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만난 컬링, 이젠 저의 모든 게 됐죠"
모교인 포천 대진대 컬링팀 창단도 적극 돕기로
[포천=뉴스핌] 양상현 기자 = 2019 이탈리아 발텔리나 동계 데플림픽(청각장애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여자 컬링 선수단이 동메달을 따 사상 처음으로 시상대에 올랐다.
동계 데플림픽은 1949년 오스트리아 제펠트에서 최초로 열렸다. 한국은 2015년 러시아 한티만시스크에서 열린 제17회 대회 첫 참가 이후 두 번째로 출전했다.
이 대회는 지난해 12월 12일부터 21일까지 열려 총 6개 종목에서 27개국 1000여 명의 선수가 자웅을 겨뤘다. 한국은 4개 종목에 50명의 선수단(선수 16명, 경기 임원 8명, 수어 통역 7명, 본부 임원 14명, 지원단 5명)을 파견했다. 한국은 컬링에서 메달 획득을 노렸다.
최종길 회장 [사진=경기도컬링경기연맹] 2020.02.12 yangsanghyun@newspim.com |
대한장애인컬링협회를 이끌고 있는 최종길(57) 회장은 청각장애인뿐만 아니라 국제 스포츠 대회에 출전하는 장애인 국가대표 선수들을 위해 협회장이 직접 소변통을 들고 비행기에 타 뒤처리를 돕기도 한다. 선수들이 경기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 국민이 낸 세금을 들여 대회에 출전하는 만큼 엄하게 호통을 치기도 한다.
최 회장은 실제 하반신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장애인 컬링 국가대표 선수들과 해외 대회에 출전할 때면 늘 빈 플라스틱 우유통을 들고 비행기에 탑승한다. 선수들 모두 소변통이 있지만 길면 14시간씩 걸리는 비행기 안에서 간혹 개인 소변통이 가득 차 넘치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선수들 곁에서 챙겨야 할 일들이 많다 보니 최 회장은 협회장에게 제공되는 항공기 비즈니스석도 마다하고 선수들과 같은 이코노미석에 앉는다.
이 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요즘 최 회장은 즐겁다. 최 회장은 "지난 2008년에 처음 컬링을 접한 뒤 지원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을 때는 `동네 청소하는 것도 아니고 빗자루질 하려고 하냐`는 등 비아냥도 많았지만 언젠가는 컬링 종목에도 볕 들 날이 올 것이라고 확신했다"라며 "소치 동계 올림픽에서 컬링이 알려지기 시작하더니 2018년 국내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쇼트트랙, 피겨와 함께 컬링이 국내 대표 동계 스포츠로 자리 잡으면서 요즘에는 국가대표 장애인과 비장애인 선수단을 가리지 않고 후원사들이 줄을 서 협회장으로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처음 시작할 때는 정말 울기도 많이 울었지만 이제는 절로 웃음이 난다"라고 전했다.
또 "장애를 극복하고 치열한 노력을 통해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장애인 선수들의 무대인 패럴림픽을 기억하자"라며 "그들에게 패럴림픽의 메달은 금은동의 순위보다는 장애를 극복하고 새로운 도전을 시도한 그 과정 자체"라고 설명했다.
건설회사를 운영하는 최 회장은 요즘 회사일에는 사실상 손을 놓다시피 했다. 최 회장은 "회사 일이야 내가 없어도 유능한 직원들 덕분에 잘 돌아가고 있으니 나는 컬링을 위한 일만 하면 되지 않겠느냐"라며 "후원사들과 만나고 대회 현장을 찾아다니는 것 자체가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렇게 협회장이 선수 지원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사이 최 회장이 이끄는 한국 장애인 컬링 대표팀과 경기도 선수단은 연이어 승전고를 울려 힘을 보태고 있다.
장애인 컬링 대표팀은 지난달 핀란드에서 열린 2020 키사칼리오 국제휠체어컬링대회 우승이라는 성과를 올렸다. 또 한국 여자컬링 대표 선수단인 경기도 컬링팀도 2020 세계예선대회에서 전승 우승을 거두면서 세계여자컬링 선수권 본선에 직행하는 쾌거를 이뤘다. 또 지난해 12월엔 최 회장이 선수단장으로 참가한 2019 발테리나-발치아벤나 동계 데플림픽(청각장애인 올림픽)에서 여자 컬링선수단이 동메달을 따 사상 처음으로 시상대에 오르기도 했다.
최 회장은 "신체적인 불편함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재활의 의지를 넘어 국가 대표 수준의 스포츠인으로 우뚝 선 선수단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라며 "장애인들이 훌륭한 시설에서 더욱 기량을 갈고닦아 한국의 대표로서 각종 국제경기에서 승전보를 전해주는 전령사가 되어 주기를 당부한다"라고 했다.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협회·연맹 선수들의 호성적으로 매일매일을 행복하게 보내고 있는 최 회장은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고도 했다.
그는 "건설사를 운영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컬링에 몸담게 됐는데 생각해 보면 스포츠라는 것이 건강과 직결되는 만큼 나 스스로가 국민 건강을 위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자부심과 동시에 무거운 책임감도 느낀다"라며 "이제는 컬링이라는 스포츠를 모르는 사람이 없는 만큼 이제는 컬링의 저변 확대를 위해 힘을 쏟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최 회장은 자신의 모교인 포천 대진대학교가 컬링팀을 창단할 수 있도록 도울 예정이다. 비록 대학에서 스포츠를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모교 발전을 바라는 마음과 컬링의 확산,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보겠다는 심산이다.
최 회장은 "국내 최정상급 컬링 선수들을 배출하는 고등학교가 의정부에 있는 만큼 이웃 도시인 대진대학교에 컬링팀이 창단된다면 나중에는 대진대 컬링팀이 국가대표로 뽑힐 가능성도 충분하다"라며 "학교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은 만큼 이제는 보답해야 할 때"라고 설명했다.
최 회장은 "지난해 7월 회장으로 있는 경기도 컬링 선수단이 국가대표로 선정됐을 때는 눈물이 날 만큼 기뻤다"라며 "컬링이라는 스포츠가 국내에서 잘 알려지기 전 초창기 고생한 만큼 지금은 그 보답을 받고 있으니 이제는 컬링을 전 국민이 쉽게 즐길 수 있는 스포츠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yangsanghy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