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가 9일 기각됐다. "불구속재판의 원칙에 반해 피의자들을 구속할 필요성에 관한 소명이 부족하다"는 게 구속영장을 심사한 서울중앙지법 원정숙 영장전담 부장판사의 기각 사유다. 원 판사는 "기본적 사실관계는 소명됐고, 검찰은 그간의 수사를 통해 이미 상당 정도의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장기간의 수사로 증거가 대부분 수집돼 증거인멸 우려가 없고 한국의 대표기업 총수로서 도주 우려도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이 이 부회장에 대한 혐의가 무죄라는 것은 아니다. "이 사건의 중요성에 비추어 피의자들의 책임 유무 및 그 정도는 재판 과정에서 충분한 공방과 심리를 거쳐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는 원 부장판사의 말을 전적으로 공감한다.
검찰의 영장 청구는 처음부터 무리였고, 너무 성급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검찰은 1년 7개월에 걸친 수사를 진행하며 50여 차례의 압수수색과 110여명에 대한 430여회 소환 조사를 통해 상당한 증거를 확보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런데도 이 부회장 측의 검찰수사심의위 요청 이틀 만에 갑자기 구속 영장을 청구한 것은 보여주기식, 망신주기 영장청구가 아니냐는 비판이 많았다. 영장 청구가 기각됨에 따라 검찰의 입장은 더욱 난처하게 됐다. 검찰은 증거 보완 등을 통해 영장을 재청구하거나, 불구속 기소 후 재판에서 법리 다툼을 벌일 수도 있지만 옹색한 처지가 된 것은 분명하다.
이 부회장 측이 요청한 수사심의위 결정이 한층 중요해졌다. 서울중앙지검은 오는 11일 부의심의위를 열어 수사심의위 소집 여부를 결정한다. 부의심의위가 수사심사위 소집을 결정하면검찰총장은 심의위를 소집해야 하고, 심의위는 이 부회장의 기소여부를 논의하게 된다. 검찰이 수사심의위 권고를 따라야 할 법적 의무는 없지만, 따르지 않을 경우 또 한번 여론의 비판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이 수사심의위 결정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판단이다. 수사심의위는 오롯이 증거와 법리에 따른 판단을 해야 한다. 삼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질시와 적대감에 영향을 받아서는 안된다.
삼성은 총수 공백이라는 최악의 상황은 일단 면하게 됐다. 그러나 삼성을 둘러싼 현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다. 올들어 코로나19 사태 장기화, 미중 무역분쟁 심화, 한일 관계 악화 등으로 인해 경영 활동이 상당한 차질을 빚고 있다. 검찰발 리스크도 여전하다.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는 상황이라면 경영활동에 온전히 몰입하기 어렵다. 이 부회장이 지난 2017년 2월 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속됐을 때도 삼성의 대규모 투자사업은 사실상 올스톱됐다. 삼성은 지난 7일 "한국경제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에도 최대의 노력을 경주할 것"이며 "삼성이 그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내용의 호소문을 발표한 바 있다. 우려했던 이 부회장의 구속을 면한 만큼 보다 적극적인 경영활동에 나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