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규 부산지법 부장판사, SNS에 글 게재
"나라면 1·2심처럼 판단했을 것...대법, 보충적 원칙들로 각종 장애 쉽게 넘어"
"목적 실현 도구로 판결 활용 피해야...법원, 감당하기 힘든 실수"
[서울=뉴스핌] 윤혜원 기자 = 현직 부장판사가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판결을 공개 비판했다.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김태규(52·사법연수원 28기) 부산지법 부장판사는 전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징용배상 판결을 살펴보기’란 제목의 A4용지 26쪽 분량의 글을 올렸다.
김 부장판사는 2012년 신일본제철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취지로 파기환송 되고 지난해 최종 확정된 대법원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해 “나라면 아마 최초 제1심과 제2심 판결(원고 패소)처럼 판단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 부장판사는 “원고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소멸시효, 법인격의 소멸, 기판력의 승인이라는 엄청난 장애를 넘어야 했다”며 “이러한 장애를 대법원은 신의성실의 원칙이나 공서양속위반 금지의 원칙과 같은 보충적인 원칙들로 쉽게 넘어 버렸다”고 비판했다.
[서울=뉴스핌] 최상수 기자 = 지난해 10월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일제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신일철주금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재상고심 판결 등 전원합의체가 열리고 있다. 2018.10.30 kilroy023@newspim.com |
김 부장판사는 소멸시효 문제에 대해 “이 사건은 1945년으로 돌아가는데, 소송이 최초 제기된 2005년까지 봐도 약 60년의 세월이 흘렀고 일본과 국교가 회복된 1965년을 기준으로도 40년의 세월이 흘렀다”며 “민법 766조에서 정하는 불법행위의 소멸시효 기간을 훌쩍 넘어선다”고 주장했다.
법인격 문제와 관련해서는 “원고들을 고용했던 구 일본제철은 1950년 해산하면서 소멸됐다고 볼 수 있다”며 “후지제철과 합병해 태어난 신일본제철 역시 원고들을 고용했던 기업체가 아니다. 신일본제철은 원고들을 고용한 당사자가 아니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기판력(확정판결된 사건을 다시 재판해 뒤집지 못하도록 하는 효력) 문제에 대해서는 “민사소송법은 일정한 요건이 갖춰지면 다른 나라 법원이 한 판결에 대해서도 기판력을 인정하고 있다”며 “이 사건에서도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한 일본 법원의 판결이 확정돼 기판력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법원은 헌법을 인용해 일본의 판결이 공서양속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며 “헌법을 사적 분쟁의 공서양속에 관한 판단기준으로 삼았다는 것이 특이하다”고 평가했다.
김 부장판사는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로서 판결이 활용되는 것은 피해야 한다”며 “법관은 징용된 사람들에 대한 보상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사람들의 의지를 담아 판결하고 싶은 충동이 들 수 있지만, 판결은 법관의 이상을 구현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2012년 상고심을 통해 보충적인 법 원리 등으로 원칙을 무너뜨리는 해석을 했다는 생각이다”라며 “당시 대법원의 판결로 어찌 보면 법원은 감당하기 힘든 실수를 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비판했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1997년 일본제철(당시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일본 오사카 지방재판소에 강제징용 피해 보상 및 임금 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2003년 일본 최고재판소는 1965년 한일 양국이 맺은 청구권협정에 의해 개인에게 배상할 책임이 없다며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에 피해자들은 2005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피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1심과 2심은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대법원은 2012년 신일철주금에 배상 책임이 있다는 취지로 원심을 깨고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2013년 파기환송심은 대법원 취지대로 신일철주금이 피해자 4명에게 각각 1억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지난해 10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판결을 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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