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아들을 둔 가족 이야기를 통해 돌아본 성과 안락사 문제
[서울=뉴스핌] 황수정 기자 = 장애아동의 사춘기와 성(性). 주변에 있지 않다면 사실 생각해보기 쉽지 않은 문제다. 일반적인 아이에게도 성교육은 쉽지 않은데, 거동이 쉽지 않은 장애아동이라면 어떻게 해야할까. 그리고 이를 넘어 안락사까지 쉽게 다루기 힘든 문제를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공감대를 높이며 풀어낸다.
연극 '킬미나우' 공연 장면 [사진=연극열전] |
연극 '킬미나우'(연출 오경택)는 2013년 캐나다 초연 후 2016년 국내에서 공연됐다. 당시 관객 평점 9.7점, 평균 객석점유율 92%를 기록하는 등 화제를 모았으며, 2017년 재연에서도 호평받았다. 삼연으로 돌아온 작품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공연을 바라보는 사회적인 인식이 달라지면서 훨씬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작품은 선천적 지체장애의 17세 소년 조이와 작가로서의 삶을 포기한 채 아들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온 아버지 제이크가 주인공이다. 사춘기로 접어든 조이는 성에 눈을 뜨기 시작하고, 친구 라우디와 독립을 꿈꾼다. 홀로 최선을 다하지만 힘에 부친 제이크는 유일한 안식처인 연인 로빈에게 상담하고, 자식의 자위를 도와줄 생각도 가진다.
대변을 본 후 휴지로 닦는 것조차 도전인 조이에게 성장하며 나타나는 2차 성징, 자연스러운 몸의 변화는 너무나 큰 시련이다. 스스로 성욕을 해결하지 못하는 아들을 위한 제이크의 마음은 아버지로서도 힘든 결정이었을 터. 이미 일상을 포기하고 아들에게 올인한 제이크, 자신의 가장 큰 치부를 드러내야 하는 조이 모두에게 아픔이자 희생인 순간이다.
연극 '킬미나우' 공연 장면 [사진=연극열전] |
공연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강한 부성애로 아들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제이크의 건강에도 이상이 생긴다. 돌봄만 받았던 조이가 그의 보호자가 돼 모든 일상을 책임지게 된 것. 관계의 전복은 관객들의 시선도 달라지게 만든다. 단순히 장애 가족의 힘듦, 고단함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진정한 삶, 주체적인 삶, 나아가 안락사까지 주제가 확장되기 때문이다.
극중 조이는 친구 라우디와 '킬 미 나우'라는 게임을 즐긴다. 게임 속 주인공은 좀비가 되기 전 자신을 죽여달라며 '킬 미 나우'라고 외친다. 제이크는 조이의 발음으로는 '킬 미 나우(Kill me now)'가 아닌 '힐 미 나우(Heal me now)'로 들린다고 말한다. 여전히 뜨거운 감자, 쉽게 판가름하기 어려운 '안락사'에 대해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힌트랄까.
등장인물들은 모두 어딘가 불완전한 존재들이다. 이들은 타인을 위해 희생하고 노력하면서 성장하고, 이를 통해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살게 된다. 상처가 있는 인물들이 서로를 보듬고 의지하고 때로는 갈등하면서도 결국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행복을 찾게 된다. 그 결정이 누군가에게는 너무 큰 슬픔일지언정 존중하고 인정해줘야 하는 것 또한 배려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
연극 '킬미나우' 공연 장면 [사진=연극열전] |
울지 않을 수 없는 공연이다. 배우들의 열연은 시작부터 관객들을 오열하게 만든다. 특히 공연을 거듭하며 쌓인 관록으로 이석준, 윤나무 배우는 제이크, 조이 그 자체다. 두 사람은 복합적인 감정은 물론, 부자연스러운 육체까지 완벽히 소화하면서 관객들의 몰입을 돕는다. 관람 전 휴지나 손수건을 꼭 챙기길 추천한다.
연극 '킬미나우'는 오는 7월 6일까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된다.
hsj1211@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