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선미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아르헨티나에서 무역전쟁 휴전에 합의하던 날 캐나다 당국이 밴쿠버에서 멍완저우(孟晩舟·46) 화웨이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체포했다.
이번 사건이 90일 휴전 기간 동안 진행될 양국의 무역협상에 어떠한 변수로 작용할지에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은 대(對)이란 제재를 어긴 혐의로 캐나다 당국에 멍 CFO의 체포 및 신병 인도를 요청했다. 중국은 강하게 반발하며 즉각 석방을 요구했다.
중국으로서는 멍 CFO처럼 중요한 인사가 체포됐다는 것은 천지개벽할 만큼 충격적인 사건이다. 그는 중국 정부가 기술 자립 전략의 중심 기업으로 밀고 있는 화웨이의 부이사장이자 창립자 런정페이(任正非) 회장의 딸이다.
미국은 동맹국들에 마약조직 보스와 무기상 등 범죄자들의 신병 인도를 자주 요청하기는 하지만, 중국 유수 기업의 임원을 이처럼 불시에 체포한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전문가들은 무역협상과 별도로 경제 스파이 및 제재 위반 혐의가 있는 중국 기업들에 대한 당국의 행동이 강화된 데 따른 체포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지난 10월에도 미국 정부는 벨기에 정부에 미국 기업으로부터 산업기밀을 절도한 혐의가 있다며 중국 정보 관료의 신병 인도를 요구한 바 있다. 이 또한 전례 없는 움직임이었다.
현재로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멍 CFO의 체포에 얼마나 개입했는지 또는 앞으로 개입할지 여부도 알 수 없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며칠 간 중국이 자동차 관세 등 주요 사안에 합의했다는 점에 대해 글로벌 시장과 회의적인 주식 투자자들을 설득시키기 위해 애써 온 만큼 무역협상과는 별도의 전략에 따른 움직임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중국 측에서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무역협상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중국은 이번 사건을 미국의 강경 자세가 더욱 거세진 것으로 풀이해 결국 심각한 경제냉전이 초래될 수 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에서 중국 분석가로 일했던 데니스 와일더는 블룸버그 통신에 “중국은 이번 사건을 새로운 게임이 시작됐다는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정치·통상 싱크탱크 유라시아그룹은 미국 경제전문 매체 CNBC에 “이번 체포는 미국이 (안보 문제로 중국과) 싸울 준비가 돼 있다는 신호”라며 “고위급 허가가 없었다면, 또한 양국 간 정치 기류가 우호적이었다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중국 공산당의 기조를 그대로 반영하는 관영 영자지 글로벌타임스는 트위터에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전쟁이 심화되는 상황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미국이 중국에 더욱 강경 기조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화웨이 CFO의 체포가 생생한 예”라며 미국과 중국 국기가 그려진 주먹 두 개가 마주보고 있는 사진을 올렸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 트위터 게시물 [출처=트위터] |
현재 미국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중국 기업은 단연 화웨이다. 화웨이는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을 제치고 점유율 2위를 차지했으며 삼성전자마저 추월하겠다는 야심을 감추지 않았다. 화웨이의 올해 매출액은 1022억달러로 보잉보다도 많다. 또한 5G 네트워크에서 글로벌 선두를 달리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화웨이의 5G 시장 지배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에 브로드컴의 퀄컴 인수에 제동을 걸었다. 화웨이는 미국뿐 아니라 호주, 뉴질랜드로부터도 수입 제재를 받고 있다.
멍 CFO의 체포는 화웨이가 ZTE와 같은 길을 걸을 수도 있다는 경고다. ZTE는 대이란 제재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미국의 제재를 받은 후 붕괴 직전까지 무너졌다. 현재 화웨이는 자체 반도체 개발에 큰 진전을 이루고 있으나 여전히 네트워크 장비와 스마트폰 제조를 위해 미국 기술에 의존하고 있다.
중국은 ZTE 사태로 기술 독립 의지를 불태웠는데, 화웨이가 그 전략의 중심에 서 있는 기업이다. 워싱턴 소재 싱크탱크 뉴아메리카의 그래험 웹스터는 “트럼프 정부가 큰 전략의 일환으로 나섰을 수도 있고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지만, 화웨이를 이런 식으로 공격한 것은 (무역협상의) 판을 뒤집을 수도 있는 큰 사건”이라고 말했다.
중국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으로 미국 안보 당국은 무역협상에 관심이 없다는 점이 단적으로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베이징대 국제전략연구원 왕용 교수는 “미국 안보 당국의 목표는 중국을 따돌리는 것”이라며 “협상은 트럼프 대통령과 월가가 바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멍완저우 화웨이 최고재무책임자(CFO) [사진=화웨이 웹사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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