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시민권 취득한 比 미국인 아이 27만5000명"
임신 사실 숨기고 관광비자로 입국
[서울=뉴스핌] 최원진 기자= 내 자식만은 미국에서 키우겠다며 시민권을 받길 원하는 임산부들이 미국을 찾고 있다. 우리나라 유명 포털사이트에 '원정출산' 검색만 하면 '안전하게' 미국에서 출산하고 정착하는 것을 돕겠다는 업체 광고들이 나온다. 외국인들 입장에서 내 아이가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면 좋은 혜택들은 더러 있겠지만 미국 입장에서는 '남의 집 자식을 무작정 내 집에 들이는 일'과 같아 골칫거리다.
미국 콜로라도주 루이스빌의 한 병원에서 한국 출신 여성이 자신의 신생아를 안고 있다. 2011.10.31.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0일(현지시간) 공개된 미 매체 악시오스와 인터뷰에서 "미국에서 태어났다고 시민권을 줄 수 없다"며 행정명령으로 '출생시민권(birthright citizenship)'을 폐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시 말해, 미국 시민권 취득을 위해 원정출산을 근절하겠다는 것을 시사한 것이다. 미국 땅에서 태어난 모든 이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수정헌법 제14조와 대립돼 당장 시행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이지만 이날 대통령은 노골적으로 강력한 의지를 드러났다.
일각에서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 공화당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강경한 반(反) 이민 발언을 한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지만 원정출산이 미국에 고민거리인 것은 맞다. 원정출산을 위해 입국하는 외국 임산부들의 수가 어떻게 되는 지 정확한 통계 자료가 없기 때문이다.
워싱턴 소재의 싱크탱크 퓨 리서치 센터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 합법 이민자가 아닌 부모로부터 태어나 시민권을 취득한 신생아들 수는 약 27만5000명이다. 당시 한 해동안 미국에서 태어난 신생아수의 7%에 달한다. 비영리 단체 애니 E. 케이시 재단이 집계한 2016년 외국인 여성에 의해 태어난 신생아수는 91만462명으로 그 해 태어난 신생아 수의 무려 23%를 차지한다.
문제는 실제로 이보다 훨씬 더 많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미국 여행자들과 마찬가지로, 임산부들도 미국에 도착하기 전에 미국 전자여행허가제(ESTA) 신청서를 작성해야 한다. 그러나 관광 비자를 가지고 미국에서 출산을 하려고 하는 여성들은 자신의 임신 사실을 잘못 설명하거나, 노골적으로 아닌 척 거짓말해 입국한다.
'출산관광'이라고 하면 입국을 거부당할 수 있어서다. ESTA는 임산부 여행자들의 입국 결정을 내릴 때 여성의 출산일, 방문 목적과 일정, 그리고 미국의 의료 보험을 포함한 많은 요소들을 고려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지만 임신 초기의 여성들이 작정하고 입국하고자 하면 별 수 없다.
수정헌법 제14조는 "미국에서 출생하거나 귀화하고 미국의 관할권에 속하는 모든 사람은 미국 및 거주하는 주의 시민이다"라고 명시하고 있지만 미국 이민 당국은 출산을 위해 방문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불법으로 여기고 있다.
실제로 2015년 3월 캘리포니아주 연방 당국은 부유하고 임신한 중국 여성들이 미국 시민권을 얻고자 아이를 낳기 위해 미국으로 가는 것을 도우는 일종의 '임부 상담소' 업체를 급습한 사례가 있다. USA 투데이에 따르면 업체는 약 8만달러(9120만원) 정도를 받고 임산부들에게 비자 발급을 도와주고, 체류할 수 있는 숙소를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은 무조건적 출생시민권에는 제한을 두고 있지만 이렇다할 처벌이 없는 것도 현실이다. 종종 원정출산이 들통난 입국자들에게는 평생 재입국이 금지되기도 하지만 ESTA가 이를 예방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임신 기간을 고려해 "비자신청서에 작성"하라는 권고 정도다.
미국에서는 외국 부모의 원정출산으로 태어나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아이들을 '앵커베이비'라고 부른다. 말그대로 미국 땅에 닻을 내려 정착한다는 의미다. 앵커베이비들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세금을 내는 미국 시민들에게 돌아간다.
미 이민연구센터가 연방 통계국의 지역사회 설문조사(ACS)를 바탕으로 분석한 바에 따르면 2014년 불법 이민자들로부터 태어난 신생아 비중은 7.5%다. 캘리포니아와 텍사스주를 제외한 그 어느 주보다 많은 규모다. 이들 중 상당 수가 미국의 의료보험이 없이 출산하고, 자연스레 돌아가는 복지 혜택으로 인한 비용은 시민들 몫이다. 미국 시민들의 혈세로 걷어들인 출산 관련 복지 예산 중 약 25%, 연간 24억달러(2조7360억원)가 합법·불법 이민 임부들에게로 돌아간다.
이밖에도 자동으로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아이들은 극빈층에 제공되는 국가 건강보험 메디케이드(Medicaid), 장애 복지, 무상급식, 푸드스탬프 대상이 되기도 하는 데, 불법 이민 부모들은 이 돈을 다른 곳에 쓸 수도 있다. 결국, 연방 정부 입장에서 원정출산은 복지 예산에 재정 짐이 될 수 밖에 없다.
wonjc6@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