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석중 에디터 = 문재인 대통령이 연초부터 경제행보를 이어가고 있지만 지난해와 별반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신년사에서 "투자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고 한 말에 잠시 희망을 걸었지만, "경제를 바꾸는 길...반드시 가야할 길"이라는 대목에서는 '그러면 그렇지'라고 체념하게 된다.
지난 1년여를 실험했고, 사실상 실패로 귀결됐는 데도 '포용성장'으로 이름만 바꾼 '소득주도성장(소주성)' 정책기조를 바꿀 생각이 없음을 재확인한 것이다.
문 대통령 정부는 과거 방식의 경제정책과 체제로는 안되는 만큼 가지 않은 길을 가겠다지만, 절망한 국민들은 정부의 정책방향이 잘못됐다고 아우성이다.
온갖 경제지표들은 악화일로이고 민심마저 등을 돌리는 데도 '경제위기론'은 프레임 탓이며, 언론 탓으로 돌리는 말이 계속 나오는 걸 보면 '끝까지 가야 하나 보다'라는 절망감 마저 든다.
◆ 어려운 경제 현실을 언제까지 프레임 탓만 할 건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최근 모케이블방송사의 '2019년 한국 어디로 가나'라는 토론회에서 "(경제위기론에 대해) 보수 기득권층의 이념동맹이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을 이명박·박근혜 때로 돌려놓기 위한 작업"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국민들과 경제 전문가들은 위기라고 하지만, 문 대통령과 참모들은 전혀 공감하지 않는 것이다. 속으로 공감하면서도 겉으로 아니라고 할 수는 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현 집권세력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점이다.
지난해 7월 일자리는 고작 5000명, 8월에는 3000명 늘어났다는 통계가 나오자 언론과 경제전문가들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탓이라며 고용절벽을 해소하기 위한 대책을 내놓길 바랬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 인상은 긍정 효과가 90%"라고 답했다. 일자리가 '줄지 않고 더 늘어나지 않았느냐'는 태도다.
성장률도 그렇다. 올해 성장률은 국내외 기관별로 차이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2.5~2.8% 수준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시장 전문가들은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과 주요국들의 성장률에 비해 낮다고 지적하자, 정권 핵심들은 2.5% 후반대(?)나 성장하는 데 뭐가 문제냐는 투다.
김현철 청와대 보좌관이 최근 "우리 경제가 4~5% 성장률을 보이지 못한다고 위기라고 하는 것은 전혀 경제를 모르는 것"이라고 발언한 저변에는 2.5% 정도 성장하면 된것 아니냐는 공통인식의 발로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말 여당 지도부와의 송년 오찬에서 "경제 실패 프레임이 워낙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어 성과가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점이 안타깝다"고도 했다. 소비가 늘어나는 것은 경제정책이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인데 언론이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소비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1분기 3.5%이던 증가율이 2분기 2.8%, 3분기 2.5%로 하향 추세다. 내려가고 있는 현상을 우려해야 하는 데도 문 대통령과 참모들은 늘어난 현상만 보고 있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그동안 한국경제를 버텨왔던 수출, 그것도 반도체의 상승세가 확연히 힘을 잃었다. 지난해 연간 수출액이 6055억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지만, 12월 수출이 전년대비 1.2% 감소하며 8개월 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작년 4월에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지만, 그때는 기저효과로 인한 일시적 현상이었지만 12월 수출 감소는 추세라는 점에서 심각하다.
더욱이 전체 수출의 20% 이상을 담당하던 반도체가 8.3% 감소했다. 지난 2016년 9월의 마이너스 성장 이후 27개월 만의 하락이다.
이 현상에 대해서도 청와대와 정부는 대책을 세우기 보다 "지난해 사상 최대의 수출액을 기록했고, 연간으로 수출이 증가하고 있는데 '위기는 무슨 위기'"냐고 답할 게 분명하다.
◆ 투자는 강압으로 되는 게 아니다
문 대통령이 중소기업중앙회에서 4대 그룹 총수를 불러 신년회를 했다. 이에 앞서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연말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 권영수 ㈜LG 부회장,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과 만났다. 김 실장은 새해에도 기업인들과 계속 만나고 있다고 한다.
대통령이 재계 총수들과 만나고, 참모들이 기업들의 고충을 듣기 위해 만난다는 설명이 순수한 취지라면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방법이 잘못됐고, 의도도 불순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 총괄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4대 그룹 총수를 중기중앙회로 모은 것 자체로 모양새가 좋지 않지만, 대한상의 신년 인사회에 2년째 가지 않은 것은 속이 너무 드러나 보인다.
대기업에 대한 불쾌함, 또는 적대감을 유시민 이사장이 대신 드러냈다. "경제발전 과정에서 기업이 성장하고 수출이 늘지만, 일자리가 반 밖에 안 생기고 기업 사내유보는 엄청 커지고 민간 가계 안에서도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내부 소득 분배 문제로 시민들이 살기 팍팍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이를 바로잡아보려고 하는 것"이라는 말도 했다.
주요 대기업들이 성장과실을 따 먹지만 투자도 않고, 고용도 않은 채 내부유보를 키워 빈부격차를 심화시키고 있으므로 이를 고쳐보겠다는 의미다. 지난해 못했던 사내유보에 대한 과세를 올해 보다 강하게 추진되지 않겠느냐는 건 기우일까.
김수현 실장, 김광두 부의장이 재계 고위 인사들을 만나는 자리에 재벌저격수인 김상조 위원장의 동석은 적절치 않다. 대통령의 "투자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는 말이 "맞을래, 투자할래"로 들리는 이유다.
소통하지 않는 권력자들을 비웃는 '벌거벗은 임금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우화의 의미가 되새겨지는 새해다.
julyn11@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