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투자 비중 높은 공제회, 운용수익 ‘압도’
글로벌 증시 부진 속 상대 성과 돋보여
자율성 낮은 연기금, 단기 전략 조정 어려워
약정 수익 실현vs안정적 운용 목적도 달라
[서울=뉴스핌] 김민수 기자 = 국내 주요 연기금 및 공제회가 2018년 운용실적을 잇따라 공개한 가운데 양측의 희비가 크게 엇갈리고 있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크게 높아졌음에도 공제회가 4%대의 안정적인 수익를 달성한 반면 국민연금 등 4대 주요 연기금은 일제히 손실을 기록하며 비판의 중심에 선 모양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사진=김승현 기자] |
하지만 이를 단순히 연기금의 운용전략의 실패에서 찾는 것은 지나치다는 반론도 나온다. 연기금과 공제회의 설립목적 자체가 다르고, 이에 따른 자산운용 지침의 법적 허용 범위도 상이한 만큼 단순히 수익률만으로 운용 성과를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다.
1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 등 4대 연기금은 지난해 평균 2% 내외의 손실을 봤다.
638조원을 굴리는 국내 최대 기관투자가인 국민연금의 경우 -0.9%로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 만에 마이너스 손실을 기록했다. 사학연금이 -2.5%, 군인연금과 공무원연금도 각각 -2.1%, -1.7%로 뒷걸음질쳤다.
반면 주요 공제회는 4% 안팎의 견조한 성과를 거뒀다. 공제회 자산규모 1위인 교직원공제회가 4.1%의 연간수익률을 기록했고 2위 지방행정공제회도 4% 수익이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이달 중 운용실적을 공개하는 군인공제회와 경찰공제회, 과학기술인공제회 등도 3% 이상의 견조한 성과를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연기금과 공제회의 수익률이 큰 격차를 보이는 데는 자산군별 투자비중이 상이하기 때문이다.
먼저 국민연금의 경우 국내외 주식 투자비중이 36.4%에 달한다. 사학연금은 37%, 공무원연금도 전체의 30%가 주식으로 구성돼 있다.
이는 지난해 연기금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서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상반기까지만 해도 견조한 흐름을 보이던 글로벌증시는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긴축과 미·중 무역분쟁, 신흥국 통화 불안 등이 겹치며 하반기 조정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국내외 주식 비중이 높은 연기금의 손실이 두드러진 것이다.
국민연금 각 부문별 투자 내역. [자료=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
세계적으로 유명한 다른 연기금과도 비슷한 성적표를 받았다. 국민연금에 따르면 일본 연금적립금관리운용독립행정법인(GPIF)와 미국 캘리포니아주 공무원연금(CalPERS), 네덜란드 공적연금(ABP) 등도 지난해 최대 7%가 넘는 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주요 공제회의 국내외 주식 편입 비중은 모두 20%를 넘지 않는다. 소방공제회가 20%로 가장 많을 뿐 교직원공제회나 행정공제회, 군인공제회 등이 15% 내외를 유지하고 있다. 대신 부동산 등 대체투자 비중이 50%를 상회하며 운용수익률 방어에 성공했다. 이는 연기금의 운용전략이 공제회보다 뒤떨어진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주요 근거로 활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연기금이나 공제회에 대해 단순히 연간수익률만 놓고 투자전략의 효용성을 따지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주장한다. 자금 운용 규모가 천차만별이고 세부적인 운용 수칙 역시 조직별로 큰 차이가 있다는 설명이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투자 포트폴리오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일반 투자자들과 달리 연기금은 긴 호흡을 갖고 전략을 짠다”며 “수익률 제고가 아닌 기금의 안정적인 운용이 대전제인 만큼 회원들의 약정 수익 실현이 목표인 공제회와는 프로세스 자체가 다른 것”이라고 꼬집었다.
국민연금 부문별 운용수익률 추이 [자료=국민연금공단] |
실제로 연기금의 경우 설립 및 운용 수칙이 법률로 명시돼 있다. 국민연금을 비롯해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군인연금 모두 세부적인 기금운용 지침 또는 규정이 존재한다. 때문에 의사결정 체계도 매우 복잡하다. 국민연금의 관리·운영 책임은 보건복지부 장관, 실제 운용은 기금운용본부, 자문은 투자정책전문위원회, 의결권 행사는 의결권 행사 전문위원회가 담당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여기에는 정부 인사들과 기금운용본부 실무자, 외부 인사가 다양하게 포진한다.
반면 공제회는 연기금에 비해 의사결정 과정이 한결 수월하다. 투자전략 및 자산배분과 같은 실무는 전문성을 가진 조직 내 전문부서가 전담하기 때문이다. 명목상 이사회 및 대의원회를 통해 최종 의결되지만 사실상 내부 경영 판단만으로 투자 전략을 마련할 수 있다.
국내 주식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것이 연기금에 부담이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외 금융시장 동향에 민감한 외국인투자자들과 달리 연기금은 기관과 함께 국내증시의 안전판 역할을 담당한다. 특히 국민연금은 국내 상장사들의 주요 주주로서 시장 전체를 흔들 수 있는 영향력을 갖는다. 때문에 주식 비중을 함부로 줄일 경우 변동성 확대를 초래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작년 하반기 코스피 급락 또한 외국인 매도세와 함께 연기금이 연말 수익률 제고를 위해 포트폴리오 조정에 나선 것이 일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연기금 고위 임원은 “단기 수익만 바라보고 투자전략을 수정할 경우 반대로 리스크 관리를 소홀히 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며 “대체투자 비중 확대 필요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만큼 올해는 수익률 제고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mkim0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