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경비원 입주민 폭행에 뇌사 빠져
“평소에도 술만 마시면 경비원 욕하고 때리려했다” 증언
아동·여성 대상 범죄 등 사회적 약자 향한 갑질 만연
"갑질, 일터 밖 나와 사회 전반적으로 확대... 정상 사회 아냐"
[서울=뉴스핌] 김준희 기자 = 모두가 잠든 새벽, 한 40대 남성이 경비실로 뛰어들었다. 그 곳에선 고령의 경비원 A(74)씨가 눈을 붙이고 있었다. 잠결에 취객을 맞은 A씨는 속수무책이었다. 밤마다 걸어 잠그던 문도 그날은 열려 있었다. 술에 취한 아파트 주민 최모(45)씨는 A를 무자비하게 폭행했다.
지난달 29일 새벽 1시57분쯤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A씨는 정신을 잃고 뇌사 상태에 빠졌다. 중상해 혐의로 경찰에 붙잡힌 최씨는 “A씨가 층간소음 민원을 받아주지 않아 술에 취해 우발적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주민 등에 따르면 최씨는 층간소음 문제로 이웃들과 자주 갈등했다. 술을 마시는 날엔 '위층에서 애들 뛰는 소리’가 난다며 경비실에 전화해 거칠게 욕설하기 일쑤였다. 최씨의 항의에 위층 집은 학을 떼고 2개월 전 동네를 떠났다. 새로 이사 온 이웃집엔 성인들만 살지만 경비실을 향한 최씨의 욕설 항의는 멈추지 않았다.
2년 차 경비원 A씨는 최씨와 이틀에 한 번 꼴로 부딪쳤다. A씨가 근무하던 곳은 총 123세대로 구성된 1동 짜리 작은 아파트였다. 교대 근무하는 경비원 2명은 돌아가며 경비실을 지켰다.
폭행 사건이 발생한 날도 A씨는 오전 7시부터 24시간 근무 중이었다. 아파트 주민 김용숙(84) 할머니는 “A씨는 쓰레기 분리수거도 도와주고 아프면 택시도 불러주던 착한 사람이었다”며 “너무 안타깝게 됐다”고 말했다.
동료 경비원 임모(75)씨는 “경비가 무슨 힘으로 층간소음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냐”며 “민원이 들어와 위층에 전화해도 ‘나 혼자인데 누가 뛰냐’고 말하면 둘 다 주민인데 어느 편을 들 수 있겠냐”고 토로했다.
또 “경비 일을 하며 그런 일(폭행)이 또 생길까봐 걱정 된다”며 “원래 낮에는 안 잠그던 창문과 문을 무서워서 다 잠그고 있다”고 말했다. 경비실 철문에는 ‘직원 외 출입금지’ 문구가 붙었다.
지난 10월 29일 40대 입주민이 70대 경비원을 폭행해 뇌사 상태에 빠트렸던 서울 서대문구 아파트의 경비실. 2018.11.02 zunii@newspim.com [사진=김준희 기자] |
최근 경비원을 향한 폭행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9월 경기도 수원에서는 만취한 10대 청소년 신모(18)군이 79세 상가 경비원을 수차례 때려 전치 4주의 상해를 입히고 재판을 받고 있다.
경비원 등 임대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이 최근 5년간 입주자에게 폭행·폭언을 당한 사례도 연평균 740건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유한국당 박완수 의원이 주택관리공단에서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3~2017년 임대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이 악성 민원인에게 당한 사례는 3702건에 달한다.
폭언이 1358건으로 가장 많았고, 주취 폭언 1215건, 주취 행패 607건, 행패 150건 순이었다. 주취 폭행(77건)과 흉기 협박(29건)도 해마다 등장했다.
경비원을 포함해 사회적 약자들을 대상으로 삼은 무차별적 폭력과 살인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추세다. 최근 국민적 공분을 산 거제 살인사건은 폐지 줍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였다. 교남학교 장애 학생 상습 폭행 사건, 화곡동 어린이집 영아학대치사 사건도 사회적 약자를 향한 ‘갑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갑질은 자신보다 낮은 지위에 있는 자를 향한 횡포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자신의 삶이 어렵고 힘들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화풀이 대상으로 사회적 약자들을 지목한 것”이라며 “갑질이 일터 밖을 나와 사회적으로 확대되는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그만큼 우리 사회가 각박해지고 있는 단면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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