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조종사도 막막 "IMF 시대가 차라리 그리울 정도"
[서울=뉴스핌] 김유림 기자 = "동기들 대부분이 20~30대에 비행을 배우려고 많은 시간을 보내서 다른 건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공장이나 마트에서 일하거나 잘 풀리면 과외나 학원강사를 하고 있죠. 하지만 대부분은 코로나 불경기로 카페 아르바이트 자리도 없어 백수로 지내고 있어요." 한 항공사에서 수습기간 중 해고당한 A씨의 말이다. A씨는 "사람들이 왜 조종사가 여기 있냐고 물어는 게 부끄러워서 조종사였다고 말도 못 한다"면서 최근 상황을 전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조종사 채용 시장이 급격하게 얼어붙으면서 A씨처럼 비행 자격증을 준비하던 예비 조종사들이 그동안의 노력이 허투루 돌아갈 위기에 놓였다. 조종사 면허를 취득하기 위해 들인 평균 1~2억원이 들어가는데 정작 채용이 막히자 당장 이 비용을 갚기 위해 각종 아르바이트 전선에 뛰어들어야 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20일 국토교통부 '조종인력분야 포스트 코로나19 대응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조종사 신규 채용 계획을 밝힌 항공사는 저비용항공사(LCC) 3곳이며, 채용 예정인원도 총 48명에 불과하다. 대형항공사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신규 채용 계획을 잠정 중단했다. 2016년 697명, 2017년 590명, 2018년 635명, 지난해 548명의 조종사가 신규 채용된 것과 비교하면 10분의 1에도 못미치는 수준으로 줄어든 셈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현직 조종사 역시 막막하기는 마찬가지다. 대형항공사에 재직 중이라는 한 조종사는 "비행천재도 코로나는 이기질 못한다"며 "IMF(외환위기) 시대가 차라리 그립다고 말할 정도로 지금 상황은 대한민국 역사상 유일무이한 항공업계의 재난이자 종말이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작년까지는 매년 수백명의 조종사가 채용됐지만 앞으로는 매년 몇백명을 해고하는 시대가 됐다"며 "부모님 노후와 청춘을 바쳐 배운 기술이 역병에 한 방에 무너졌고, 회사 밖에서는 그 어느 곳에서도 인정받지 못 하는 기술이 됐다. 현직인 나조차도 결국 조종간에서 손을 놓게 되면 다시 조종사를 꿈꾸진 못 할거라 생각해 다른 일을 미리 알아보는 중"이라고 토로했다.
이스타항공 조종사들은 제주항공 인수합병(M&A) 과정에서 수개월째 임금체불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3월부터 통장에 입금된 돈이 0원인 상태라서 대출연장, 신용대출 등 금융거래까지 막혀 생계 위협을 받고 있다.
반면 화물기 747 면허 보유 조종사들은 바쁜 나날의 연속이며, 비행 수당도 코로나19 이전과 큰 차이 없이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스크, 손 세정제, 진단키트 등 각종 생필품과 방역물품 등 전 세계에서 한국산 제품 수요가 크게 늘어나면서 화물기 운항도 덩달아 급증했기 때문이다. 보잉 747 기종은 전 세계 항공 화물의 절반 정도를 나를 정도로 인기 있는 화물기다.
다만 747 조종사들도 애로사항이 있다. 747 조종사 B씨는 "해외에 착륙하자마자 곧바로 셔틀에 실려 호텔에 들어가고, 밥도 호텔 방 앞에 놓고 가는 것만 먹는다"며 "한국에 돌아오는 비행이 있기 전까지 호텔 방을 나갈 수 없고 사실상 감금상태나 마찬가지다. 비행 스케줄이 많고, 밤샘 비행보다 힘든 건 감금이다"고 말했다.
uri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