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선미 기자 = 세계 최대 반도체 설계회사 영국 ARM이 일본 소프트뱅크로부터 미국 엔비디아로 매각될 예정인 가운데, ARM이 반도체 산업에서 누리던 중립적 지위가 훼손될 수 있고 인수안이 무역 갈등에 휘말린 각국에서 규제 장벽에 부딪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블룸버그 통신은 15일(현지시간) ARM은 수백개의 고객사에게 기술 라이선스를 판매하는 대신 이들 중 누구와도 경쟁하지 않는 중립적 기업이라는 점이 성공 열쇠였으나 이번 인수로 ARM의 이러한 강점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고 분석했다.
엔비디아 [사진= 로이터 뉴스핌] |
ARM의 반도체 설계와 명령 집합, 소프트웨어와 소통하는 반도체에 사용되는 코드 등은 스마트폰뿐 아니라 자율주행차와 각종 센서의 핵심 기술이다. 또한 이들 기술은 데이터센터 서버와 랩톱에도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퀄컴과 AMD 등 주요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은 대부분 ARM의 고객사이자 엔비디아와 직접적으로 경쟁하는 기업들이다. 이 때문에 ARM이 엔비디아에 인수된 후에는 ARM의 핵심 기술이 모회사인 엔비디아에 선제적으로 공급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애플의 경우 아이폰과 아이패드 핵심 부품인 A시리즈 프로세서 생산을 ARM에 의존하고 있으며 맥 컴퓨터에도 이 기술을 도입할 예정이다. 애플은 보통 협력업체를 다각화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만 엔비디아와는 손 잡은 적이 한 번도 없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상식적인 운영으로 ARM의 기술을 잘 이끌어 나가겠다"며 이러한 우려를 잠재우기 위해 나섰다.
그는 "ARM의 수익은 반도체 설계 기술 라이선스를 제공하는 데서 창출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엔비디아의 경쟁사라 하더라도 이들을 불리하게 만들어 ARM이 고객사를 잃게 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고객사가 더욱 늘어난다면 바랄 것이 없겠다"며 "우리는 반도체 생태계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황 CEO는 ARM의 기술을 활용해 엔비디아의 그래픽칩 사업을 확장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엔비디아는 스마트폰 부문에 진출하는 데 크게 실패했으나, ARM을 인수하게 되면 애플뿐 아니라 삼성전자와 화웨이 등 글로벌 스마트폰 거인들과 협력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또한 엔비디아는 ARM의 기술을 이용해 데이터센터 부문에도 진출할 수 있다. 구글과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뿐 아니라 중국의 클라우드 컴퓨팅 업체들은 이미 온라인 서비스를 위해 ARM의 반도체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
엔비디아의 ARM 인수는 미국, 영국, 중국, 유럽연합(EU) 규제당국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양사는 규제 절차를 수월하게 통과할 수 있을 것이라 자신하고 있지만, 각국 당국이 고객사와 경쟁업체들의 의견을 종합하는 기간이 최대 18개월 소요될 수 있다.
또한 영국 기업이었던 ARM이 미국 기업의 자회사가 됨으로써 미국과 중국 간 무역 싸움에 끼일 가능성도 있다. ARM은 15일자로 미국 정부가 제재를 발효한 화웨이를 주요 고객사로 두고 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엔비디아가 ARM을 인수하면 중국 반도체 산업이 미국의 손에 좌지우지될 수 있어 중국 규제당국이 인수를 불허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또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등은 ARM이 영국 방위 산업의 주요 공급업체이자 영국 대표 기술기업이니 만큼 영국 정부가 엔비디아의 ARM 인수에 까다로운 조건을 붙일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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