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숙혜의 월가 이야기
[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 달러/엔 환율이 100엔까지 밀릴 것이라는 월가의 엔화 강세론자들이 고개를 숙였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마찰과 경기 침체 경고까지 쏟아지는 악재에도 엔화가 기를 펴지 못하고 있기 때문.
엔화 [사진=블룸버그] |
금과 함께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통하는 엔화의 발목은 붙잡은 요인으로 일본 최대 기관 투자자인 일본공적연금(GPIF)가 지목됐다.
17일 장중 달러/엔은 108.79엔에서 거래, 좁은 박스권 등락을 나타내고 있다. 연초 110엔 선을 훌쩍 넘었던 달러/엔은 미국과 중국의 무역 마찰이 고조되면서 지난 105엔 선까지 밀렸지만 방향을 돌린 셈이다.
이른바 ‘엔고(円高)를 점쳤던 월가의 투자은행(IB) 업계는 곤혹스럽다는 표정이다. 최근 롬바드 오디어의 새미 차르 이코노미스트는 월간 보고서를 통해 방어적인 포트폴리오 전략을 권고하며 금과 엔화를 유망 자산으로 제시했다.
골드만 삭스도 연말까지 달러화에 대한 엔화의 강세가 글로벌 외환시장의 대표적인 추세로 자리잡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엔화는 상승 탄력을 잃은 모습이다. 뿐만 아니라 9월 이후 엔화 약세가 일본 주식시장에 상승 동력을 제공하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월가는 일본공적연금의 적극적인 해외 자산 매입이 엔화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진단을 내놓았다.
운용 자산 규모 1조5000억달러로 전세계 최대 규모인 연금이 해외 자산 매입에 무게를 두는 만큼 엔화를 압박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얘기다.
골드만 삭스의 캐런 피시맨 이코노미스트는 이날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전세계 경제에 대한 경고가 쏟아지는 가운데 엔화가 반등하지 못하는 것은 일본공적연금의 해외 자산 매입과 직접적으로 맞물려 있다”고 설명했다.
엔화는 달러화뿐 아니라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불확실성에 연일 들썩이는 파운드화에 대해서도 약세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이달 초 130엔 선까지 밀렸던 파운드/엔 환율은 이날 장중 139엔을 뚫고 올랐다. 단기간에 7%에 가까이 뛴 셈이다.
상황은 유로/엔도 마찬가지. 지난 8일 117엔 선으로 밀렸던 유로/엔은 120엔 선을 회복, 엔화가 유로화에 대해 1개월래 최저치를 나타냈다.
엔화가 예상밖의 움직임을 연출하고 있지만 월가는 여전히 장밋빛 전망을 고집하고 있다. 미국 경제 지표가 둔화되고 있고, 미국과 중국의 무역 스몰 딜이 이뤄지더라도 신경전이 다시 불거질 여지가 높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미국 소매 판매는 0.3%의 예상밖 감소를 기록, 7개월만에 확장 기조가 꺾였다. 향후 전망도 흐리다. 제조업에 이어 고용과 민간 소비로 관세 전면전의 충격이 번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옥스포드 이코노믹스는 투자 보고서에서 “소비 감소에 고용도 둔화되는 등 정책 리스크에 따른 민간 부문의 하강 기류가 확산되고 있다”며 “민간 소비는 내년까지 한파를 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제 펀더멘털이 기울면서 미국 주식시장이 한파를 낼 경우 엔화가 가파른 상승세로 방향을 전환할 수 있다는 것이 월가의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