이 없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방법 뿐이었다.[사진=전경훈 기자] 2020.09.28 kh10890@newspim.com |
걸으면서 제일 힘든 순간이 신호등을 건널 때였다. 빨간불이면 멈추고 초록불에는 건넌다. 당연한 세상의 이치였다. 그러나 눈을 감은 세상에선 당연한 것도 당연하지가 않게 됐다. 음향신호기를 눌러야만 신호등이 초록불인지 빨간불인지 알 수 있었는데 대부분의 신호등에 음향신호기가 없었다.
그마저도 설치를 하기는 해야되니까 설치는 하지만 시각장애인은 이용이 절대 불가능해 보이는 구석에 설치하기도 했다. 왜 이런 곳에 설치는 했는지 의문이 들어 광주시청에 전화를 해보니 돌아온 대답은 "그런 곳에 설치된줄 몰랐다"였다. 비장애인한테 누르라고 해도 못누르겠다고 눈으로 직접 봐보라고 했다. 그제서야 "확인해보니 시각장애인은 못누르는 구조에 설치돼 있었다"며 "현장에서 조치할 수 있는 부분은 바로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음향신호기는 있지만 시각장애인이 도저히 누를 수 없는 위치에 설치돼 있다. 함께 찾아보시길. 힌트는 노란색 가판대 뒤편 [사진=전경훈 기자] 2020.09.28 kh10890@newspim.com |
음향신호기가 있으나 마나 한 상황을 겪으니 사람들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발걸음 소리가 들리면 "혹시 초록불로 바뀌면 말씀 좀 해주세요"라고 부탁을 해야만 했다. 2시간쯤 긴장한 채로 걸으니 신경이 곤두선데다 다리까지 아파서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이미 녹초가 된 몸이라 지칠대로 지쳐서 버스를 타고 가면 편안히 집을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위안이 됐다.
하지만 아무리 서있어도 도착정보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주변 사람에게 물어보니 도착 정보가 따로 나오지 않는 정류장이었다. 용기를 내서 주변 사람에게 상무64번 버스가 도착하면 말해달라고 했다. 고맙게도 기자 또래의 나이로 추정되는 목소리를 가진 여성분이 버스 탑승까지 도와줬다.
여성분이 "몇번 버스를 타고 가냐"며 버스 탑승까지 도와줬다.[사진=전경훈 기자] 2020.09.28 kh10890@newspim.com |
버스를 타기만 하면 편할줄 알았는데 바깥을 볼 수가 없으니 어디쯤 왔는지 알 방법이 없어서 버스 안내 소리에 집중하느라 쉴 수가 없었다. "다음 정류장은 OO입니다" 소리에 하차벨을 누르고 일어났다. 미리 일어나 있지 않으면 바로 문을 닫아버리는 버스 기사님의 성격을 잘 알기에. 고맙게도 운행 중 일어난 기자의 모습을 보고 행여나 다칠까 도와주는 몇몇분의 도움으로 무사히 내릴 수 있었다.
◆ 대나무를 볼 수는 없지만 느낄 수는 있다
눈을 감은 세상에서 느끼는 담양 죽녹원은 또 달랐다. 새 지적이는 소리, 바람 소리에 집중했다. 산책 삼아 걸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었다.[사진=전경훈 기자] 2020.09.28 kh10890@newspim.com |
체험 3일차에는 과감하게 시외로 떠났다. 버스터미널의 무인단말기 장벽에 또 한번 어려움을 겪었지만 안내원의 도움으로 전남 담양군으로 향하는 버스표를 구매할 수 있었다. 택시를 타고 담양의 대표적 관광지인 죽녹원으로 가달라고 했다. 눈을 감고 도착한 죽녹원은 그동안 산책 삼아 걷던 때와 또 달랐다.
시원한 공기, 사람들의 수군대는 소리, 사진 찍는 소리, 새들이 지적이는 소리, 쉬익쉬익 바람이 불 때마다 대나무끼리 부딪치는 소리는 그동안 들어보지 못했던 어쩌면 크게 관심도 없던 소리였다. 눈으로 바라보기에 급급했으니까.
눈을 감은 세상에서는 보지는 못해도 죽녹원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마음 속에 보이기 시작했다. 기자도 체험 전에는 편견이 조금 있었다. 보이지도 않는 시각장애인들이 여행을 왜 가나 싶어서 시각장애인 복지관 관계자에게 물어봤다. "새로운 공기, 새로운 냄새, 새로운 음식 모든 것들이 바뀐 것을 인지한다. 보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자세하게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여행 그 자체를 온전히 즐기는 거였다.
◆ 언택트 시대가 낳은 또 하나의 차별
키오스크(무인단말기) 앞에서는 수능 때처럼 찍어보려고 해도 뭐가 찍히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사진=전경훈 기자] 2020.09.28 kh10890@newspim.com |
담양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도착한 뒤 허기가 져서 치킨을 시키려고 지문인식으로 핸드폰을 켰더니 켜는 것 외에는 내가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다. "시리야(애플 아이폰 음성인식 기능)"를 외쳐도 배달앱을 켜기만 할 뿐. 주문을 할 수는 없었다. 스마트기술이 누구에게나 편리한 줄만 알았더니 시각장애인에겐 거대한 장벽이었다. 결국 가족의 도움으로 주문할 수 있었다.
광주시청으로 갔을 때에도 시각장애인의 차별은 당연시 되고 있었다. 방역을 이유로 출입문 세 군데 중에서 한 곳만을 개방했다. 한 곳만 개방한 것이 문제인 것은 아니나 시각장애인 보도블럭 등이 설치된 문을 폐쇄해서 시청 출입을 직원 안내 없이는 할 수가 없게 됐다. 직원의 안내로 들어와서도 핸드폰을 사용한 QR코드 전자출입명부는 사실상 '출입불가' 조치와 다를 바 없었다.
지나가는 커플들에게 사진 한 장만 찍어달라고 했다. 물 소리, 바람 소리, 따스한 햇빛. 보지는 못해도 느낄 수 있는 것들이었으니까. 그 감정들을 사진 한 장에 담고 싶었다.[사진=전경훈 기자] 2020.09.28 kh10890@newspim.com |
불편함을 겪게 한 것도 '사람'이지만 도움을 주는 이들도 결국 '사람'이었다. 5일 간의 체험을 통해 운이 좋게도 고마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점자 표시가 없어서 방황하던 나에게 식당을 안내 해준 아주머니,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를 건널 때 손 잡아준 아저씨, 마트에서 물건을 집어주던 청년, 고장난 장애인 화장실을 고쳐달라고 대신 화내주던 할머니. 이외에도 참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혹시라도 이 기사를 보고 메일(kh10890@newspim.com)로 연락을 준다면 밥이라도 한끼 대접하고 싶다. 진심이다. 어떤 마음으로 도와준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세상이 아무리 각박해졌다고는 해도 서로 돕고 사는 사회를 실천해주는 이들이 더 많기에 세상이 돌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버스정류장에 설치된 시각장애인 점자블록이 뒤죽박죽 엉켜있었다.[사진=전경훈 기자] 2020.09.28 kh10890@newspim.com |
에필로그(epilogue). 국내에 등록된 장애인은 262만여 명이다. 전체 인구 대비 5.1%정도 되는 셈이다. 그 중에서 25만여 명이 시각장애인이다. 광주만 해도 시각장애인이 7000여 명이나 있다. 하지만 주변에서 거의 보지 못했다. 5일 간의 체험으로 알았다. 이들은 철저하게 비장애인에 맞춰진 사회에 밖을 나오고 싶어도 나갈 수가 없는거였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홀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이들도 장애인이 되고 싶어서 장애인이 된 것이 아니다. 국내 등록 장애인 중 90.5%가 후천성 장애인이다. 불행한 사고,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병으로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5일간의 체험으로 알았다. 시각장애인은 밖을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는거였다. 도로위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몰라서.[사진=전경훈 기자] 2020.09.28 kh10890@newspim.com |
우리는 종종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말한다. 그리고 이 말이 정책의 기본방향인 것처럼 말을 할 때도 있다. 그래서 소수의 행복은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 오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손해나 피해의 대상이 된다면 어떨까? 앞서 90%가 넘는 장애인들이 후천성 장애인이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가 소수가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남을 위해서가 아닌 혹시 모를 나·가족·친구의 불행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더 나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서로가 배려하면서 살아가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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