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어바인)=뉴스핌]김정태 특파원= 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시신이 미국 LA에서 12일 새벽 한국으로 운구돼 장례가 5일장으로 치러지고 있다. 조 회장은 45년 동안 전 세계 하늘 길을 열어온 대한항공에서 자신의 마지막 비행을 그렇게 마치고 고향 땅에 내리게 된 것이다.
조 회장은 지난 7일(미국 현지 시간) LA 인근 병원에서 향년 70세로 별세했다. 사인은 평소 지병이었던 폐질환 때문이지만 급속히 악화돼 갑작스럽게 죽음으로 이르게 된 것을 두고 세간의 말이 많다. 공통된 얘기는 가족들의 잇따른 갑질 논란과 탈세 의혹 등 ‘사회적 물의’로 제가(齊家)가 되지 않았다는 비난이 경영적 책임으로 돌아온 스트레스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란 추측이다.
◆ 회복을 위해 美 LA로 떠났다
조 회장은 폐질환 수술 이후 지난해 연말 미국으로 건너갔다. 거듭되는 충격으로 지친 마음과 요양 치료를 위해선 국내 보다는 LA 인근 현지 자택에 머무르는 것이 나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조 회장의 현지 자택은 LA에서 남부 방향으로 60여km 떨어진 뉴포트비치의 한 고급빌라 단지다. 필자가 살고 있는 어바인에서도 약 25km 떨어진 크리스털 코브 주립공원에 위치해 있다. 빌라 단지 이름도 크리스털 코브다. 조 회장의 유족을 취재하기 위해 직접 찾아갔지만 외부인을 통제하는 경비가 있어 단지 안으로 직접 들어 갈수는 없었다. 외부에서 본 전경은 천정 층고가 높은 2~3층짜리 주택의 별채가 수십가구로 이뤄진 단지다. 각각의 주택들이 언덕에 위치해 있어 바다를 바라볼 수 있고 주립 공원 내를 고즈넉하게 산책할 수 있어 요양하기에는 최적의 장소이다.
고(故) 조양호 회장이 요양 치료차 거주한 추정되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뉴포트비치의 크리스털 코브 주택단지 사진=김정태 특파원 |
크리털 코브 주택단지는 2~3층 규모의 천정 층고가 높은 고급주택들로 구성돼 있다. 사진=김정태 특파원 |
◆ 모교와 지역사회에 기여한 성공한 비즈니스맨
사실 조 회장은 LA가 제 2의 고향 같은 곳일 것이다. 그는 인천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청년 시절에는 남가주대(USC)에서 석사학위를 받는 동안 한국 교포들이 밀집해 있는 LA에서의 생활이 익숙해졌을 것이다. 그의 자녀들 역시 석사와 학사학위를 받은 동문 가족이다. 그래서인지 모교 애정도 남다른 듯하다. 조 회장은 1997년 이 대학의 재단이사를 맡은 적이 있고 2006년 개관한 USC한국재단연구소에 10만 달러를 기부하는 등 대학과 LA 지역사회에 기여를 해왔다.
모교인 USC는 장문의 글을 통해 조 회장을 애도하고 그의 업적을 기렸다. 완다 오스틴 USC총장은 “조 회장의 아시아와 미국에 대한 투자는 양 지역의 경제적 성장과 무역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며 "조 회장은 성공한 비즈니스맨이자, USC가 아시아 대학들과의 연계를 강화하는데 헌신한 USC의 가족"이라고 말했다.
사실 대부분의 한국 교포들은 조 회장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대한항공에 대해선 꽤나 친근감을 갖고 있다. LA에서 30여년을 살아온 한 교포 지인은 “지금은 미국에서 삼성, LG, 현대·기아차가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이지만 이들의 스마트폰이나 차가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전에는 대한항공과 한진이었다”면서 “태극 로고가 새겨진 항공기와 한진 영문이 새겨진 컨테이너와 배들이 항만에 들어서는 모습을 보면 왠지 뭉클했었다”고 말했다.
13억 달러를 투입해 2017년 완공된 총 73층, 335m 규모의 미국 서부 랜드마크인 월셔그랜드센터(The Wilshire Grand Center) 전경. 사진=김정태 특파원 |
고(故) 조양호 회장의 30년 숙원 사업이 완성된 월셔그랜드센터. 대한항공 로고인 태극문양이 선명이 보인다. 사진=김정태 특파원 |
◆ 美 서부에 마천루의 꿈을 세워…트럼프도 인정한 '월셔그랜드센터'
조 회장과 LA의 인연은 미국 서부 랜드마크인 월셔그랜드센터(The Wilshire Grand Center)에서 정점을 찍는다. 총 73층, 335m에 이르는 초고층 빌딩 건립으로 그의 숙원사업 중의 하나를 완성시켰기 때문이다. 조 회장은 미국 유학 시절부터 한국의 자존심을 세울 수 있는 마천루의 꿈을 꿔 왔다. 그의 꿈은 1989년 미국 현지법인 한진인터내셔널을 통해 LA 다운타운 내 위치한 지상 15층의 워셔그랜드호텔을 사들이면서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다만 도심에서 초고층 빌딩으로 다시 세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갖가지 건축규제와 자금 조달 문제 때문에 20년이 지난 2009년에서야 프로젝트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애초 총 10억 달러(1조650억 원)를 투입하기로 했지만 본격적인 공사는 2014년부터 시작되면서 비용도 당초보다 3억 달러가 더 늘어난 13억 달러(1조 5000억원)가 투입됐다. 2017년 6월 23일 개관한 이 빌딩은 900개의 객실로 이뤄진 5성급 호텔과 오피스동으로 재탄생했다. LA에서 가장 현대적이면서 곡선을 가진 유리 외벽의 건물이어서 LA에 들어서면 가장 눈에 띨 수밖에 없다.
특히 지난해 3월 트럼프 대통령이 캘리포니아주를 찾았을 때 LA체류하는 동안 묵은 호텔로도 유명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호텔을 떠나면서 “호텔이 매우 멋지고 좋은 서비스를 제공해줬다”는 말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호텔운영은 인터컨티넨털 체인이 맡고 있지만 부동산개발사업가 출신인 트럼프 대통령은 전문가답게 건물 외관과 호텔 서비스를 예리하게 평가를 한 것으로 보인다. 조 회장의 선견지명은 맞아 떨어졌다. 그는 개관 당시 “월셔그랜드센터는 한국과 미국, 대한항공과 LA지역의 긴밀한 협력의 상징이자 LA의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 같은 성공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한 채 조 회장의 별세 소식으로 전해지자 현지 언론도 깊은 관심을 보이며 보도했다. LA타임스는 “(조 회장이 가족으로 인해) 한국에서 많은 문제가 있었지만 LA에서는 마천루 ‘월셔그랜드센터’로 기억될 것”이라며 “이 빌딩은 LA에서 한국인 이민자들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상징한다”고 평가했다.
2017년 6월9일 준공 기념한 월셔그랜드센터 표지석. '소유자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OWNER: KOREAN AIR, YH. CHO CHAIRMAN & CEO)이라고 새겨 있다. 사진=김정태 특파원 |
◆ 6월 귀국은 항공업계 축제 참석 의지…“사이좋게 이끌어 나가라” 기원
조 회장은 지난해 연말 미국으로 출국했지만 오는 6월에 한국으로 돌아갈 것을 계획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점 상으로 볼 때 ITAT(국제항공운송협회) 연차회의가 열리는 시기와 일치한다. 건강을 회복해 참석하겠다는 의지로 읽혀지는 대목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항공업계의 최대 행사로 거물들이 총망라해 방한하게 되는데 40년 한길 항공운송산업에 헌신해 온 조 회장 자신의 상징성을 감안하면 꼭 참석해야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타계한 터라 더욱 더 항공업계의 애도와 추모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는 배경이다.
그의 생은 의도하지 않게 결국 미국에서 마감했다. 미국에서 그의 갑작스런 죽음에 국내 언론들의 취재가 집중되기 시작하자 유가족들은 조용한 장례를 위해 비공개로 진행하겠다고 밝힌 뒤 이들의 행적을 알아내기 어려웠다. 유가족의 방침에 따라 한진과 대한항공 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함구했다. 미국 현지에서 주재하는 특파원이나 한국에서 급히 취재 나온 기자들은 ‘뻗치기’를 해가며 취재했지만 실제 그들의 인터뷰에 성공하거나 사진에 담아가지 못했다. LA인근 글렌데일에 위치한 포레스트 론 메모리얼 파크 관계자의 말을 빌어 시신이 안치됐을 것으로 추정하는 정도였다.
故 조 회장이 한국으로 운구 되기 직전 모든 장례 일정이 밝혀졌다. 12일 새벽 KE012편을 통해 인천국제공항에 함께 입국한 장남 조원태 사장은 고인의 유언에 대해 “가족과 협력해 사이좋게 이끌어 나가라”고 전했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수송보국’의 유지가 받들어지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고(故) 조양호 회장의 시신이 임시로 안치된 것으로 추정되는 LA인근 글렌데일에 위치한 포레스트 론 메모리얼 파크 전경. 사진=김정태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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