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 "패스트트랙 법안 제동걸 것"
민주당, '독단' 이미지 벗어…추경도 기대
억울한 정의당…"사전 협의는 했어야"
[서울=뉴스핌] 이지현 조재완 이서영 기자 = 패스트트랙 국면 이후 건건마다 대립하며 경색 국면을 이어오던 국회가 84일만에 극적으로 손을 잡았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등 3당 교섭단체 대표들은 28일 선거제도와 검찰 개혁 등을 논의하는 정치개혁특별위원회·사법개혁특별위원회 활동 기간을 연장하는데 합의했다. 더불어 패스트트랙 국면 이후 국회를 떠나있던 자유한국당이 상임위원회 전면 복귀를 선언했다.
완전한 국회 정상화는 아니지만, 여야간 이견으로 장시간 경색 국면이 이어지던 것을 고려하면 진일보된 결론이다.
며칠 전까지 국회 정상화에 강경한 태도로 일관해오던 여야가 극적으로 뜻을 맞춘 데에는 각자의 셈법이 작용했다. 과연 각 당은 이번 합의문을 통해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을까.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국회 정상화 논의를 위한 국회의장과 여야 3당 교섭단체 원내대표의 회동이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장실에서 열린 가운데,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왼쪽 부터)와 문희상 국회의장,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가 회동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9.06.28 leehs@newspim.com |
◆패스트트랙 법안 통과 시간 번 한국당…"선거법·공수처법 통과에 제동 걸었다"
일단 이번 합의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많은 것을 얻어간 쪽은 한국당이다. 가장 큰 것은 한국당이 결사 반대를 외쳐왔던 선거법·공수처법·검경수사권 조정 등 패스트트랙 법안의 통과에 제동을 걸 장치가 생겼다는 점이다.
이번 여야의 합의문에는 △정개특위·사개특위 기간을 8월 31일까지 연장하고 △ 두 특위 위원장은 한국당과 민주당이 한 개씩 담당하며 △정개특위 위원 정수를 18명에서 19명으로 확대하되, 늘어나는 한 자리는 한국당이 가져가는 내용 등이 담겼다.
정개특위에 한국당 몫 의석이 한 자리 늘어난다면 한국당은 현재 패스트트랙에 올라있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통과 시기를 최대한 늦출 수 있다.
그간 정개특위 내에서 여야 4당은 선거법 개혁안을 최대한 빨리 의결해 법사위에 회부하자는 입장을 보여왔다. 정개특위에서 선거제도 개혁안이 의결되려면 특위 위원 과반 출석에 과반 찬성(19명 중 10명) 요건이 필요하다.
그런데 한국당 의석이 한 자리 늘어 7석을 가져가고, 현재 패스트트랙에 지정된 선거제도 개혁안에 이견이 있는 바른미래당(2석)·민주평화당(1석)이 반대표를 던진다면 선거제도 개혁법안 의결은 불가능해진다.
물론 패스트트랙 특성상 정개특위에서 합의가 되지 않더라도 최장 180일(10월 말) 이후에는 법사위로 선거제도 개혁안이 넘어가지만, 한국당은 10월까지 선거제도 개혁안을 여야 합의로 만들어낼 시간을 번 셈이다.
더불어 정개·사개특위 위원장 중 한 자리를 한국당이 가져오는 것 역시 패스트트랙 법안의 원활한 통과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의미가 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이날 합의문 발표 직후 "이번 원포인트 합의를 통해 특위 위원장과 의석 수 조정으로 인해 기울어졌던 특위의 균형을 맞췄다"면서 "날치기로 선거법이나 공수처법, 검경수사권 조정안이 통과되는 것에 제동을 걸었다는 것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악수를 하고 있다. 2019.06.28 leehs@newspim.com |
◆상임위 전면 복귀 선언한 한국당…당 안팎의 여론 개선 기대
더불어 한국당이 이번 합의를 통해 '상임위 전면 복귀'를 선언한 것도 한국당 입장에서는 앓던 이를 뽑은 셈이었다.
국회 파행이 장기화되면서 그 책임이 한국당으로 몰리는 등 당 밖의 여론이 악화되고 있었던데다, 당 내에서조차 지도부를 향한 비판 여론이 이는 등 내부 분열의 조짐마저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4일 한국당이 여야의 국회정상화 합의문 추인을 부결한 이후 선별적인 상임위 복귀를 선언했다. 하지만 여야 4당이 공조해 상임위를 운영하면서 한국당만 배제되는 듯한 모양새가 되자 당 내에서도 "이럴거면 조건없이 국회 등원해서 제대로 싸우자"는 의견이 제기됐다.
하지만 조건없는 국회 등원의 명분이 마땅치 않았다. 그나마 이번 특위 위원장 확보 및 정개특위 의석 수 확대라는 합의안이 상임위 전면 복귀의 명분이 된 셈이었다. 이를 통해 한국당은 당 안팎으로 악화된 여론이 개선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69회 국회(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서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가 토론을 하고 있다. 2019.06.28 leehs@newspim.com |
◆'표결강행' 이미지 면한 민주당…추경 논의도 기대
사실 국회 과반의 의석을 가진 민주당은 물리적으로는 지금처럼 여야 4당과 공조해 국회를 운영할 수 있었다. 하지만 특위 의석을 조정해가면서까지 한국당과의 합의를 진행했다.
가장 큰 이유는 '일방통행'의 이미지를 벗기 위함이다. 지난 4월 패스트트랙 국면이 여야 4당의 공조였다고는 해도 제1야당을 패싱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다. 민주당으로서는 집권여당의 독단적 이미지가 부담이 됐다. 계속해서 한국당과의 합의를 하려 했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이번 합의는 강행 표결의 이미지를 부각시키지 않았다는 데에 가장 큰 의미가 있다. 부담을 덜었다"고 말했다.
또 꽉 막힌 국회 상황에서 조금이나마 대화의 물꼬를 텄다는 것도 의미있는 성과다. 추가경정예산과 공수처 설치·검경수사권 조정은 모두 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현안들이다. 그런데 그간 여야 간 경색 국면으로 인해 논의에 진척이 없었다.
민주당은 이번 합의안을 계기로 한국당과 추경안에 대한 협의에도 나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도 이날 합의 후 "추경안을 아예 안해주겠다는 의미는 아니었다"면서 "다만 재해추경과 별도로 선심성 추경을 쓰는데 대해 반대를 하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여야는 이번 주말부터 추경 등 추가적인 국회 정상화를 위한 논의를 다시 시작한다는 방침이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국회 원내교섭단체 간 합의에 따라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에서 물러나는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9.06.28 leehs@newspim.com |
◆정개특위 위원장 자리 빼앗긴 정의당…"국회엔 3당만 존재하나"
반면 정의당은 울상이다.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의 위원장직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정의당은 비교섭단체인 탓에 이번 여야 합의에는 참여하지 못했다.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는 이날 열린 본회의에서 "오늘 3당 교섭단체 대표들의 합의문을 받아들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면서 "완전한 국회 정상화도 아니고 앞으로 사안사안마다 또 합의를 할 거냐"고 비판했다.
윤 원내대표는 "최소한 정치개혁특위 위원장을 바꾸려면 해당 정당과 사전에 협의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게 정치의 도리 아니냐"며 "여기는 3당 교섭단체 대표만 존재하는 국회인 거냐"고 강하게 지적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도 "저는 오늘 여야 3당간 합의로 해고 통보를 받았다. 오늘의 합의는 매우 우려스럽다"면서 "결국 한국당의 떼쓰기에 굴복한건데, 그러기 전에 이미 패스트트랙까지 태워진 선거제도 개혁을 어떻게 완수할 것인지 여야 4당 내에 협의를 먼저 하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 아니냐"며 불만을 표시했다.
jh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