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26일 하드디스크 원본 없이 문건 410건만 검찰에 제출
검찰 "진실규명 위해선 자료 더 확보해야"
[서울=뉴스핌] 이보람 기자 = 검찰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한 가운데 증거자료 제출 단계에서부터 사법부와 힘겨루기하는 모양새다.
특히 검찰이 앞으로 사법부의 '심장'인 대법원 법원행정처를 강제수사할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27일 검찰에 따르면 법원행정처는 전날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문건 410건과 이를 추출하는 과정을 담은 포렌식 자료를 임의제출 방식으로 검찰에 제출했다. 지난 19일 검찰이 법원에 관련 자료를 요청한 지 일주일 만이다.
하지만, 법원행정처는 하드디스크 원본 제출은 거부했다. 현재 제기된 의혹과 관련이 없거나 공무상 비밀이 담긴 파일이 대량으로 포함돼 임의제출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검찰은 곧바로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검찰 측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무엇보다 객관적 자료를 통해 사실을 확인해야 할 부분이 많다"며 "대법원장께서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임의제출을 요청한 것"이라고 강제 수사 대신 임의제출을 요청한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행정처에서 제출한 410개 문건만 가지고 이번 의혹에 대해 결론을 내린다면 누구도 그 결론을 수긍할 수 없을 것"이라며 "진실규명을 위해선 객관적 자료를 더 많이 확보해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김명수 대법원장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의 '재판 거래' 의혹이 확산되고 있는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2018.06.05 leehs@newspim.com |
검찰은 또 이번 의혹의 총책임자로 지목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이 사용하던 컴퓨터가 복구불능 상태로 '디가우징' 됐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디가우징'은 하드디스크 등 저장장치에 저장된 자료를 강력한 자기장을 이용해 복구가 불가능하도록 삭제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이번 의혹의 중점에 선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행정처장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를 확보하더라도, 관련 자료를 복구해 내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검찰이 한 차례 임의제출을 통해 핵심 증거가 될 수 있는 자료들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반응하면서 직접 추가적인 증거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속내를 대놓고 드러낸 셈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조만간 검찰이 압수수색 등 강제 수사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실제 검찰 내부에서도 제대로된 수사를 위해서는 강경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조심스레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검찰이 압수수색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압수수색 영장 청구 절차가 필수적인 데다 법원 압수수색이라는 큰 부담을 검찰이 떠안아야 하는 탓에 현실적으로 어려울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의 또다른 선택지는 다시 한 번 법원에 하드디스크를 포함한 자료를 임의제출 방식으로 요청하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이 다시 한 번 임의제출을 요구할 경우 또다시 검찰이 원하는 자료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할 가능성이 남아있다. 첫 임의제출 때처럼 자료 확보까지 시간이 상당기간 소요돼 수사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검찰과 사법부가 사전에 다시 한 번 의견을 조율해 협조할 수 있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검찰 역시 이를 기대하는 상황으로 전해진다.
실제 법원행정처는 전날 자료를 제출하면서 추가적인 자료 제출 가능성을 열어뒀다. 행정처는 "관리자로서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이 마련되지 않은 현재 상황에서 임의제출은 곤란하다"고 언급했다.
검찰은 아직까지 추가 수사 방식에 대해서는 결정을 내놓지 않은 상태다. 검찰 측 관계자는 "수사 목표에 따라 임의제출이든 강제수사든 수사방식을 추후에 결정할 것"이라며 "아직 이에 대해 얘기할 것이 없다"고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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