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외화LCR 의무화 실시...6대은행 116%로 권고치 대폭 이상
2008년 금융위기 반면교사...외화LCR비율 의무화로 건전성 관리중
[서울=뉴스핌] 한기진 기자 = “아마 1997년 초였을 겁니다. 결제 마감시간까지 초조하게 기다렸는데 일본 단자회사들이 결국 빌려달라는 자금을 끝내 중단했어요. 이게 트리거가 돼 다른 외국계 은행들도 자금공여를 중단했고, 결국 외화가 부족해 은행들이 도산하고 외환위기가 터진 겁니다.”
1997년 일본 지점에서 일했던 A은행 고참 부장은 IMF외환위기의 시발점을 이렇게 기억했다.
“당시 국내 대출 시장에서 외국계 자금의 40%가 일본계 금융회사였을 만큼, 일본 영향력은 컸어요. 일본 은행은 3월말 결산이 다가오자 한국 대출을 회수했고, 한국 은행들이 외화유동성에 문제가 있다는 소문으로 확산돼 외화 도미노 유출을 촉발한 겁니다. 우리나라 은행들도 외화를 단기로 조달해 중장기 원화 대출로 활용하면서, 외화자산과 부채 만기가 일치하지 않는 등 자금운용의 취약성도 심각했고, 결국 그대로 당한 겁니다"
이런 기억탓에 일본의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의 창 끝이 결국 금융시장 혼란을 야기할 것이란 우려가 여전히 나오고 있지만 금융당국과 은행권은 일본의 자금회수가 과거와 같은 외화유출을 촉발시키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세코 히로시게 일본 경제산업상이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밝히고 있다. [사진=NHK 캡처] |
금융당국과 은행권에 따르면 최근 우리나라 은행들은 초단기 외화유출에 대비한 ‘외화유동성 커버리지비율(LCR)’을 ‘의무’기준으로 준수하고 있다. 금융위기처럼 단기에 위기가 불거져 외화가 급격하게 유출할 것을 대비해 30일 동안 버텨낼 고유동성 외화 및 자산을, 순현금(외화)유출액 대비 80% 이상 보유하는 규제로 국제 은행규제 기구인 바젤은 ‘권고’ 사안으로 하고 있다.
우리 금융당국은 2017년부터 의무규제로 시행중이다. KB국민은행, 우리은행, 신한은행, KEB하나은행, SC제일은행, 한국씨티은행 등 6대 시중은행의 2019년 3월말 기준 LCR은 116.6%로 기준치(80%)를 훌쩍 넘는다. 즉 30일이라는 초단기간에 유출될 외화보다 더 많은 외화 현찰과 즉시 현금화할 외화자산을 갖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 고유동성자산의 규모를 보면 174억5000만달러로, 당국이 금융위기와 같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스트레스테스트를 실시한 결과 순외화현금유출액(30일)은 149억6000만달러로 집계됐다. 외화가 모두 유출돼도 25억달러 가량을 더 보유하고 있다는 의미다.
일본계 은행이 한국 내에 보유하고 있는 대출 등 단기(1년 기준) 자산 114억달러(2018년말)를 만기까지 기다리지 않고 한달 내에 모두 회수해도 6대 시중은행의 고유동성 자산이 60억달러 많다. 시중은행들은 또한 약정기간 동안 일정금액에 대해 수수료를 지급하고 언제든지 인출할 수 있는 커미티드 라인(committed line)을 해외 금융기관과 체결해놓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큰 효과를 본 수단이어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강태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외화LCR은 바젤도 권고 수준인데 우리나라만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외화조달에 어려웠던 경험 탓에 의무화해 지금은 일본이 돈을 모두 빼도 문제없게 됐다”고 말했다.
은행권이 걱정하는 분야는 수출 대기업이 쓰러지는 사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수년 전 대형 조선, 건설사의 구조조정으로 은행들이 수천억원 손실을 입는 등 큰 어려움을 겪은 바 있어, 이런 사태가 일본 수출규제로 재발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hkj77@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