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악의 폭염에 덴 시민들 "무더위가 무섭다"
미세먼지에 폭염까지…극심한 피로감·공포 확산
[서울=뉴스핌] 김세혁 기자 = 올여름 유례없는 폭염에 충격을 받은 사람들이 극심한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111년 만에 찾아온 무더위는 역대 혹서기 기록을 갈이치우며 한반도를 펄펄 끓게 했다. 가뜩이나 미세먼지에 지친 사람들은 폭염의 역습에 “날씨가 공포스럽다”고 하소연한다.
◆온열질환 위험에 노출된 외근직…“여름이 무섭다”
보험업을 하는 박지연(65·서울 목동)씨는 올해 누구보다 힘든 여름을 겪었다. 하루 많게는 10명의 계약자를 만나는 그는 서울 한낮 기온이 40도에 육박한 올여름 하루하루가 강행군이었다. 지하철, 버스를 기다리는 중에 쓰러질 듯 현기증을 느꼈고, 자외선에 살갗이 일어나 피부과 치료를 받아야 했다. “7월 말 지하철에서 구토, 어지럼증에 느끼며 1분여 쓰러진 적이 있다”는 그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병원을 찾았더니 ‘열사병’이었다. 60평생 처음 걸리는 병”이라고 말했다.
2011~2018년 여름 발생한 온열질환자 및 온열질환 사망자 [그래픽=김세혁 기자] |
사상 최악의 무더위에 온국민이 혼쭐이 났지만 박씨처럼 60세가 넘은 나이대들은 특히 위험하다.
21일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올여름(5월 20일~8월 15일) 온열질환에 걸린 환자는 총 4301명으로 역대 가장 많았다. 2016년 2125명의 2배를 넘기는 수준이다. 특히 박씨 같은 65세 이상 온열질환자는 전체의 31%나 됐다. 같은 기간 발생한 온열질환 사망자는 역대 가장 많은 48명으로, 이중 65세 이상은 약 35%(17명)나 차지한다.
박씨처럼 한여름에도 밖을 돌아다녀야 하는 외근직은 올여름 같은 유례 없는 더위가 힘겹다. 도로포장 작업을 하는 L(56·김포시)씨는 “한여름 햇볕에 달궈진 포장도로 온도는 50도에 육박하는데, 펄펄 끓는 아스콘 작업은 10분만 해도 몸이 녹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올해 너무 더워 정신이 혼미한 경험을 난생처음 해봤다. 내년에도 이렇게 더운 건 아닌지 무서울 정도”라고 혀를 내둘렀다.
◆미세먼지에 폭염…자연재난에 피로·공포 극심
미세먼지가 일상화된 마당에 무더위까지 극성을 부리면서 국민들이 느끼는 피로감은 극에 달했다. 다행히 한반도가 펄펄 끓던 올여름 미세먼지는 ‘얌전히’ 지나갔지만 반대의 경우였다면 상황은 훨씬 힘들었을 게 빤하다.
[서울=뉴스핌] 이윤청 기자 = 111년 기상 관측 사상 가장 더운 날씨가 예상되는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인근에서 시민들이 걷고 있다. 기상청은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경보를 발령하고 서울 낮 최고기온이 39도까지 오르면서 무더위가 계속 이어지겠다고 예보했다. 2018.08.01 deepblue@newspim.com |
미세먼지나 폭염 등 과거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재난들이 현실로 다가오면서 일부는 막연한 두려움마저 호소한다.
박씨는 “폭염이 국가나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다다랐다는 사실이 공포로 다가온다”고 토로했다. 그는 “더위를 어찌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무기력감을 느낀다”며 “당장 내년에도 이렇게 더운 건 아닌지 여름 자체가 무서워졌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올여름 폭염이 사람들에게 안겨준 피로나 공포가 지진에 준한다고 진단한다. 국가차원의 대응체계가 없다면, 육체는 물론 정신적 피해가 심각해지리라는 우려도 나온다.
한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올해 무더위가 몰고온 공포감은 지진, 쓰나미 등 불가항력의 재난에 일본인이 느끼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온열질환에 대한 보다 광범위한 홍보와 함께, 무더위가 초래할 수 있는 공포감 등 정신적 피해에 대한 예방 매뉴얼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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