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선미 기자 =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이끄는 연립정부 구성원인 중도좌파 사회민주당(‘사민당’)이 64년 된 미국의 핵우산 협정을 재검토한다고 밝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 국방 사안을 두고 또 한 차례 갈등이 예상된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2일(현지시간) 사민당 관계자를 인용, 사민당이 군사·외교·안보 정책에 대한 입장을 재검토하기 위해 위원회를 구성했으며, 재검토 사안에는 ‘핵공유 협정’도 포함돼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11월 11일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제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사진=로이터 뉴스핌] |
독일은 냉전 시대였던 1955년 서방의 군사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하면서 핵공유 협정을 체결했다. 이 협정에 따라 독일 전투기는 러시아가 유럽을 공격할 경우 미국의 핵무기를 운반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미국의 유럽 핵 배치 현황은 군사기밀이지만, 전문가들은 미국이 독일에 20여기를 포함해 벨기에, 이탈리아, 네덜란드, 터키 등 나토 회원국들에 총 180기 가량의 B61 전술핵폭탄을 배치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러시아의 불이행을 이유로 중거리핵전력조약(INF) 탈퇴를 예고하면서 군비 경쟁 가열화 조짐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사민당의 이러한 움직임으로 인해 대서양 군사 동맹이 균열해 나토의 핵 억지력마저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심화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방비를 빌미로 유럽 동맹들을 거세게 비난하자, 그간 나토 동맹을 전혀 문제 삼지 않았던 유럽에서 중도좌파 세력들을 중심으로 반발 움직임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일단 메르켈 총리 측은 핵공유 협정이 반드시 필요하며, 국방비 증액과 노후화된 독일 공군 전력 보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메르켈 총리의 대변인은 “핵공유 협정을 통한 나토의 억지력에 대해 새삼 논쟁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나토의 방어적 핵 전략을 완전히 지지한다”고 말했다.
나토 대변인도 동맹의 핵 억지력은 유럽 동맹국들의 능력과 인프라에 의존하고 있다며, “나토의 핵 억지 임무를 지원하는 유럽 동맹국들의 전투기는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리처드 그레넬 독일 주재 미국 대사도 “나토의 핵전력은 억지와 방어를 위한 동맹의 합의이므로 독일은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사민당이 주요 쟁점으로 삼고 있는 것은 정부가 추진하는 미국산 전폭기 구매 사안이다. 현재 독일이 운용 중인 전투기 중 미국산 핵무기 운반이 가능한 기종은 독일제 토네이도 전폭기뿐인데, 이 중 상당수가 생산된 지 40년이 넘어 퇴역할 나이가 됐다. 이에 메르켈 정부는 미국 보잉사의 F/A-18 전폭기 45기를 구입할 계획이다.
사민당은 국방부가 제시한 F/A-18 전폭기 구입안을 절대 용인하지 않겠다며 맞서고 있다. 랄프 스테그너 사민당 부대표는 “핵공유 협정이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며 “미국이 군비 증액 압박을 가해오는 가운데, 독일은 핵무장과 군비 지출에 대해 근본적 토론을 다시 해야 한다”고 말했다.
롤프 뮈체니히 사민당 국방정책 대변인은 “핵공유 협정을 맺었다고 꼭 미국 핵무기를 배치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며 캐나다의 선례를 따를 수 있다고 제안했다. 캐나다는 나토 회원국이지만 영토 내에 미국 핵무기를 배치하지 않고 있다.
지중해에 배치된 해리 S 트루먼 항공모함에 상륙한 F/A-18 슈퍼호넷 전폭기 [사진=로이터 뉴스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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