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2시간 근무제 시행 이후 '칼퇴근'늘고 회식 줄어들면서 외식업계 근심
장기적인 경기불황 속에 가족단위 외식 지출도 줄어
[서울=뉴스핌] 윤용민 구윤모 기자 =주당 52시간 근로가 1일부터 시행되며 '밤풍경'이 변하고 있다. 시행 열흘이 지나면서 직접 타격을 입는 식당은 주인들의 하소연이 이어진다. '칼퇴'(정시퇴근) 이후 연인이나 가족 모임이 활발해지면서 매출이 늘어나 웃음짓는 식당도 두드러지고 있다.
◆"불경기에 저녁장사마저 안되니 걱정이에요"
10일 오후 4시쯤 서울 여의도의 한 낙지요리 전문점.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수정(62·여)씨는 전날 매출을 계산하며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달부터 주 52시간 근무제가 본격 시행되면서 저녁 매출이 반 이상 줄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이후 저녁손님이 거의 끊겼다"면서 "점심장사로는 비싼 임대료, 관리비,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해 계속 적자를 보고 있다"고 토로했다.
서울시내 한 사무실 모습(참고사진) /이형석 기자 leehs@ |
대기업 직장이 몰려있는 지역 음식점 상권이 직격탄을 맞은 모양새다. 직장인들이 정시퇴근하고 회식 횟수도 줄어들며 매출 하락이 두드러지고 있다.
여의도에서 곱창집을 운영하는 이윤정(49·여)씨는 "여의도는 직장인이 많은 상권 특성상 주말장사가 안되기 때문에 평일장사가 전부"라며 "경기가 안 좋아 매출이 계속해서 줄고 있는데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걱정이 늘었다"고 푸념했다.
더욱이 정부에서 주 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하며 기대한 새로운 소비 창출 효과도 아직까지 눈에 띄는 성과로 나타나지 않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장기적인 경제불황이 이어지면서 소비자들의 소비심리가 위축됐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가족단위 수요가 많은 서울 노원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김춘식(61·남)씨는 "직장인들이 일찍 퇴근하면 가족들과 함께 외식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면서 "경기가 어려우면서 외식 자체를 하지 않는 분위기인 것 같다"며 실망감을 내비쳤다.
김기흥 경기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정책이 시행되면서 단기적으로 취약업계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면서 "현재 논의되고 있는 탄력근무제 적용기간 연장 등을 통해 외식업 같은 취약업계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근무시간 단축에 대한 영향이 아직은 없는 것 같네요"
반면 큰 변화가 없다는 목소리도 있다. 10일 낮 12시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 인근 한정식집. 점심 손님을 준비하는 사장 이모(여·49)씨는 바쁘게 손을 놀리며 "여긴 법조인들이나 전문직이 모인 곳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매상이 특별히 줄진 않았다"고 말했다.
이씨는 "회식 손님이 줄까봐 사실 걱정을 많이 했는데 아직까지는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타격이 없다"면서 "그래도 조금 더 지켜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다른 음식점 역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법원청사 인근에서 1인분에 6500원짜리 김치찌개와 7500원짜리 제육볶음을 파는 윤모(여·61)씨는 "장사 잘 된다고 하는 장사꾼이 어디있겠냐만은 사실 아직은 영향이 없는 것 같다"며 웃어 보였다.
오히려 윤씨의 '근심포인트'는 다른 데 있었다. 그는 "주 52시간보다 문제는 최저임금이 또 올라갈까봐 그게 겁이 난다"며 "진짜 시간당 1만원이 되면 문을 닫아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줄어든 근무시간 탓에 커피점 풍경은 조금 달라졌다. 이날 오후 1시30분 서울중앙지검 앞 한 커피가게. 일주일전만 해도 이 시각까지 북새통을 이뤘던 이 곳은 텅텅 비어있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바로 회사로 복귀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만들어낸 풍속으로 보였다. 매장 아르바이트생 A씨는 "사람들이 테이크아웃으로 커피를 사가는 경우가 많이 늘었다"면서 "하지만 아직까지 매상은 줄지 않았다"고 귀띔했다.
한정식집 주인 이씨는 "14년전에 주 5일제가 도입될 때도 별의별 이야기가 다 나왔지만 결국 우리는 망하지 않았다"며 "어떤 변화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결국 장사꾼은 적응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