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어바인)=뉴스핌]김정태 특파원=미국 유학생과 주재원은 요즈음 원/달러 환율을 하루 몇 차례씩 확인한다. 달러 바꿀 타이밍을 고민하는건데 환율이 계속 오르고 있어 매번 고민만하고 타이밍을 놓치기 일쑤라는 하소연이다. 원화로 송금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환율이 급등하면 달러화로 바꿀 수 있는 몫이 적어진다. 불과 한 달여 전 만해도 달러당 1130원 선이었는데 최근 무섭게 급등하면서 한때 1200원 선을 찍고, 요 며칠 1190원 대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1만 달러를 바꿀 경우 한 달여 전과 비교해 순수 환차손이 60만 원 발생하는 것이다. 필자가 미국에 온 딱 1년 전 1060원이었던 걸 감안하면 원화가 12% 하락한 셈이다. 환전 시기에 따라 생활비나 등록금, 심지어 차 한 대 값이 왔다갔다 할 정도이니 환율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 美·中무역전쟁 격화…환율 공포도 ↑
환율 등락이 개인에게도 이처럼 큰 영향을 미치는데, 기업과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원화가치가 하락하면 수출기업들은 가격경쟁력이 생겨 주문 물동량이 늘어나고 환차익도 크게 본다는 게 경제상식이다. 특히 수출의존이 높은 우리나라로서는 환율 상승이 반가울 수도 있다. 수출 감소세를 보이고 있는 최근 상황에선 회복의 발판이 될 수도 있다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환율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만 않다. 원화 환율이 짧은 기간에 급상승한데는 대내외적인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대외적 불확실성은 역시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격화가 주된 요인이다. 1년을 끌어온 미·중간 무역협상이 4월까지만 해도 종지부를 찍을 것처럼 곧 잘 진행된다 싶었다. 그러나 지난 10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갑자기 2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대해 관세를 25% 물리겠다는 트위터 ‘폭탄선언’은 충돌의 당사국 뿐 만 아니라 우리나라와 일본 등 미국과의 교역비중이 높은 아시아권 국가들에게 소위 ‘멘붕’으로 몰아넣었다.
그 충격은 고스란히 각 국의 증시 급락과 환율 급등으로 금융시장의 불안으로 이어졌다. 특히 우리나라는 전체 수출 가운데 중국 시장의 비중이 25%를 차지할 정도로 미국보다 교역 비중이 높다. 원화의 환율이 갈수록 중국 위안화 환율 변동에 따라 동조화되는 상황에서 충격파는 중국 못지않다. 중국은 미국의 조치에 반발해 즉각 1100억 달러 규모의 보복관세를 밝혔지만 동일한 급의 충격을 주기엔 역부족이다. 중국은 개방된 미국시장에서 매년 흑자폭을 키워왔다. 미국과의 무역 전쟁을 치르고 있는 지난해에도 4192억 달러에 달하는 사상 최대의 대미 무역 흑자를 기록했다. 개방된 미국 시장과 개방이 제한돼 있고 까다로운 규제에 있는 중국 시장에서 서로 제재를 가한다면 어느 쪽이 타격이 더 클 것인가 하는 것은 우문(遇問)일 수밖에 없다.
◆ 트럼프를 내세운 미국인 진짜 속내는
미국은 숨 돌릴 틈 없이 중국을 전 방위로 압박하고 있는 모양새다. 중국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를 국가안보 및 보안에 위협이 된다며 사실상 자국에서 ‘장사’를 하지 못하도록 했다. 미 상무부가 지난 16일(현지시간) 거래제한 기업명단에 올려 기업 간 거래를 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더 나아가 EU와 우리나라 기업들에게도 거래제한을 종용하며 ‘왕따’ 전략을 통해 화웨를 고사시키려 하는 움직임이 역력하다. 화웨이는 이에 강력 반발하며 미국 정부 상대로 소송에 나섰지만 타격은 불가피해 보인다. ‘법적 다툼’은 단기에 끝날 속성은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은 또 하나의 결정적 압박 카드가 있다. ‘환율조작국 지정’이란 카드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의회 승인 없이 ‘슈퍼 301조’를 통해 상대국에게 100%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한 무소불위의 칼이다. 지금의 보복관세가 맛보기 폭탄 수준이라면 환율조작국 지정은 융단폭격 인 셈이다. 다만 미국이 당장 꺼내드는 카드는 아닌 듯하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 28일 일단 2019년 상반기 미국 환율보고서에선 중국을 지난해에 이어 관찰대상국으로 유지했다. 여기엔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과의 교역에서 흑자를 낸 다수의 국가가 포함돼 있다. 그렇다고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미국은 미·중 무역전쟁의 흐름에 따라 얼마든지 다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환율보고서는 하반기에도 발표된다. 미국 대선이 있는 2020년까지 트럼프는 이 카드를 두 번 이상 꺼내들 수 있다.
주변을 살펴보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인간적인 호감을 갖고 있는 미국인들은 많아 보이진 않는다. 그의 즉흥적 언행이나 팩트 체크가 필요한 트위터 메시지에 질려하는 사람도 적잖아 있다. 정책적인 면에서도 북핵이나 멕시코국경 등의 문제는 미국 내에서도 여전히 논란거리다. 하지만 경제에 대해선 확연히 우리와 다르다는 게 느껴진다. 특히 무역정책에 대해선 당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중국이 미국에서 엄청난 흑자를 보면서 시장을 제대로 열지 않고 불공정한 무역을 하고 있다는 이유를 드는 것은 대외적 명분일 뿐이다. 미국 현지서 느끼는 미국민의 속내는 중국에 대한 위협감이 생각보다 크다는 점이다. 여기저기서 ‘굴기’를 부르짖으며 패권적 야망을 보이는 시진핑 체제의 중국이 미국을 누르고 올라설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보인다는 것이다. 수 십 년간 세계에서 ‘원 톱’ 국가를 유지해 왔던 미국민의 자존심에 용납이 안 될 정서일지 모른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런 대중적 심리를 파고 들었다. 미·중 무역전쟁은 북핵문제와 함께 그의 재선 가도의 대표적 ‘치적 리스트’로 삼고자하는 게 눈에 뻔히 보인다.
치고받고 싸우는 G2보다 불확실성에 더 떨고 있는 쪽은 우리다. 양쪽에 끼여 속앓이만 하고 있다. 6월 G20에서 양국 정상이 만나 극적으로 원만하게 합의하는 것이 최선의 결과이겠지만 분쟁이 장기화될 경우 ‘R(경기침체)의 공포지수’는 더욱 치솟을 가능성이 높다.
중국 위안화와 미국 달러화 [사진=로이터 뉴스핌] |
◆ 고개드는 경제 위기說…6월이 분수령
우리 경제는 안 그래도 저성장의 늪에 허우적이고 있는 현실이 장기화되고 있다. 1분기 경제성장률 –0.3%로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선데 이어 2분기 회복세도 점치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상장 기업들의 1분기 영업이익은 급감했다. 기업들은 그 바닥이 어디인지 모르는 불확실성 때문에 돈줄을 여전히 죄고 있다. 여기에 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 탈원전, 3기 신도시 등 문재인 정부의 주요 경제정책이 정치적 공방에 휩싸이거나 가시적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회의론이 팽배해 있다. 국내외 기관들이 연간 성장률의 전망치를 줄줄이 하향 조정하는 이런 싸늘한 시각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다보니 인터넷 상에서 저마다 경제 위기를 경고하는 글들이 자주 눈에 띈다. 그러면서 개인 스스로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며, 위기 탈출 방법으로 금과 달러를 사들일 것을 주장한다. 실제 이 같은 수요가 늘고 있다는 뉴스도 나오고 있다. 불확실성이 가중될수록 공포 지수는 올라가기 마련이다. 공포감은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전조현상에서 극대화된다고 한다. 그 전조의 지표로 삼는 게 환율의 움직임인데, 외환시장에서도 1차적인 저지선이 1200원으로 여겨지는 듯하다. 주시해야 할 것들이 많은 6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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