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선미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일방적으로 미국 주재 유럽연합(EU) 대표부의 외교 지위를 격하했다고 미국 CNN과 워싱턴포스트(WP)가 보도했다.
버락 오바마 전임 행정부 당시 ‘국가’로 격상됐던 EU 대표부의 지위를 다시 ‘국제기구’로 격하한 것이다. 이에 따라 데이비드 오설리번 미국 주재 EU 대사의 지위도 국제기구 대사로 격하돼 미국에서 받는 의전 지위가 낮아졌다.
트럼프 행정부가 구두나 서면으로 이 사실을 전혀 통보하지 않아 EU가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지난달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 장례식 조문 과정에서 오설리번 대사의 이름이 거의 마지막에 호명됐을 때였다.
미국 공식 행사에서는 외교관들의 착석을 위해 미국 주재 기간에 따라 순서대로 호명하는 관례가 있는데, 오설리번 대사는 그동안 20~30번째로 호명돼 왔다.
오설리번 대사와 EU는 이런 식으로 외교지위 격하 사실을 처음 확인하고 미 국무부에 문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EU뿐 아니라 워싱턴 외교계에서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외교 관계자들은 현재 백악관과 EU 간 긴장과 트럼프 대통령 취임 2년이라는 시기로 볼 때 이는 징벌적 조치라고 해석했다.
비(非)EU 국가 소속 한 외교관은 CNN에 “정치적인 의도가 있는 조치인데, 좋게 말해도 프로답지 못한 치사한 행동”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외교관은 “트럼프 행정부와 EU 사이 한동안 긴장감이 감돌며 트럼프 행정부가 EU에 적대적인 태도를 보인 적이 있지만, 이번 일은 매우 무례한 처사”라고 비난했다.
미 국무부는 누가, 언제, 왜 이런 결정을 내렸으며 EU에 왜 통보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하지 않고, 연방정부 셧다운(업무정지)으로 인해 답할 수 없다는 입장만 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미국 행정부는 무역, 이란 핵협정, 파리기후협정, 유럽 안보 사안 등을 놓고 EU와 대립 양상을 이어왔다.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 고위 관료들은 EU의 가치 자체를 의심하며 영국의 EU 탈퇴(브렉시트)를 부추기기도 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달 브뤼셀 연설에서 EU 회원국들에게 자주권을 강화하라고 촉구하며 상당히 비외교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국가와 국민의 이익이 EU의 관료주의보다 우선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오설리번 대사 격하 조치는 트럼프 행정부와 EU 간 불통을 보여주는 최근 사례일 뿐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러시아와 맺은 중거리핵전력조약(INF) 탈퇴 결정,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 철군 등에 대해 EU와 전혀 의논하지 않았다.
줄리언 스미스 신미국안보센터(CNS) 선임 연구원은 “유럽은 미국의 정책을 신문에서 보고 알게 됐다. 이는 동맹 관계라 볼 수 없다. 과거 미국 행정부는 동맹에게 이렇게 대하지 않았다. EU는 계속되는 서프라이즈에 지쳐가고 있다”고 말했다.
EU는 2011년에 외교단을 구성해 오설리번 대사의 지위를 국가 대사로 격상시키기 위해 오바마 전 행정부를 대상으로 로비 활동을 펼쳤다. 이에 오바마 행정부는 2016년에 EU 외교단의 지위를 '국제기구'에서 '국가'로 격상했다.
백악관에서 공동기자회견 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사진=로이터 뉴스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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