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새벽 화재·16시간만에 불 꺼진 '제일평화시장'
상인들 "올 하반기 장사 공쳐...망연자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자영업자...장사 못해 타격"
"피해 상황 알 수 없어...온갖 말 떠돌아"
[서울=뉴스핌] 윤혜원 기자 = “건질 건 건지고 빨리 장사해야 하는데, 상가 안이 어떻게 돼 있는지도 모르니 답답하기만 합니다.”
23일 오전 9시 서울 중구 신당동 제일평화시장은 상인들의 한숨으로 가득했다. 전날 새벽 발생한 큰 불로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상인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평소대로라면 아침 장사를 위해 막 문을 열었을 시간이었지만, 상인들은 반나절을 넘게 타오른 불길의 흔적 탓에 제일평화시장 상가(제평상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주변을 서성였다.
지난 22일 0시40분쯤 불이 나 16시간여 만에 진화된 서울 중구 신당동 동대문 의류 상가 제일평화시장. 2019.09.23. hwyoon@newspim.com |
지상 7층, 지하 1층짜리 제평상가는 16시간여에 걸쳐 기세를 떨친 화마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불이 시작된 3층을 중심으로 까맣게 그을린 쇠철근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깨진 유리창과 계단 너머에는 물이 줄줄 흘렀으며 현장 인근에는 탄내가 맴돌았다.
상인들은 경찰과 소방당국이 설치한 안전유지선 너머로 가게를 살피고 현장을 지켜봤다. 가게의 상태가 어떤지, 건질 만한 물건은 있는지 궁금한 마음이었지만 애써 억누르는 모습이었다.
특히 가을과 겨울 상품을 본격적으로 판매하기 시작하는 시기에 불이 나 대목에 맞춰 사둔 새 옷들을 팔지 못하게 됐다며 통탄을 금치 못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자영업자 형편에 장사를 못하게 돼 생계에 지장이 크다며 한숨을 지었다.
제평상가 4층 여성복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서모(50)씨는 “주말에서 평일로 넘어가는 지난 주말이 가을·겨울 시즌의 시작을 알리는 시점이었다”며 “가을, 겨울 옷을 매입해놓고 소매점이나 백화점으로 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불이 나서 망연자실할 뿐”이라고 토로했다.
서씨는 “몸이 안 좋아 병원에 입원 중이었는데 어젯밤 화재 소식 듣자마자 달려왔다. 저처럼 밤을 지새운 상인들이 한 둘이 아니다”며 “무사한 옷은 얼른 챙기고 한시라도 빨리 장사를 다시 할 수 있으면 하는 마음뿐이다”고 강조했다.
5층에서 모피와 가죽 제품을 팔고 있는 유모(53)씨는 “모피나 가죽 제품은 가을, 겨울에 한정해 상품을 팔 수 있어 특히 중요한 시기였다”며 “옷이 직접 불에 타지 않았더라도 냄새가 다 배어 옷을 팔지 못할 것 같다. 이번 불로 올해 장사 전체를 공치게 됐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하루 장사 못 하면 매출이며 월세며 다 날리게 된다. 제평상가에 입주한 상인들 대부분이 셋살이를 하고 있다”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영세상인들로서는 피해가 너무 크다”고 하소연했다.
지난 22일 0시40분쯤 불이 나 16시간여 만에 진화된 서울 중구 신당동 동대문 의류 상가 제일평화시장 인근에 상인들이 모여있다. 2019.09.23. hwyoon@newspim.com |
상인들은 화재로 인한 피해를 정확히 확인할 수 없다며 답답함도 호소했다. 상가 시설과 상품 등의 훼손 정도에 대해 알 수 없으니 이도저도 못하고 불안해하는 상황에 처했다는 설명이다.
일부 상인들은 격앙된 목소리로 상가 안으로 들어가 직접 둘러보게 해달라고 경찰과 소방 관계자들에 요구하기도 했다.
제평상가에서 20년 동안 장사를 해왔다는 1층 상인회장 류영명(62)씨는 “상인들이 화재로 크게 충격 받고 동요하는 상황”이라며 “상인들의 연락처를 확보해 서울시 등으로부터 전달 받은 화재 관련 현황들을 공유하려는 중”이라고 전했다.
이날 화재 현장에는 정치권의 발길도 이어졌다.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와 조배숙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제평상가를 방문해 현장을 둘러보고 상인들과 얘기를 나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정확한 화재원인 규명을 위한 조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hwyoo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