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덕기업·갑질피해자 등에 인기 높은 퇴직대행 서비스
의사전달 넘어서는 '비변호사의 대리행위' 있을 가능성 높아
[서울=뉴스핌] 김은빈 기자 = "퇴직성공률 100%", "내일부터 회사에 가지 않아도 OK"
근로자 대신 회사에 퇴직의사를 전해주는 '퇴직대행' 서비스가 최근 일본에서 주목을 모으고 있다. 지난 2017년 일본에 첫 등장한 이래, 서비스 제공 업체가 30여곳으로 늘어날 만큼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20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해당 서비스는 법률 위반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일본법에서는 변호사 외의 법률사무를 금지하고 있는데, 퇴직대행 업체가 이를 위반하고 '퇴직의사 전달' 이상의 업무를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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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시민들이 횡단보도를 지나가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도쿄(東京)에 위치한 기업 EXIT는 2017년 퇴직대행 서비스를 처음 선보인 기업이다. 악덕 기업에 근무했거나, 상사에게 '갑질'을 당했던 근로자들이 주요 이용자로, 매월 300여건 정도 의뢰를 받고 있다.
이용자가 EXIT에 직장 연락처 등을 전하면, EXIT가 근무처에 "OO씨가 사직하고 싶어한다"는 등 본인을 대신해 퇴직과 관련된 연락을 중개한다.
일본법에 따르면 근로자가 회사에 사직 의사를 전하면, 회사의 동의가 없어도 2주 뒤 고용계약을 끝낼 수 있다. 이 절차는 원래 근로자 혼자서도 가능하지만, 상사에게 갑질을 당해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하기 어려운 사람들의 경우 서비스를 통해 도움을 얻으려고 하고 있다.
EXIT에 의뢰를 한 경우에도 사직서를 써서 회사에 보내는 등의 절차엔 본인이 필요하다. 하지만 사직서 작성이나 유니폼 반납 등의 절차를 EXIT 측이 대신해주기도 한다. 때문에 서비스 신청자는 인사담당자와 전화를 하거나, 회사에 가는 일 없이 퇴직을 할 수 있다.
EXIT 사장은 "그만두고 싶다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스트레스받지 않고 그만둘 수 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받고 있다"고 말했다. 요금은 신청자의 직업이 정규직의 경우 5만엔, 아르바이트일 경우 3만엔이다. 다른 퇴직대행 업체도 비슷한 가격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퇴직대행 서비스가 유행하는 건 그만큼 기업 측이 근로자를 놓치지 않으려 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2017년도 일본 전역 노동국에 온 노동상담 가운데, 그만두고 싶어도 회사가 퇴직시켜주지 않는다는 내용의 상담이 3만9000여건 이상이었다. 해고 관련 상담을 상회하는 수치다.
◆ "변호사법 위반할 가능성 높아"
하지만 퇴직대행 서비스가 불법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본 변호사법 72조는 변호사 이외의 사람이 보수를 목적으로 법률사무 등을 협상하는 걸 '비변행위'라 규정해 금지하고 있다. 비전문가가 법률상담이나 대리인이 돼 협상에 나설 경우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업체 측에서는 대행하는 건 어디까지나 '연락 중개', '의사 전달'에 지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회사 측과 '협상'을 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ITJ법률사무소의 가쿠치야마 무네유키(角地山宗行) 변호사는 "근로자 본인이 퇴직의사를 전하지 못하는 사례에선 회사와 트러블을 안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 "실제로는 회사 측과 협상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ITJ법률사무소는 2018년 10월부터 퇴직대행 서비스를 시작했다. 올해 3월부터는 4만~5만엔이었던 요금을 1만9900엔까지 낮췄다. 가쿠치야마 변호사는 "퇴직대행 업무에서 본인을 대신해 회사와 교섭을 하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대행해주는 이가 변호사가 아닐 경우, 근로자 본인이 손해를 입을 가능성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지불 임금이 있는 경우다. 이때 회사와 협상해 임금을 받는 것도 근로자의 권리다. 한 변호사는 "변호사가 아닌 전문업자에게 의뢰할 경우 그 권리가 방치될 수 있어 이용자가 손해를 입을 수 있다"고 했다.
퇴직대행에 나서는 변호사들의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변호사들로 이뤄진 '블랙기업 피해대책 변호단'은 3월 중순부터 회사를 그만두지 못해 고민하는 이들의 상담을 받는 핫라인을 임시 개설했다.
EXIT 측은 변호사 측의 지적에 대해 "고문 변호사에게 상담해 적정한 업무범위를 지키고 있기 때문에 비변행위는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 역시도 "경쟁 업체 중에 유급휴가를 받도록 회사측과 협상해주겠다는 걸 홈페이지에 표시하는 업자가 있다는 건 알고 있다"며 "악질 업자를 배제하기 위해 자체규제 단체를 만드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본 법무성은 퇴직대행 서비스가 위법인지 여부에 대한 견해는 밝히지 않은 상태다. 법무성 측은 아사히신문 취재에 "위법 여부 판단은 조사기관이 기소한 사건에 대해 재판소(법원)이 개별적으로 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kebj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