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이 기사는 10월 4일 오후 3시34분 프리미엄 뉴스서비스'ANDA'에 먼저 출고됐습니다. 몽골어로 의형제를 뜻하는 'ANDA'는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과 도약, 독자 여러분의 성공적인 자산관리 동반자가 되겠다는 뉴스핌의 약속입니다.
[서울=뉴스핌] 김세원 기자 = 멕시코의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이하 '암로') 대통령이 자금난에 빠진 국영석유기업인 페멕스(PEMEX)에 금융 지원을 단행하는 등 페멕스 부흥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하지만 페멕스 정상화라는 암로 정부의 원대한 계획을 향한 비난과 부정적인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고 3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멕시코 레온주(州) 몬테레이 소재 주유소에 걸려 있는 국영 석유회사 페멕스(PEMEX)의 로고. 2019.06.17. [사진=로이터 뉴스핌] |
◆ 페멕스, 생산량 감소 등으로 빚더미에 허덕
암로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취임사를 통해 빈곤과 경제 둔화를 낳은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은 재앙이었다"고 주장하며 국영기업 중심 정책으로의 회귀를 선언했다. 당시 수많은 이들이 암로 대통령의 발언에 공감했지만,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가 내놓은 해결책은 논란을 낳고 있다. 암로 대통령이 경제 활성화 정책의 일환으로 하락세를 걷는 국영기업 페멕스의 정상화에 사활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페멕스는 1938년이 탄생한 멕시코 최대의 국영 석유회사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라사로 카르데나스가 미국과 영국의 석유 기업들이 소유하고 있던 자산을 몰수하고, 석유산업의 국유화를 선언했다. 이 과정에서 설립된 페멕스는 고공성장을 이어갔으며, 멕시코 최대 기업이자 중남미에서 두 번째로 큰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2004년 페멕스의 하루 평균 석유 생산량은 340만배럴을 기록하며, 정점을 찍기도 했지만 이후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멕시코의 최대 유전이었던 칸타렐에서는 이미 석유가 고갈됐으며, 또 다른 유전인 쿠 마룹 잡에서도 석유는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고갈되고 있다. 페멕스는 여전히 멕시코 재정의 5분의 1을 차지하고 있지만, 투자 고갈과 생산량 감소 등의 문제로 현재는 빚더미에 허덕이고 있다.
페멕스는 올해부터 운영되는 새 유전들을 통해 오는 2026년까지 하루 평균 원유 생산량을 300만달러로까지 늘리는 방안을 계획하고 있다. 이는 2007년 이후 페멕스가 단 한 번도 달성한 적이 없는 수치다. 전문가들도 이는 영국의 BP나 미국의 엑슨모빌(Exxon Mobil)도 이루기 힘든 비현실적인 계획이라며 고개를 가로젓고 있다.
원유 고갈 외에 생산성 대비 과도하게 많은 인력도 페멕스의 하락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FT는 페멕스가 라이벌인 브라질의 국영에너지회사 페트로브라스(Petrobras) 보다 벌어들이는 수입은 10% 낮은데 직원은 두배 더 많이 고용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영국의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국영 석유회사 전문가인 발레리 마르셀은 "많은 노동 인력이 자산이 되기보다 (회사에) 부담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도 프랙킹(fracking·셰일 가스 시추 기술)과 해저 석유 자원 탐사 등에 대한 전문기술 부족이 페멕스의 하락세를 이끌고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페멕스의 한 전직 고위 관리는 "페멕스는 몇 년 동안 형편없이 운영되어 왔다"면서 "매년 손해를 보고 있으며, 빚을 내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유가 하락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결국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지난 6월 페멕스의 신용등급을 정크 등급으로 강등했으며, 같은 달 무디스 역시 페멕스가 멕시코의 중기 재정 전망에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는 부정적인 진단을 내린 바 있다. 반면 암로 대통령은 신용평가사들이 비전문적이며 "구시대적인 신자유주의 방식"을 사용했다고 비난했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이 지난달 1일(현지시간) 멕시코 왕궁에서 첫 국정연설을 하고 있다. 2019.09.01. [사진=로이터 뉴스핌] |
연이은 부정적인 전망에도 암로 대통령은 페멕스 회생이라는 계획을 쉽사리 놓지 않고 있다. 대신 암로 대통령은 원유 비축량을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고, 도스 보카스에 설립되는 정유 공장에 대한 야심찬 투자를 통해 미국산 석유 수입 의존도를 낮출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있다.
하지만 미국 우드로윌슨센터의 멕시코 연구소장 던컨 우드는 "전형적인 20세기 상품인 석유로 21세기 경제를 이끌 수 있다는 생각이 매우 이상하다"고 비판했다. 페멕스와 정부의 전직 고위 관리들도 암로 대통령의 페멕스 '구제 정책'이 단단히 잘못됐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전문가들은 암로의 페멕스 정상화 계획이 결국 페멕스의 신용등급 강등과 멕시코의 경제 둔화에 대한 리스크만 키우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페멕스의 한 전직 임원은 FT에 암로 대통령의 페멕스 생산량에 대한 집착이 회사의 재정에 피해를 입히고 있으며, 직원들에게도 압박감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직 임원은 "페멕스의 어떤 최고경영자(CEO)도 수익을 창출하는 방안을 모색하지 않고 있다"면서 "그들은 생산량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것이 바로 대통령이 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털어놓았다. 페멕스 역시 수익성 개선 방안을 강구하기 보다 대통령의 눈치만 살피며, 구미에 맞는 계획을 내놓기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멕시코의 또 다른 고위급 정부 관리는 "페멕스는 오브라도르 대통령이 어떻게 정책을 실행하는지 알 수 있는 아주 좋은 케이스"라고 표현했다. 관리는 이어 "그는 무언가 원대한 것을 이루고 싶어 하지만 정작 전문가들이 실행 가능하다고 믿는 계획은 가지고 있지 않다. 이는 보안 개선, 부패 근절 등 모든 분야에 해당된다"고 지적했다.
ING 라틴아메리카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구스타브 랭글은 페멕스의 계획이 제대로 이행되지 못할 경우 "경기 침체와 신용등급 강등이라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세계은행의 이코노미스트인 루이스 데 라 까예는 "암로 정부의 가장 큰 리스크는 무능한 이데올로기와 무능한 통치 방식, 무능한 인사 발탁 세 가지"라고 비판했다. 까예 이코노미스트는 그러면서 암로 대통령의 페멕스 부흥책이 "성공할 가능성은 낮다"고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원유 배럴 [사진=로이터 뉴스핌] |
saewkim91@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