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조에 힙학 가락 붙인 뮤지컬 '스웨그 에이지:외쳐, 조선!'
스페인 여배우 삶 힙합으로 표현한 '라 칼데로나'
마니아 장르, 가사 전달력 등 한계점은 보완해야
[서울=뉴스핌] 황수정 기자 = 조선시대가 배경인데 한복을 입고 랩을 한다. 17세기가 배경인 무대 한가운데서 디제잉이 펼쳐진다. 낯설지만 신선한 시도가 뮤지컬 무대 위에서 벌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최근 인기가 높은 '힙합'과 결합하면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 공연 장면 [사진=PL엔터테인먼트] |
지난달 개막한 창작 뮤지컬 '스웨그 에이지:외쳐, 조선!'(연출 우진하)은 전통과 현대의 트렌드를 조화시킨 작품이다. 배경은 '시조'가 국가 이념인 상상 속 조선. 비밀시조단 골빈당이 시조를 통해 백성의 고단함과 역경을 세상에 알리며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다는 내용이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점은 랩과 힙합의 만남이다. 창극이나 판소리 중 빠른 템포와 중독성 강한 노랫말이 돋보이는 음악이 있는데 이는 현대의 랩과 비슷하다. 또 시조의 압운이 랩의 라임과 맞아떨어지면서 독특한 운율을 만들어 낸다. 민족의 한을 힙합의 흥으로 승화시키면서 신나는 공연이 탄생했다. 여기에 힙합 댄스도 더해진다.
작곡가 이정연은 "최근 많은 분이 사랑하는 장르가 힙합이다. 조선이 배경이라서 판소리나 전통 장단이 나오는 것이 일차원적인 발상으로 느껴졌다. 재밌고 공감을 주려면 음악도 친숙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며 "여러 장르의 음악을 국악이란 공통된 장르로 묶는데 신경을 썼다"고 밝혔다.
안무가 김은총은 "남들이 하지말라고 하는 걸 다 해보고 싶었다. 한국 무용 또는 스트리트 댄스만 나오는 것도 싫었다. 락킹, 스트리트 댄스, 간단한 발레, 비보잉 등 여러 동작을 최대한 다양한 배우가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핵심 동작을 가르쳐주고 박자 안에서 본인들이 원하는 대로 표현해달라고 주문했다. 그래서 공연마다 매번 다른 안무를 만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스페인 뮤지컬 '라 칼데로나' 공연 장면 [사진=딤프 사무국] |
이에 앞서 지난 8일 폐막한 제13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에서는 스페인의 힙합 뮤지컬 '라 칼데로나'가 큰 호응을 얻었다. 스페인의 왕 펠리페 4세의 연인 중 논쟁적 인물인 '마리아 칼데로나'의 일생을 블랙 코미디로 펼친 작품으로, 힙합과 디제잉의 만남만으로도 기대를 높였다.
두 명의 배우가 다양한 역할로 분하며 역할의 성별을 구분하지 않는다. 여기에 디제이가 참여해 자연스럽게 리듬을 타게 만든다. 스페인어로 공연되는데다 많은 양의 자막이 필요했기 때문에 관객이 극의 흐름을 놓치지 않도록 DIMF 측이 각 장면에 대한 소개가 담긴 책자를 나눠주기도 했다.
DIMF 관계자는 "스페인은 DIMF에 처음 참가하는 국가다. 한국에서 접하기 어려운데 힙합, 랩, 디제잉까지 있어서 색달랐고 작품 자체가 좋아서 초청하게 됐다"며 "관객 반응은 예상보다 훨씬 좋았다. DIMF에서만 만날 수 있는 신선한 작품이란 평가였다. 우리가 한국 힙합을 들을 때 가사가 잘 안들려도 즐기듯, 가사가 관객에게 큰 영향을 주는 것 같진 않았다"고 말했다.
뮤지컬 '인 더 하이츠' '무선페이징' 포스터 [사진=SM엔터테인먼트, ㈜라이브] |
뮤지컬과 힙합의 만남이 흔하진 않지만,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5년 뮤지컬 '인 더 하이츠'가 국내에서 최초 라이선스 무대를 선보였으며, 2017년 재연도 했다. 뉴욕의 라틴 할렘이라 불리는 워싱턴 하이츠를 배경으로 이민자의 삶과 꿈을 전하는 작품으로 힙합, 랩, 스트리트 댄스 등으로 꾸며졌다. 지난해에는 스토리 작가 데뷔 프로그램 '글로컬 뮤지컬 라이브' 시즌3 쇼케이스 당시 소방관과 유튜버 래퍼의 우정을 다룬 힙합 뮤지컬 '무선페이징'이 선정되기도 했다.
힙합은 뮤지컬의 주 관객층인 2030세대에게 친근한 문화다. 또 직접적이지만 재치 있는 가사 혹은 대사를 활용할 방법이 무궁무진하다. 다만 여전히 과제는 있다. 단순히 듣고 감상하는 노래와 달리 뮤지컬은 스토리 전개에 넘버가 중요한 역할을 해서 배우들의 가사 전달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장르적 매력을 얼마나 잘 살리느냐도 큰 숙제다.
한 공연 관계자는 "힙합은 아직 메이저라기보다 마이너다. 공연으로 제작하기에 장르적 어려움도 있다"며 "래퍼를 쓰면 연기를 못하고 기존 배우들은 랩 실력이 부족하다. 랩과 연기, 노래를 모두 잘 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 힘들다"고 짚었다.
hsj1211@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