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어바인)=뉴스핌]김정태 특파원= 첨단산업 분야에서 두 글로벌 이슈가 세간의 주목을 끈다. 삼성 ‘갤럭시폴드’와 보잉 ‘737 맥스 8’인데 결함에 대한 논란이다. 삼성과 보잉은 정보기술(IT)과 항공산업에서 수만 개 첨단부품으로 결합된 제품을 생산하는 최고의 글로벌 기업이다. 시장을 선도하기 위한 회심의 작품이 결함 논란에 휩싸인 공통된 이슈를 갖고 있다. ‘퍼스트 무버(시장 선도자)’의 진통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결함 이후 두 회사의 태도가 확연히 다르다.
'갤럭시폴드’는 지난달 미국 등 글로벌 출시를 앞두고 미국 IT기자들에게 시제품 평가를 받는 과정에서 스크린 결함을 발견했다는 언론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고발이 잇따랐다. 블룸버그 기자의 리뷰가 논란의 중심이 됐다. 액정 보호 필름을 제거한 갤럭시 폴드의 액정 화면 절반이 검정색으로 변해 작동이 안 돼 망가졌다는 트윗을 전하면서다. 이에 대한 삼성의 첫 해명은 액정 보호필름 자체가 액정을 구성하는 제품이기 때문에 벗기면 안 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IT 전문가나 담당 기자가 아니더라도 궁색해 보였다. 사용자가 쉽게 벗길 수 있는 보호막이라니, '세계 최초 첨단제품' ‘완벽한 품질'을 자랑하는 삼성 명성과는 거리가 멀다.
미국의 유력지 월 스트리트 저널(WSJ)의 한 칼럼니스트는 이를 놓치지 않고 조롱했다. 갤러시폴드의 액정 사이에 핫도그를 끼워 넣는 ‘핫도그 폴드’ 동영상을 올렸다. 사족이긴 하나 그 칼럼니스트는 스스로 본인 얼굴에 먹칠을 했다. 결함을 지적하려면 기사로 하는 게 제대로 된 칼럼니스트가 아닐까. 뒤늦은 보도를 만회하려는 무리수이거나 '삼성 때리기'의 의도를 가졌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실제 이 동영상 자체를 두고 미국 네티즌들조차도 비판이 잇따랐다. 댓글에는 “WSJ가 버즈피드(사용자가 올리는 뉴스 사이트)가 된지 몰랐다”며 내용의 전문성과 공정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액정 깨진 갤럭시 폴드 [출처=마크 거먼 블룸버그 IT 담당 기자 트위터] |
각설하고 다른 매체 기자들도 갤럭시 폴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The Verge’라는 온라인 매체는 좀 더 객관적인 시각에서 리뷰를 게재했다. 액정 보호 필름을 벗기지 않은 상태에서도 접히는 부분의 표면이 불룩해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화면에 줄이 그어지는 결함이 발견됐다고 주장했다. 이 매체는 갤럭시 폴드로 촬영하려고 틈새를 없애기 위해 바깥 접힘 구간에 찰흙을 붙여 잠시 고정했던 게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이 경우라면 일상생활에서 이 구간에 이물질이 묻게 될 경우 화면에 손상이 가거나 제품 고장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삼성은 결국 갤럭시 폴드의 출시를 연기했다. ‘삼성의 굴욕’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올바른 결정’이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글로벌 출시를 강행했다면 금전적 손실은 물론, 브랜드 이미지 실추로 돌이킬 수 없는 내상 개연성이 높았다. 삼성도 3년 전 배터리 결함으로 발생한 ‘갤럭시노트 7’ 단종 트라우마가 아직 생생할 터. 출시연기가 ‘완벽한 품질’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점에서 다행스럽다고 봐야 한다.
미국 내에선 보잉 737 맥스 8의 결함이 큰 이슈다. 이 기종의 여객기 두 대가 몇 달 간격으로 추락해 수 백 명이 전원 사망하면서부터다. 2018년 10월 29일 라이온에어가 운행하는 여객기가 추락해 승객과 승무원 189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6개월도 지나지 않은 올 3월 10일, 같은 기종의 추락사고가 발생했다. 에티오피아항공의 추락사고로 탑승자 157명이 사망했다. 지난해 사고 당시에는 조종사의 과실 가능성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연이은 추락으로 이 기종 결함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외신을 종합해보면 조정특성향상시스템(MCAS)의 오작동이 사고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 시스템은 실속(stalling)을 방지하는 안전장치로 항공기 속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실속이 발생할 경우 받음각(AOA·비행기 날개를 절단한 면의 기준선과 기류가 이루는 각도) 제어한다. 받음각이 커질수록 항공기가 상승하려는 양력이 강해지기 때문에 이륙 시에는 일정 각도가 유지될 때까지 기수를 올려야 한다. 하지만 이 장치의 컴퓨터가 잘못된 센서 테이터를 입력하는 오류 때문에 기수를 올리지 못하고 숙여지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기체의 추락으로 이어졌다는 게 예비조사의 결과이다.
탑승자 157명 전원의 생명을 앗아간 에티오피아항공 사고 현장 [사진=로이터 뉴스핌] |
문제는 보잉 737 맥스 8 기종을 만든 보잉사의 태도다. 이 회사의 CEO인 데니스 뮬런버그는 최근 잇따른 추락 사고의 책임을 조종사 과실로 돌리는 듯한 발언에다 이번 사태에 책임지고 물러날 뜻이 없음을 밝혀 논란이 되고 있다.
CBS 등 미 언론에 따르면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보잉의 주주총회는 문제의 기종 결함에 대한 경영진 책임을 추궁하는 성토장이 됐다. 뮬런버그는 “737 맥스의 MCAS는 보잉의 설계와 안전 기준에 맞춰 인증 절차를 준수했다”며 “안전하게 맥스를 날게 하는 게 첫 번째 초점”이라고 말했다. 결함여부 인정하느냐는 질문에 “어느 한쪽에만 사고 원인으로 귀결 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며 결함 인정을 회피했다. 이에 대해 한 주주는 “신뢰할 수 없는 시스템 결함을 알아내기 위해 매번 300여 명 이상의 사람들을 죽게 해서는 안 된다”며 일침을 가했다. 그는 거듭되는 결함 추궁과 사임 의사를 밝히라는 질문 공세가 이어지자, 몇 개의 질문에만 답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막대한 손실과 천문학적 소송 등 회사 존립이 불투명해질 수 있는 문제라고 해도 수 백여 명의 참사에도 공식석상에서 보인 그런 태도는 글로벌 CEO 자세라고 보기 어렵다.
시장을 선도하는 글로벌 기업의 경쟁은 정말 치열하다. 한때 전 세계를 휩쓸며 1위에 올라섰던 기업도 흔적 없이 사라지거나 명맥만 유지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본다. 때문에 기업들은 혁신을 거듭하며 기술개발(R&D)에 전력을 다한다.
하지만 아무리 시장을 선도하는 혁신제품이라도 ‘결함’을 용인할 소비자는 없다. 더 중요한 것은 ‘결함’이 발생할 경우 대처하는 자세다. 신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결함이 안전과 결부될 경우 더 그렇다. 이 점에서 보잉의 현재 실적손실은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4월 29일 열린 보잉 주주총회에서 CEO 데니스 뮬런버그가 주주의 질문에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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