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중국 문화

속보

더보기

[나의 중국경험] 한중 수교가 맺어준 중국과의 특별한 인연, 임선우 박사

기사입력 : 2019년10월15일 17:02

최종수정 : 2020년04월13일 14:27

[서울=뉴스핌] 정리 주옥함 기자 = 중국과 한국은 지리적으로 '닭과 개 우는 소리가 들릴'정도로 가까운 나라다. 예로부터 선린우호의 왕래로 인해 한중 간에 바다를 초월한 우정을 쌓아 왔다. 특히 1992년 한중 수교 이래, 양국 관계는 전례 없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무역액은 약 43배나 늘어났고 인적교류 또한 2014년부터 '천만명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로써 한중 우호를 위해 수많은 인사들이 기여를 많이 해 왔다.

2004년 8월 톈진(天津)에서 열린 '한국주간' 우호의 밤 콘서트에서 주민들이 환호하고 있다.[사진=금교]

필자 개인적 발전은 중국의 성장, 한중 관계의 발전에 따라 함께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나는 남보다 조금 일찍 그 많은 나라 중에서 중국을 선택하여 중국에 와서 이 모든 것을 직접 내 눈으로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중국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을 지켜보다

내 인생의 황금기에 중국과 인연을 맺고 지금까지 30년이 되었다.

 "미래 시대는 중국의 것이다. 꼭 중국에 가야 한다."1988년 갓 결혼 한 우리는 한 지인 교수님의 이런 조언을 받았다. 그 교수님은 오늘 중국의 발전을 예견한 것 같았다. 당시에 한중 수교가 이루어지지 않아 우리는 대만 행 비행기를 탔다. 

1992년 8월 24일 한중 수교는 우리가족을 중국 대륙과의 인연을 맺게 해 준 중요한 날이었다. 처음 중국에 발을 내디뎠을 때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 마치 느리게 가는 시계추마냥 모든 것이 느렸다. 거리의 색상은 온통 회색조고 사람들의 옷차림은 군복 색과 회색으로 통일한 것 같았다. 지금처럼 화려한 색상은 찾아 볼 수가 없었고, 온 세상이 마치 흙색 도시로 보였다. 유일하게 시야에 들어오는 밝은 색은 빨간 시내 버스였다. 그 당시 이 빨간 버스는 두 칸으로 연결돼 정차역이 많아 행진 속도가 느렸다. '시간은 금이다'라는 개념은 그때에 무색한 것이었다.

거리는 네온 사인이 없어 저녁 해가 떨어지면 모두 집으로 들어갔다. 현재 저녁 시간을 즐기는 중국 문화와는 많이 달랐다. 오늘날 아파트 공터에마다 주민들이 모여 광창우(广场舞)를 즐겼다. 내가 지금까지 보아 온 중국 문화 중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꼽으라면 광창우를 꼽을 것이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함께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들의 표정들이 매우 즐겁고 행복해 보였다. 시간이 되면 나도 함께 하고 싶다.

나는 한중 환율 1:100일 때 중국생활을 시작하였으니 이런 중국의 발전과 변화, 중국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을 지켜 보았다. 지금도 이렇게 발전한 중국을 보면 놀랍고 기적 같았다.그러나 나의 중국 생활은 이런 모습들을 모두 수용하면서 서서히 익숙해져 왔다. 

◆어려움 속에 보인 진심

사람들은"중국은 인구가 많다"라는 말을 많이 한다. 이는 맞는 말이다. 어디를 가나 사람이다. 인구가 많으니 인재도 많다는 말로 풀이할 수 있다. 그런 인구가 만들어 낸 결과가 현재의 중국이다.이런 중국의 변화와 발전 속에서 나도 나의 미래를 꿈꾸기 시작했다. 그것은 포기했던 공부를 디시 시작한 것이다.

그 당시 우다코우(武大口)에 있는 지구촌학원에서 언어를 공부한 다음에 나는 중국 대학에 지원했다. 그 때 함께 공부하는 세 명의 중국 친구들이 나에게 많은 도움을 해 주어 나는 공부하는 내내 즐겁고 행복했다.

6월24일, 한중간 대형 호화 여객선 '군산펄'호가 산둥성 룽청(榮城)시 스다오신항(石島新港)에서 첫 출항을 했다.[사진=금교]

그런데 나에게 있어 가장 즐겁고 수확이 많은 것은 논문을 쓰기 위해 산시(山西)의 작은 촌락에 조사를 갈 때였다. 처음에는 낯선 시골로 조사를 가는 것이 두렵고 걱정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중국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라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그 당시 두려운 것이 없었던 것을 보면 나 또한 담이 컸던 모양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되지만은 않았다. 겨울에는 석탄 가스가 밖으로 새는 일이 생겨 죽을 뻔했다. 여름에는 청정지역이라 온 다리가 모기의 먹이감이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먹는 것도 걱정되었다. 사람들은 매일 빵과 면만 먹었기 때문이다. 산시 지역은 황토지역이라 논이 없고 밭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들과 생활하는 동안 밥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시골 출신이라 적응력이 좋았던 것도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들이 만들어 준 면 음식이 특별히 맛있었기 때문이다. 직접 수확한 밀을 마을 방앗간에서 빻아 음식을 만드니 도시에서 먹었던 면과 달리 맛있었다.

사람들도 너무 다정하고 친절했다. 낯선 외국인이 마을을 돌아다녀도 말을 걸어도 반갑게 맞아 주었다. 나에게는 또 다른 환경의 중국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나는 어느 듯 마을 사람들이 다 아는 외국인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적극적인 인터뷰 덕택으로 나의 박사 논문도 완성되었다. 논문의 제목은 '중국춘절 풍속과 인문정신' 이다. 이미 중국어판으로 출판이 되었다. 이 책 속에 내가 만났던 중국 산시 지역 사람들의 생활 모습도 담겨있다.

◆꿈을 향하는 중국

사람들은 한동안 중국을'아시아에서 떠오르는 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제 중국은 아시아가 아니라 세계에서 1·2위를 다투고 있는 경제 대국이 되었다. 아마도 이는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듯싶다. 

한중 수교 후 20여 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너무 많은 변화를 가져온 중국이다. 오늘날 가면 갈수록 많아지는 자가용으로 예를 들면 매일 도로는 자동차로 몸살을 앓는다. 1가정 2차량이 많기 때문이다. 처음 중국을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중국이 예전부터 이런 모습이었을 것으로 착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20여 년 전 고속도로에는 차가 많지 않았다. 그 넓은 고속도로에 내가 탄 차량과 한 두 대가 더 있을 정도였다. 지금 보이는 것은 지난 20년 동안 초 스피드 성장을 해 온 결과다.  

중국의 이런 기적 같은 일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발전의 또 다른 예는 까오티에(高铁)가 있다. 우리의 KTX와 같은 초 고속 열차를 부르는 말이다. 평균 시속은 330키로를 달린다. 더욱 믿기지 않은 것 인구가 이리 많은 중국에는 이런 기차 실명제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중국은 또 다른 변화를 하고 있다. 아니 이미 시작되었다. 바로 손안에서 노는 경제, 즉 핸드폰 하나로 초 스피드 결제방식을 도입한 IT강국 중국이다. 오늘날 웨이신과 즈푸바오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많이 쓰는 전자 결제방식이다.거리에서 구걸을 하는 사람도 웨이신이나 즈푸바오 바코드를 목에 걸고 다닌다.

이런 변화로 시장의 형태도 많이 달라지고 새로운 상품의 시장 진입과 전파력도 많이 빨라졌다. 중국에서 살고 있는 나 자신도 이런 중국의 너무 빠른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 숨가쁠 정도다.하지만 중국은 20여 년 동안 이런 기적 같은 일들을 계속 만들어 내고 있다. 

관광지 공왕부(恭王府) 앞의 필자. [사진=금교]

우리가 처음에 불안해했던 위생문제도 많이 해결되었다. 거리는 깨끗해졌고 네온사인으로 밤 풍경도 밝아졌다. 거리를 구경하다 보면 한 발만 가도 공중화장실이 있다. 게다가 화장실마다 관리자가 한 사람씩 붙어 있고 책임자의 이름과 연락처도 붙여 놓고 있다. 아마도 관리자가 책임도 지는 방식 같다.

그 동안 중국에서 살아온 경험을 통해 나는 중국이 굉장한 경쟁력을 가졌다는 점을 깨달았다. 바로 중국은 필요함을 느끼면 빨리 실행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중국 인구를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을 성공시킨 셈이다. 이 모든 것이 놀랍고 기적 같은 일이다.

한중 관계는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오늘날까지 걸어왔지만 또한 놀라운 성과도 많이 거뒀다. 그리고 작은 바람이 있다면 한중 중한 양국이 지금보다 더 윈윈하는 양국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글/임선우 전 허베이(河北) 경제무역대학교 한국어 강사

[금교(金橋, 중국 국무원 신문판공실 주관 잡지)=본사 특약]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오광수 낙마로 본 정권 인사 수난사 [서울=뉴스핌] 이재창 정치전문기자 = 인사는 만사다. 인사를 잘하면 지지율 상승과 함께 국정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반대로 인사가 망사가 되면 지지율이 떨어져 국정 운영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역대 대통령은 조각에서 난맥상을 보이며 후보자들의 잇따른 낙마로 애를 먹었다. 거의 예외가 없었다. 매 정권마다 초기 인사에 대한 비판적인 조어가 등장했다. 이명박 정부의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문재인 정부의 캠코더(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윤석열 정부의 서오남(서울대·50대·남성)이 대표적이다.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인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국민의 싸늘한 시선에 직면했다.  [서울=뉴스핌] 이재명 대통령이 12일 서울 서초구 한강홍수통제소에서 열린 수해 대비 현장 점검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2025.06.13 photo@newspim.com 이재명 정권도 예외는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의 인사에서 첫 낙마자가 나왔다. 이 대통령은 지난 13일 오광수 대통령실 민정수석비서관의 사의를 수용했다. 지난 8일 임명된 지 닷새 만이다. 공직기강 확립과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민정수석이 낙마한 게 더 아플 수밖에 없다. 인사 검증 작업에 차질이 생길 경우 인선이 늦어질 수 있다. 박근혜 정부는 조각에 52일 걸렸고, 문재인 정부는 195일 만에 조각을 완성했다. 윤석열 정부는 조각에 181일이 소요됐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날 오전 브리핑을 통해 "오 수석이 어젯밤 이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다"며 "이 대통령은 공직기강 확립과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민정수석의 중요성을 감안해 오 수석의 사의를 받아들였다"고 했다. 오 전 수석은 검찰 '특수통' 출신으로 이 대통령의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다. '검찰 개혁'의 특명을 부여받았으나 대출 및 부동산 차명 관리 의혹이 잇따라 제기돼 결국 낙마했다. 이 대통령은 사법 개혁 의지와 국정 철학을 이해하는 인사로 조속한 시일 내에 차기 민정수석을 임명할 예정이지만 인사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게 됐다. 자연스레 인사 검증 기준이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 않아도 제안을 받는 인사 열에 일곱 정도는 스스로 "검증 통과를 자신할 수 없다"며 손사래를 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인사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오 전 수석에 이어 추가 낙마자가 나오면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자칫 임기 초반 인사로 어려움을 겪었던 전 정권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 여당 내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 이유다. 김용민 민주당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이날 KBS 라디오에서 "여당 의원의 일원으로서 집권 초기에 이런 문제가 불거진 것에 대해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면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인사 수난사는 역대 정권에서 되풀이됐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2월 발표한 1차 조각에서 남주홍 통일부 장관 후보자, 박은경 환경부 후보자, 이춘호 여성부 장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부동산 투기와 위장 전입 의혹에 휘말려 낙마했다. 박근혜 정부의 초대 내각 인사도 이명박 정부의 닮은꼴이었다. 김용준 국무총리 지명자는 부동산 투기와 아들 병역 면제 의혹이 불거져 지명 5일 만에 자진 사퇴했다.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와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 황철주 중소기업청장 내정자도 스스로 물러났다. 2014년 6월에는 사의를 밝힌 정홍원 총리 후임으로 지명한 안대희(고액 수임 전관예우 논란), 문창극(역사관 논란) 후보자가 잇따라 낙마했다. 문재인 정부 조각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불법 혼인신고 사건 등으로 사퇴했다.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이유정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도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각종 논란이 불거지면서 낙마했다. 윤석열 정부도 다르지 않았다. 김인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를 비롯해 정호영·김승희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송옥렬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낙마했고,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35일 만에 학제 개편 논란 등으로 사퇴했다. 역대 정부에서 낙마자가 속출한 것은 인사 검증 시스템이 부실한 것이 원인이지만 대통령의 오기 인사도 한몫했다. 대통령이 특정 인사를 고집하면 주변에서 누구도 강하게 반기를 들기 어렵다. 결국 주요 보직에 임명되거나 지명된 뒤 논란이 불거져 낙마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됐다. leejc@newspim.com 2025-06-14 06:00
사진
李대통령, 대북 전단 처벌대책 지시 [세종 = 뉴스핌] 김범주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14일 대북 전단 살포와 관련해 예방과 사후 처벌에 대한 대책을 관련 부처에 지시했다. 대통령실 강유정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이 대통령이 이같이 지시했다고 밝혔다. 지난 13일 이재명 대통령이 경기도 연천군 육군 25사단 비룡전망대를 방문해 장병들을 격려하고 있다/사진=이재명 대통령 인스타그램 이날 새벽 강화도에서 민간 단체가 북한 지역으로 전단을 살포한 것이 확인되면서 내린 지시로 파악됐다. 강 대변인은 "이재명 정부는 접경지역 주민의 일상과 안전을 위협하고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는 불법적인 대북 전단 살포는 중단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며 "정부가 입장을 밝혔음에도 이를 위반한 데 대한 상황을 엄중히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의 지시로 오는 16일 통일부 주관으로 유관 부처 회의를 열어 대북 전단과 관련한 종합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한편 대북 전단을 살포한 민간 단체와 개인에 대해서는 법 위반 여부를 따져 조치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전날 접경지역 주민 간담회에서 통일부의 대북 전단 불법 살포 자제 요청에 '이를 어기고 대북 전단 살포 행위를 할 경우 처벌하겠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힌 바 있다. wideopen@newspim.com 2025-06-14 19:50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