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 30일 김정은 위원장 손 잡고 군사분계선 넘어
역사상 최초로 북녘 땅 밟은 美 합중국 대통령으로 기록
연이은 역사적 순간의 탄생…트럼프 “MDL 넘게 돼 큰 영광”
[서울=뉴스핌] 하수영 기자 = 6월 30일 오후 3시 46분. 미 합중국 대통령이 역사상 처음으로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북녘 땅을 밟은 역사적인 시간이다.
앞서 이날 오후 3시 28분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남측지역 ‘자유의 집’ 앞은 취재진, 그리고 미국과 북측의 경호원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곳은 180도로 뒤돌아서 보면 군사분계선(MDL)과 JSA 북측지역 ‘판문각’이 보이는 곳이다.
[판문점 로이터=뉴스핌] 최원진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6월 30일 비무장지대(DMZ) 내 판문점에서 만났다. |
◆오후 3시 45분, 트럼프 대통령 '자유의 집'에서 혼자 걸어나오자 '와~'
10여분 뒤인 3시 41분, 북측 경호원들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역사적인 순간을 앞두고 있다’는 것을 알리려는 듯 북측 경호원들은 잔뜩 굳은 표정으로 MDL 주변을 맴돌았다.
3시 44분,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우리 측 관계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어 3시 45분, 마침내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판문점에 도착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곧바로 나오지 않고, 트럼프 대통령만 자유의 집에서 나와 모습을 드러냈다.
곧바로 트럼프 대통령은 차분하고 담담하게 역사적인 순간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현장 취재진들은 물론 생중계를 통해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이들은 모두 숨죽이고 트럼프 대통령의 움직임을 눈으로 쫓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 30일 군사분계선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맞은 편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NHK] |
◆역사적인 오후 3시 46분...북미 정상, 남북 경계선 사이에 두고 악수 나누며 조우
자유의 집 계단을 걸어 내려온 트럼프 대통령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MDL을 향해 걸어 나갔다.
그리고 그 시각, 판문각에서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역사적인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빠른 속도로 MDL을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갑작스러웠고, 그 것도 SNS를 매개로 성사된 만남이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얼굴에 웃음을 가득 띄운 채로 트럼프 대통령을 맞이했다.
3시 46분, 북미 두 정상은 MDL을 사이에 두고 악수를 나눴다. 북한과 미국의 대통령이 MDL에서 악수를 나눈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 30일 비무장지대(DMZ) 군사분계선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 군사분계선을 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땅을 밟은 첫 미국 현직 대통령이 됐다. [사진=NHK] |
◆김정은 "여기서 한 발짝 넘으면 북한 땅 밟은 첫 미국 대통령입니다"
그러나 역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여기서 한 발짝 넘으면 사상 처음으로 북한 땅을 밟은 미국 대통령입니다”라는 말을 건넸다.
그 말을 들은 트럼프 대통령은 곧바로 김 위원장의 손을 잡고 MDL을 넘었다. 이로써 트럼프 대통령은 역사상 최초로 걸어서 북한의 영토에 도달한 미 합중국 대통령이 됐다.
MDL을 넘은 북미 두 정상은 그곳에서 한 번 더 악수를 했다. 그리고 곧이어 3시 48분 다시 MDL을 넘어 판문점 남측지역으로 넘어왔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두 정상 모두 내내 활짝 웃는 얼굴이었다.
MDL을 넘어 판문점 남측지역 자유의 집 앞에 선 북미 두 정상은 취재진 앞에 섰다. 그리고 역사적인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과거를 청산하고 앞으로, 미래로 나아갑시다.” 김 위원장의 짧지만 강렬한 한 마디가 나오자 트럼프 대통령도 “정말 좋다”, “영광이다”, “긍정적이다” 등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긍정적인 표현을 총동원하겠다는 듯 이 순간을 화답했다.
“정말 좋은 날입니다. 북한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고 큰 영광입니다. 엄청 긍정적인 일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외신에 따르면 당초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만남을 놓고 “김 위원장이 만약 DMZ에 온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2분 동안 만나는 것이 전부겠지만 그래도 좋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서울=로이터 뉴스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6월 30일 오후 판문점에서 만나 군사분계선을 넙고 있다. |
◆자유의 집에서 걸어나온 문 대통령, 김 위원장 어깨 토닥이며 웃음
하지만 북미 두 정상이 함께 한 시간은 벌써 2분을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함께 MDL을 걸어서 넘고, 악수를 하고, 역사적인 순간을 말로써 기록하기도 했다. 서로를 ‘미치광이’라 비난했던 두 사람은 SNS 제의를 통해 ‘깜짝 만남’을 가진 데 이어 예상보다 긴 시간 함께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등 파격에 파격을 이어가고 있었다.
북미 두 정상의 약식 기자회견이 끝난 3시 51분, 문 대통령이 드디어 자유의 집에서 나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웃으며 김 위원장의 어깨를 토닥였다. 얼마 전 외무성 담화문을 통해 문 대통령의 ‘중재자’ 역할을 공개 비난한 북한이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판문점 로이터=뉴스핌] 최원진 기자= 문재인 대통령(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 30일 비무장지대(DMZ) 내 판문점서 회담 후 떠나고 있다. |
◆북미 정상, 나란히 '자유의 집' 정상회담장으로...문 대통령, 자리 비껴줘
2019년 6월 30일 오후 3시 51분. 또 하나의 역사가 탄생한 시간이다. 사상 처음으로 남‧북‧미 정상이 한 자리에 모였기 때문이다.
3시 52분, 잠시 대화를 나누던 문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 김정은 위원장 세 정상은 자유의 집을 배경으로 나란히 서서 기념촬영을 했다. 취재진과 경호인력 등으로 현장이 어수선했던 데다, 갑자기 마련된 자리인 탓에 의전도 변변치 못했지만 그래도 세 정상은 기쁜 얼굴로 역사적인 순간을 기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가 처음 대통령이 됐을 때만 해도 이 지역에 굉장한 갈등이 있었지만 이제는 반대”라며 “나도 그렇지만 (김정은) 위원장님도 영광스럽게 굉장히 노력을 기울였다. (문재인) 대통령님에게도 감사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3시 54분, 세 정상은 자유의 집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2층 회의실로 함께 들어간 북미 두 정상과 달리, 문 대통령은 별도 대기실에서 대기했다. ‘역사상 첫 남‧북‧미 정상의 만남에 이어 남‧북‧미 정상회담까지 성사되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은 아쉽게도 이 순간 무산됐다.
[서울=로이터 뉴스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6월 30일 오후 판문점 자유의 집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
◆김정은 "어제 오후 2~3시 만나자 연락받아 깜짝 놀랐다", 트럼프 "역사적 순간"
3시 59분, 북미 두 정상은 회의실 내부에 자리를 잡았다. 회의실에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트럼프 대통령의 장녀인 이방카 백악관 보좌관과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 그리고 리용호 북한 외무상 등 양측 고위 관계자들도 함께 했다.
회의실에서 약 5분 간 이어진 모두발언 현장은 앞서 자유의 집 앞에서보다 더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가득했다. 특히 북미 두 정상은 갑작스럽게 이뤄진 만남에 대해 감사 인사를 주고받기 바빴다.
김 위원장은 “어떤 사람들은 대통령님의 친서를 보면서 ‘(이번 만남이) 사전에 합의된 만남이 아니냐’고도 하던데, 사실 난 어제 대통령님께서 의향을 표시하신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오늘(30일) 정식으로 만나자고 하시는 것을 (어제) 오후 2~3시나 돼서야 알았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이어 “이 장소가 북과 남 사이엔 분단의 상징이고 나쁜 과거를 연상케 하는 자리인데, 오랜 적대적 관계에 선 두 나라(북한과 미국)가 여기서 평화의 악수를 했다”며 “(우리는) 어제와 달라진 오늘을 표현했다. 그리고 이것은 앞으로 우리가 하는 행동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그러면서 “우리 두 나라 사이가 훌륭한 관계가 아니라면 하루 만에 이런 전격적인 상봉이 이뤄지지 못했을 것”이라며 “앞으로 이런 훌륭한 관계로 남들이 예상 못 할 좋은 일들을 계속 만들면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맞닥뜨린 난관과 장애를 극복하는 신비로운 힘이 될 것이다. 앞으로 다시 만나고 싶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위원장이 갑작스러운 만남에 응해준 것에 대해 연신 감사의 뜻을 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께서 말씀하셨지만 우리가 만났다는 사실 자체가 역사적 순간”이라며 “사실 SNS로 메시지를 보냈을 때 (위원장이) 오시지 않았으면 내가 굉장히 민망했을 텐데 나와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내가 당선됐던 2년 반 전 상황을 되돌아보면 굉장히 안 좋았고, 굉장히 위험했다. 한국, 북한, 그리고 전 세계가 위험했다”며 “그 후로 우리가 굉장히 좋은 관계를 이루고, 내가 MDL을 넘어설 수 있었던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하고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오후 4시 4분, 북미 양 정상은 취재진을 내보낸 채 단독 회담에 돌입, 약 53분간 대화를 나눴다. 사실상 ‘3차 북미정상회담’이라고 해도 무방한 장시간의 만남이다.
양측은 이후 이어진 단독 정상회담을 통해 실무 이상 대표를 선정해 빠른 시일 내 정식 3차 북미정상회담을 위한 실무협상을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6월 30일 오후 북미정상회담이 끝난 뒤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북미 두 정상은 지난 2월 하노이에서 만났지만 ‘결렬’이라는 쓰디쓴 실패를 안고 돌아갔었다. 이후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 도발을 하는 등 긴장 국면이 조성되자 두 정상이 언제 다시 만날지가 ‘안개 속’이었다.
하지만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깜짝’, ‘돌발’ 제안으로 4개월 만의 재회가 성사됐다. 북미 양측이 4개월간의 ‘어색함’을 풀고 3차 북미정상회담을 열어 다시 한 번 비핵화 협상 테이블에 마주앉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suyoung0710@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