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숙혜의 월가 이야기
[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 한국 원화를 포함한 신흥국 통화의 약세 흐름에 월가의 큰손들이 혼란스럽다는 표정이다.
뉴욕증시가 최근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하이일드 본드가 파죽지세로 오르는 등 위험자산의 강세 흐름이 두드러지는 가운데 하루 거래량 5조달러 규모의 외환시장은 ‘리스크-오프’를 연출하고 있기 때문.
서울 한국은행 강남본부에서 관계자들이 시중은행에 공급할 자금을 방출하고 있다. /김학선 기자 yooksa@ |
22개월래 최고치로 뛴 달러화는 물론이고 엔화와 스위스 프랑화 등 이른바 ‘헤븐’ 자산이 동반 강세를 보이는 반면 신흥국 통화가 3개월래 최저치로 밀리자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6일(현지시각) 로이터에 따르면 MSCI 신흥국 통화 지수가 6거래일 연속 하락하며 3개월래 최저치로 후퇴했다.
지수는 한 주 동안 1% 가까이 하락하며 8개월래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다.
특히 터키 리라화가 올들어 11% 급락했고, 한국 원화도 연초 이후 4% 가량 떨어졌다. 정치권 리스크 상승 속에 아르헨티나 페소화가 연일 하락 압박에 시달리고, 대만 달러화와 인도 루피화 등 아시아 신흥국 통화도 동반 약세다.
반면 미국 달러화는 연방준비제도(Fed)의 양적긴축(QT) 중단에도 2017년 3월 이후 최고치로 뛰었고, 엔화 역시 최근 한 주 사이 2018년 말 이후 최대 폭으로 상승했다.
이와 관련, 블룸버그는 연준의 긴축 사이클 브레이크에 따라 이른바 ‘중앙은행 풋’이 되살아나면서 주식과 정크본드를 포함한 위험자산이 상승 탄력을 받고 있지만 지구촌 경제의 하강 기류에 대한 경계감이 투자자들 사이에 여전하고, 외환시장이 이를 드러내고 있다는 진단을 내놓았다.
한국 1분기 GDP 성장률이 0.3% 후퇴, 예상 밖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것이나 미국 쓰리엠과 캐터필러가 중국 매출 부진을 빌미로 어닝 쇼크를 연출한 것은 위험자산의 유동성 잔치에 가려진 실상을 보여준다는 설명이다.
달러화 [출처=블룸버그] |
아울러 국제 교역의 감소 역시 실물경기의 적신호로 풀이된다. 네덜란드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월 말 기준 3개월 사이 전세계 무역이 직전 3개월에 비해 1.9% 위축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미국발 금융위기로 실물경기가 벼랑 끝 위기에 몰렸던2009년 5월 기준 3개월 이후 가장 큰 폭의 하락에 해당한다.
실물경기의 바로미터로 통하는 구리 가격이 지난 1~2월 12% 폭락한 뒤 최근까지 3% 추가 하락한 것도 주식시장에서 엿보기 힘든 경기 한파를 반영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위험자산으로 통하는 신흥국 통화의 하락 압박은 단순히 해당 지역의 통화정책 완화 움직임이나 달러화의 예상 밖 상승 기류 이외에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 깔려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신흥국 자산시장에 패닉을 일으켰던 터키와 아르헨티나 금융시장의 혼란이 연쇄적인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코메르츠방크의 울리히 루트만 외환 및 신흥국 리서치 헤드는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터키 리라화가 급락하며 위기 상황을 연출하면 남아공 랜드화와 브라질 헤알화, 심지어 러시아 루블화까지 매물이 쏟아진다”고 설명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성장률 및 인플레이션 둔화와 정치권 혼란이 신흥국 통화를 압박하는 상황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higr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