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선미 기자 =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가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각국 정상 및 정부 대표, 재계 및 시민사회 지도자, 국제기구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됐다.
이 회의는 지구 온난화를 늦추기 위해 세계경제의 화석 연료에 대한 의존을 끊어내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였으나 결국 구체적 약속은 없고 말뿐인 잔치가 됐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기후행동 정상회의에 모습을 드러냈다. 당초 회의에 불참하기로한 트럼프 대통령은 오전 세션에 10분간 참석한 뒤 세계 종교 박해와 관련된 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회의장을 떠났다. 2019.09.23 [사진=로이터 뉴스핌] |
유엔본부 앞에서 열띤 기후변화 시위가 벌어지고 있었지만,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한 미국은 침묵으로 일관했고 중국은 새로운 약속을 내놓지 않았으며 여타 국가들은 과거의 약속만을 되풀이했다.
이번 회의 연사로 나선 스웨덴 출신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16)는 안일주의에 빠진 세계 정상들을 따끔하게 질책했다. 툰베리는 분노에 찬 떨리는 목소리로 “미래 세대의 구성원들이 모두 당신들을 주시하고 있다”며 “당신들이 우리를 실망시킨다면 우리는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모든 것이 잘못됐다.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도 잘못됐다. 나는 이곳이 아니라 대서양 건너편 학교에 있어야 했다. 하지만 당신들은 여전히 미래 세대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일부 구체적인 조치가 나오기는 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77개국이 2050년까지 ‘배기가스 제로’를 목표로 세웠다고 밝혔고, 일부 펀드매니저들은 2050년까지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투자를 약속했으며, 일부 재계 지도자들은 파리협정을 준수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수년 간 기후변화 논의에 관여해 온 시민단체와 외교관들은 이번에도 역시나 실망을 금치 못했다고 전했다. 앤드류 스티어 세계자원연구소 대표는 “선진국들은 대부분 몹시 실망스러웠다”며 “전 세계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과 비교해 선진국들의 의욕이 매우 저조하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번 회의에서 연설을 하지 않고 짧은 시간 동안 모습만 드러냈다. 대신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이 연단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오늘 논의가 기후 정책을 구성할 때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해 방청석으로부터 웃음과 갈채가 터져 나왔다.
이는 몇 년 전만 해도 미국이 나서서 중국 등을 비난하며 기후변화 대응책을 촉구하던 것과 사뭇 대조적인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파리협정에서 탈퇴한 후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환경 규제도 연이어 철회했다.
잠시 후 트럼프 대통령이 복도를 지나갈 때 뒤에서 툰베리가 노려보는 모습이 영상으로 찍혀 트위터에 유포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UN 기후변화 회담에 예기치 않게 등장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바라보는 스웨덴의 17세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날카로운 시선. 2019. 09. 23. [사진=로이터 뉴스핌] |
각국 정상들은 기대에 못 미치기는 했지만 저마다 기후변화 대응책을 내놓았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특사 자격으로 회의에 참석한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중국은 파리협정을 준수하고 있지만 어떤 국가는 그렇지 않다”며 미국을 공격했다.
하지만 미국과의 무역전쟁 와중에 경제성장세 둔화 우려까지 겹친 중국은 적극적인 기후변화 대응책을 내놓지 않았으며, 다른 선진국들이 나서지 않는 한 중국만 부담을 지지 않겠다는 입장마저 보였다.
유럽연합(EU)도 배기가스 저감 속도를 가속화하겠다는 신호를 보내지 않았으며, 미국은 파리협약을 지키겠다는 약속조차 하지 않았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2022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겠다고 말했지만 석탄 의존도를 줄이겠다는 약속은 하지 않았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앞으로 10년 간 클린 에너지로의 전환을 가속화하기 위해 600억달러를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는 파리협정을 비준하겠지만 국영 석유산업이 배출하는 어마어마한 배기가스를 감축하겠다는 약속을 내놓지 않았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개막 연설에서 “그 때가 되면 나는 이 세상에 없겠지만 내 손녀들과 당신의 손주들이 남아 있을 것”이라며 “나는 우리 손주들의 유일한 집을 파괴하는 공범이 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혈세를 화석연료 프로젝트 보조금으로 쓰는 국가들을 겨냥해 “이들이 허리케인과 열대성 질병, 분쟁을 초래한다”고 강력하게 비난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우리는 기후 변화라는 깊은 구덩이에 빠져 있다. 여기서 빠져 나가려면 구덩이를 더 깊게 파서는 안 된다”며 “우리의 미래 세대의 숨을 막히게 하는 석탄 공장을 늘리는 것, 수백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집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위험하게 만드는 더러운 공기를 만드는 기업들이 이익을 챙기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라고 반문했다.
미국 뉴욕 유엔본부 앞에서 기후변화 시위를 주도하는 그레타 툰베리 [사진=로이터 뉴스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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