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뮤지컬배우 전나영이 '렌트'에서 가장 본인다운 캐릭터를 만났다. 다소 충격적인 변신을 통해 극의 메시지를 환기시키고, 관객들에게 더없이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지난 24일 디큐브아트센터에서 '렌트' 공연에 한창인 전나영과 만났다. 너무도 사랑하는 작품에, 꼭 하고 싶었던 역할로 무대에 서는 그에게서 뿌듯함이 엿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전나영은 '렌트' 오디션에 응시하며 모린 외에 다른 역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대학 시절부터 '렌트'란 작품을 정말 사랑했어요. 늘 '시즌스 오브 러브'를 부르고 다녔죠. 런던에선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도 봤어요. 그때부터 사람들이 꼭 미미를 하면 좋겠다고 했는데, 이번 오디션에서 모린에게 끌렸죠. 잠시 미미 역을 두고 고민했지만 모린보다는 약간 흔한 캐릭터 같았어요. 좀 더 자유분방하고 컬러풀한 역을 해볼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없을 것 같아 과감하게 모린만 적어냈죠. 전작 '아이다' 때 매회 슬프고 드라마틱한 죽음을 늘 겪으면서 이런 역에 갈증이 컸나봐요. 완전히 다른 반대의 도전을 하고 싶었죠."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사진=신시컴퍼니] 2020.07.27 jyyang@newspim.com |
전나영이 모린 역을 골랐지만, 앤디 세뇨르 주니어 협력연출 역시 그에게서 모린을 봤기에 캐스팅은 성사됐다. 과연 어떤 면을 통해 확신을 줄 수 있었을까. 당시에 나눈 얘기들을 전나영에게 물었다.
"글쎄요. 뭘 보고 뽑으셨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오디션 때 거의 연습처럼 '이게 좀 부족한데 보여줘봐'라고 시키시긴 했어요. 저는 아무 두려움 없이 뭐든 재밌게 했던 기억이 나요. '테이크 미 오어 리브 미'를 죠앤 역의 (정)다희와 보여주는데 미친듯이 기어다니면서 몰입했죠. 그냥 둘이 노는 느낌이었어요. '오버 더 문' 시연 때도 두렵진 않았어요. 오디션에선 아직 내 역이 아니니까 뭐든 해볼 수 있었죠. 그때 앤디가 제가 모린이라면 뭘 보고 시위를 할까. 개인이 뭘 보고 화가나고 목소리를 내고 싶을지 생각하게 했죠."
무엇보다 극중 모린의 충격적인 행위예술 신, '오버 더 문'에서, 전나영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했다. 표현하는 배우도 어렵지만, 비유적으로 표현된 공연의 내용도 처음 접하는 관객에게 쉽게 와닿지는 않는다. 다행히 전나영은 스스로가 '행위예술'의 전문가임을 고백했다.
"원래 좀 모린처럼 제 세상에 몰입해있는 편이라 그 안에 제가 들어가는 건 어렵지 않았어요. 다만 '오버 더 문' 할 때는 보러온 사람들 모두를 생각해요. 이들이 어떤 삶을 살고 어떻게 힘든지. 돈이 많은 사람의 힘에 눌려서 힘든 상황에 처했을 수 있잖아요. '모린의 공연이 얼마나 필요할까' 생각해요. '음메'를 할 때도 더 큰 시선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에너지를 주고 싶었죠. 저는 뮤지컬 전공 전에 행위예술을 공부했었어요. 주특기를 찾은 느낌이죠. 그때는 스스로 무대를 만들고 작곡, 작사도 하는 예술가를 꿈꿨어요"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사진=신시컴퍼니] 2020.07.27 jyyang@newspim.com |
전나영이란 사람 자체가 지극히 '현재의 모린' 같은 사람이라 더욱 강렬하게 와닿는 점도 있다. 그는 "부담스럽지만 최고로 기분이 좋은 순간"이라고 행위예술신을 꼽았다. 그마늠 모린의 모든 에너지와 정체성을 담아 최선을 다한다.
"모린 혼자한다고 생각하지만 혼자가 아니에요. 사실은 보러오신 모든 분들과 함께 하는 거죠. 모린은 더 간절하겠죠. 굉장히 떨릴 거고요. 이건 꼭 그들에게 줘야하는 공연이라는 생각과 각오로 무대에 오르죠. 너무나 중요한, 한번만 할 수 있는 공연이니까요. 공연 내용은 어려운 분들도 있으실 거예요. 인권에 대한 문제를 비유하는 거죠. 모두가 가져야 하는 권리지만 무시당하는 사람이 많잖아요. 그들은 사막에 살고, 소한테 가장 자연스러운 '음메'조차 허락되지 않죠. 그 인권을 박탈한 사람에게 뭐라도 보여주자는 의미를 담아 다같이 한 목소리로 외치는 거예요."
놀랍게도 전나영과 모린의 공통점인 '잔다르크형 또라이' 기질은 '렌트'의 메시지를 관통한다. 사실 공연을 봤을 때 에이즈를 앓고, 가난에 직면한 다른 친구들에 비해 모린이 그리 어려운 처지가 아니란 생각도 든다. 하지만 모린은 우선순위가 다를 뿐이라는 게 전나영의 설명이다.
"모린은 파격적인 컬러의 캐릭터고, 극 중에서 뭔가를 깨고 가는 인물이죠. 모두가 힘들어할 때 모린은 여전히 자신만의 에너지가 있어요. 원하는 것만 바라보고 거기로 달려가죠. 누구의 도움을 받아서든 공연을 해내요. 그치만 삶이 쉬울 리는 없어요. 긍정적이지만 옆에 있는 사람들은 화를 내기도 하고, 죠앤은 떠나기도 하죠. 자신만의 목표에 몰입하고 있어서 현실적인 어려움이 덜 드러나는 축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오버 더 문'은 오늘의 나를 위해서 지금 목소리를 내자는 행동이죠. 내일은 괜찮겠지, 나아지겠지 하는 게 아니라 오직 오늘 뿐이니까. 지금 목소릴 내고 바꾸자고 선동하는 거죠. 그런 메시지를 담당해요. 모린이 추구하는 '오직 오늘 뿐'이지만 너무 그게 강해서 연애 관계에서 영특하지는 못한 것 같아요. 하하."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사진=신시컴퍼니] 2020.07.27 jyyang@newspim.com |
극중 모린은 좋은 집안에서 자라 능력과 커리어를 갖춘 변호사 죠앤(정다희)과 연인관계다. 하지만 성향의 차이로 헤어짐에 이르게 된다. 죠앤은 지나치게 자유분방한 모린을 탓하지만, 전나영은 "고르자면 모린 축인 것 같다"면서 또 한차례 모린을 감쌌다.
"무언가에 빠져버리면 다른 걸 전혀 못봐요. 주변을 못보는 타입이라 가까운 사람들이 힘들 수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됐죠. 개인적으로 콜린에게 정말 끌려요. 콜린의 엔젤의 사랑은 정말 아름답고, 엔젤이 떠나고 나서 콜린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엔젤의 마음들을 전하는지 보면 정말 마음이 찡하죠. 넘버들도 콜린 노래들이 마음에 들어요. 할 수 있으면 언젠가 콜린을 한번쯤 맡아보고 싶어요. 하하. 당연히 미미의 '아웃 투나잇' 역시 에너지가 넘치는 곡이라 정말 사랑하는 곡이죠."
전작 '아이다'에 이어 신시컴퍼니의 작품을 연이어 하며, 전나영은 "대표님과 가치관이 잘 맞는다. 늘 이런 마음과 태도를 갖고 일해야 하는구나 느낀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네덜란드 출신으로, 웨스트엔드에서 '레미제라블' 출연 등 이름을 알려온 그의 해외 활동을 기대하는 이들도 있다. 당분간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국내 활동에 전념하겠다며, 그는 은근히 내년 개막이 확정된 '위키드'를 욕심냈다.
"처음부터 가치관이 맞고,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하는 작품에 끌렸고, 그렇게 해왔어요. 안맞는다면 안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죠.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열정이 없다면 잘할 수도 없을 것 같았죠. 그래서 지금의 제가 된 게 아닌가 해요. 지금은 코로나19로 완전히 멈췄지만, 해외 활동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있어요. 당장은 '위키드'의 엘파바를 정말 하고 싶어요. 이번이 아니어도 언젠가는 꼭. 런던에서도 몇번 오디션을 봤는데 파이널까지 갔다가 몇 번 떨어졌어요.(웃음) 결과와 상관없이, 오디션에서는 '엘파바가 내 거다'라는 생각으로 나의 엘파바를 표현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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