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국립중앙박물관(관장 배기동)은 지난 5월 보존처리를 마친 개성 현화사 석등(유물번호 덕수2735)을 재설치하고 이를 기념하는 낙성식을 30일 개최한다.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부는 지난해 11월 6일부터 올해 5월 20일까지 개성 현화사 석등을 보존처리했다. 이후 지난 17일 석등을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에 다시 설치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지난 5월 보존처리를 마친 개성 현화사 석등을 재설치했다. [사진=국립중앙박물관] |
점등식에서는 열이 나지 않는 LED전등을 이용해 불을 밝힌다. 이 불밝힘 의식으로 옛 개성 현화사를 밝히던 석등을 재현하고 선인들이 이루고자 한 무명을 밝히는 석등의 의미를 되새긴다.
석등이 있던 현화사는 현종(1009~1031년)이 불우하게 세상을 떠난 부모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은 사찰이다. 왕실의 행차와 법회가 열리던 고려의 대찰로 이름이 높았다. 현종은 재위 11년인 1020년 삼각산(북한산) 삼천사 주지였던 법경을 현화사 초대 주지로 임명했고 칠층석탑을 만들어 부처의 사리를 봉안했다. 이 석등도 같은 해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석등의 규모는 크고 당당하다. 불을 밝히는 화사석은 네 개의 기둥돌로 구성했고 사방이 트여있다. 듬직한 지붕돌 위는 불꽃 무양의 보주 장식으로 꾸며졌다. 현화사 석등은 논산 관촉사, 금강산 묘길상 마애불 앞의 석등 등과 함께 고려 석등 가운데 수준 높은 작품으로 손꼽힌다. 석등 앞에 배치한 배례석(유물번호 덕수5192)은 영주 부석사 등에서 보듯 석등 앞에 공양이나 예배를 드리는 용도로 만들어졌다. 정확한 출토지는 알 수 없으나 석등과 함께 배치되던 시설이라는 의미를 살려 현화사 석등 앞에 전시했다.
한편 이 석등은 1911년 조선총독부 박물관이 일본인 골동상 곤도 사고로에게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박물관이 2005년 10월 28일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전, 재개관하면서 현재 자리에 세우게 됐다. 전체적인 상태 보강과 각 부재의 강화처리 및 취약부 보존수복을 위해 2017년 9월 해체한 후 3D 스캔 촬영 및 보존처리를 진행했다.
박물관 관계자는 "국립중앙박물관은 우리의 역사를 온전히 담고 있는 야외석조문화재를 후세에 영원히 물려주기 위해 더욱 철저하고 안전하게 관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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