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조재완 기자 = 최근 세력이 약화된 듯 했던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보코하람(Boko Haram)이 또 다시 기승을 부리면서 무함마두 부하리 나이지리아 정부가 대대적인 척결 의지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들이 전쟁을 벌인 지도 벌써 십여년째. 나이지리아 정부가 보코하람 소탕작전에서 승리하지 못하는 이유를 파이낸셜타임스(FT)가 지난 6일(현지시간) 심층 분석해 보도했다.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단체 보코하람의 습격을 받은 나이지리아 불라부린 마을.[사진=로이터 뉴스핌] |
보코하람은 나이지리아 북동부 보르노주(州)의 작은 마을 마이두구리에서 조직된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다. 이들은 여타 테러조직에 비하면 2002년 비교적 ‘평화롭게’ 조직됐으나 점차 세계에서 가장 악명높은 초국가 테러조직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지난 십여년간 나이지리아 정부는 보코하람에 수차례 승리를 선언했지만 보코하람은 치열하게 살아남았다. 세력이 약화하긴 했으나 보코하람은 여전히 나이지리아 북동부와 니제르, 차드, 카메룬 국경지대를 거점지로 삼아 민간인 학살을 자행하고 있다.
보코하람의 테러에 희생된 이만 2만7000명, 피난길에 오른 이들은 어림잡아 200만명에 달한다. 투쿠르 유수프 부라타이 나이지리아 육군 중장에 따르면 나이지리아가 보코하람 소탕작전에 들인 돈은 9억달러(약 1조62억원)에 이른다.
재선을 노리는 부하리 대통령의 압박에도 나이지리아 북동부 지역 안보는 나날이 악화하고 있다. 이 지역 안보에 수억달러의 국방비를 쏟아붓고 있지만 정부군 장비도 열악한 수준이다. 정부에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는 사이, 보코하람은 무기고를 짓고 전투력을 제고하기에 여념이 없다.
지난달 니제르와 차드 사이 국경지대 메텔에선 보코하람의 습격으로 군부대가 초토화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전투로 사망한 군인은 100여명, 실종자도 150명이 넘었다. 당시 정부는 사망자 수 23명이라는 상이한 수치를 발표했다.
정부 군은 지난주 성명을 내고 “정부 방어태세를 위협하는 테러범들의 대담한 움직임을 주시했다”며 이 같은 강력한 위협으로 인해 정부군이 작전을 계속 변경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기존의 군 전략에 대한 회의적 시선은 이미 나오고 있었다. 아부자 사회정의실현센터 소장인 에즈 오녜크페르는 메텔 군부대 습격 사건을 언급하며 군이 서로 “협력을 전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두세 시간 동안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지원군이 오지 않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군 “최고위를 물갈이 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1960년 독립 후 지난 40여년간 나이지리아는 대부분의 시간을 군 장성 출신 지도자의 통치를 받았다. 민정 실시 이후 배출한 지도자 네명 중 두명은 전직 장교였다.
지난달 보코하람의 공격을 받은 나이지리아 다로리 마을 [사진=로이터 뉴스핌] |
보르노주의 옛날 모습은 이제 찾기 어려워졌다. 한때 작은 목가들이 멀찍이 흩어져 있던 모습이었으나 지금은 요새처럼 형성된 마을들이 그물망처럼 이어져 있다.
하람보코로 인해 마을 대부분이 황폐화되는 탓에 사람들은 점점 일부 마을로 몰리고 있다. 카메룬 국경 인근의 그워자 시의 경우 인구가 최근 몇 년간 6배 가까이 늘었다.
농지는 줄어드는 반면 마을은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사람들은 이제 영양실조 위기까지 마주한 실정이다. 주민들은 변변찮은 정부 지원을 대신해 국제 원조 단체들에 생계를 의존하고 있다.
그워자 주민단체장인 로월 함만은 “우리도 한때 콩과 옥수수, 벼를 재매하고 가축을 키웠다. 그러나 지금은 마을 밖을 나가면 죽임을 당하기 때문에 모든 활동을 중단했다”고 토로했다. 황무지로 변한 마을 외곽에선 농지의 흔적조차 찾기 힘들다. 하람보코의 매복을 막기 위해 정부 군이 수풀마저 불태웠다.
주 정부나 국제단체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마을에도 주민 100만명 가량이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 구호단체 직원은 참호로 둘러싸인 마을 밖에도 “백여만명이 살고있으나 우리는 그들이 누구인지, 그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조차 모른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들만 고립된 건 아니다. 보코하람 역시 절망적이긴 매한가지다. 최근 보코하람이 마을 식료품점이나 농지를 습격하는 일이 부쩍 늘었다.
그러나 정부 군은 이런 상황은 전략에 반영하지 않은 채 그저 군수품 약탈을 위해 보코하람 기지를 공격할 계획만 세우고 있다고 아프리카 전문 컨설팅사인 페카비의 치디 놔누 전략가는 지적했다. 정부군은 2월 대선을 치르기 전에 대규모 공격을 감행할 채비를 하는 중이다.
놔누 전략가는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현재 모든 상황은 사실상 나이지리아가 다소 실패한 국가라는 점에서 기인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정부가 기본적으로 통제력을 잃었다”며 특히 북동부 지역에선 “적들이 주도권을 쥐고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나이지리아 군은 가장 중요한 전략은 가지고 있지 않을 뿐더러 전투의지도 없다”는 분석을 내놨다.
이런 상황에서도 군은 승리 선전을 하는 데 급급하다. 최근 며칠간 정부 군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사망한 보코하람 대원들의 사진과 함께 정부가 전투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홍보 게시물이 가득 올라왔다.
AFP에 따르면 나이지리아 군부대를 점거하기 위한 보코하람의 시도는 지난 7월부터 최소 19차례 있었다. 보코하람이 군만 겨냥하는 것도 아니다. 지난달에는 마이다구리를 공격하려는 젊은 여성 자살폭탄범이 체포됐다. 두달 전에는 나이지리아 적십자 직원 두 명이 극단주의자들에 살해당했다. 보코하람은 최근 몇 달간 마이다구리 인근 마을과 캠프를 수차례 공격했다.
◆ 떨어질 대로 떨어진 軍 사기…‘이대론 전투 불가’
정부가 현 문제를 제대로 직시하지 않는 가운데 부하리 대통령은 지난주 마이두구리 군 부대 연설에서 군의 완전 무장과 더 나은 임금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득했다. 있는 대로 떨어진 군 사기를 북돋아줘야 한다는 점을 깨달은 것이라고 FT는 설명했다.
그러나 놔누 전략가는 문제가 한두가지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군인 수는 늘어나는데 급여는 낮고, 식량은 부족할뿐더러 장비마저 제대로 갖춰지지 않다나는 것이다.
한 고위 관계자는 “군인들이 식량과 매트리스를 요구하고 있고, 그들을 위한 망루를 설치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며 “사기가 정말 떨어져 있다. 일부 부대에선 병영에서 나서길 거부하는 이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8월에는 특수부대원 수십명이 비행기 탑승을 거부하며 간부들을 총살하겠다고 위협한 일도 벌어졌다.
여기에 군은 지지층을 잃을 것을 우려해 군인들이 벌이는 불법 고문과 살인, 강간 등 온갖 범죄를 은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 군인은 “보코하람과 싸우겠다는 의지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며 “변화가 없는 이상 (보코하람에) 승리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함마두 부하리 나이지리아 대통령 [사진=로이터 뉴스핌] |
세계은행에 따르면 나이지리아는 지난해 군비에 16억2000만달러를 집행했다. 미국은 최근 나이지리아 공군과 3억2900만달러 규모의 헬리콥터 12대 주문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당장 시급한 야간 투시경, 헬멧, 라디오와 같은 기본 장비가 아닌, 2024년께 인도될 헬리콥터를 주문한 정부를 향해 소셜미디어에선 비난이 쏟아졌다.
영국 싱크탱크인 채텀하우스의 매튜 페이지 부소장은 보코하람 소탕을 실패한 것은 “실패한 전략 때문만이 아니라 금전적,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인 안보 분야 자체가 개혁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낙관적인 평가도 있다. 사토미 아메드 전 보르노 국가재난관리소 소장 겸 여당 의원은 안보 상황이 2014년 이후 크게 개선됐다고 진단했다. 그는 “어느 정도는 나이지리아가 전쟁에서 이겼다”고 자평하며 이제 “전쟁 이후의 위기를 직시할 것”을 촉구했다.
이에 2014년 여학생 276명 피랍 사건 당시 협상단이었던 잔나 무스타파는 “전쟁에선 이겼을지 몰라도 평화를 쟁취하진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평화를 구축할 계획조차 없다”며 “급한 불만 끄는 식”이라고 비판했다. 세간 이목이 집중될 때만 정부가 테이블에 앉는다는 것이다.
그는 보코하람과의 대화에 “국민 안보와 인도주의적 지원, 생계에 대한 접근을 동반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여기저기서 인질을 잡는 것이 더 쉬운 방법일 수는 있으나, 그러면 끝없는 악순환에 갇힐 것이다. 지금 우리가 있는 바로 이곳 말이다”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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