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에 노숙인 성지 영등포역에서 자취 감춰
구청 적극적으로 계도 활동도 효과
날씨 풀리면 다시 늘어날 수도
구청 "인권 등 문제 있어 강제 단속은 어려워"
[서울=뉴스핌] 황선중 기자 = 3일 밤 서울 영등포역과 인근 백화점 사이 공용통로. 이곳은 평소 바람이나 비를 피할 수 있을뿐더러 수십명이 누워도 될 만큼 자리가 넉넉해 노숙인들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다. 과거 여러 해 수은주가 뚝 떨어질 정도의 한파가 찾아와도 노숙인들은 이곳을 떠나지 않았다. 번거로운 규칙을 따라야 하는 좁은 쉼터보다는 자유롭게 지낼 수 있는 역사 인근을 선호한 것이다.
하지만 이날에는 단 한 명의 노숙인들도 역사 인근에 보이지 않았다. 노숙인들이 사라지니 소주병 등 쓰레기도 자연스레 사라져 역내도 한결 청결해졌다. 직장인 백모(27)씨는 "매번 역을 지날 때마다 술 취한 노숙인들이 쳐다봐 무서웠는데 갑자기 노숙인들이 사라져 신기하다"고 말했다.
3일 밤 서울 영등포역 인근 공용통로. 2019.01.03. sunjay@newspim.com |
영등포역 노숙인들이 별안간 종적을 감춘 이유는 구청이 노숙인들의 보호 시설 입소를 적극적으로 유도했기 때문이다. 주무관청인 영등포구청은 지난해 11월 중순부터 노숙인 등의 겨울철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노숙인·쪽방주민 특별보호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구청은 겨울철 한파에 따라 위험에 노출된 노숙인들이 추위를 피할 수 있게끔 보호시설을 24시간 확대운영하고 있다. 아울러 지난해 6월 이후로 야간 시간대 거리 노숙인 담당 직원을 하루 3명에서 6명으로 늘렸다. 근무 시간대도 밤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로 확대했다. 기존에는 오전 3시가 넘으면 직원 1명만 순찰했지만 현재는 6명의 직원 모두가 순찰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구청은 버스까지 활용해 노숙인들을 인근 쉼터로 이동시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구청이 파악하고 있는 영등포구 노숙인은 거리노숙인을 포함해 총 557명이다. 특별보호대책 이전 기간 일반적으로 약 50여명의 노숙인들이 영등포역 인근에 머물렀다.
영등포역 인근 주민들은 이번 구청의 적극적인 대처에 만족해하는 반응이다. 주민들은 과거부터 지속적으로 노숙인 관련 민원을 제기해왔다. 영등포구 신길동에 사는 주부 이모(48)씨는 "소변 냄새도 안 나고 쾌적해졌다"고 말했다.
다만 특별보호대책이 끝나는 3월15일 이후로는 점점 노숙인들이 다시 영등포역에서 보일 수도 있다. 한파가 풀리면 구청에서 노숙인들을 시설에 입주시킬 명분도 사라지고 노숙인들도 굳이 시설에 머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또 노숙인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인권 문제 역시 여전히 존재한다.
지난해 10월 서울 영등포역에서 노숙하고 있는 노숙인들. 2018.10.15. sunjay@newspim.com |
구청 관계자는 "현재 계도 차원의 노력은 하고 있지만 관련 법률이 없어 강제성 있는 단속은 어렵다"면서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시설 입소를 유도해 노숙인들을 조금씩 줄여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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