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카 마시고 술김에 했다"에서 "의도한 행동"으로 진술번복
러시아 황제 이반4세 두고 '희대의 폭군' vs '일방적 매도' 논란
[서울=뉴스핌] 조재완 인턴기자 = 세계적 명작 '이반 뇌제와 아들'을 금속막대봉으로 훼손한 남성이 러시아 대제 이반 4세의 평판을 회복하려 이 같은 행동을 했다고 주장했다. 로이터통신은 29일(현지시각) 이 남성이 앞서 술김에 작품을 파손하려 했다고 주장한 기존 진술을 번복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사건으로 '이반 뇌제와 아들' 작품 중앙 일부가 훼손됐다 [이미지=로이터 뉴스핌] |
지난 25일 모스크바 트레티야코프 국립미술관에 전시된 작품 '이반 뇌제와 아들'이 훼손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술에 취한 한 남성이 전시장을 돌아다니다 관람객 접근 방지용 금속막대봉으로 작품을 내리친 것이다. 이 사고로 그림 액자가 깨지고 작품 최소 3곳 이상이 찢어져 손상됐다. 러시아 사실주의 회화의 거장으로 불리는 일리야 레핀의 1885년작 '이반 뇌제와 아들'은 19세기 러시아 회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현장에서 체포된 이고르 포드포린(37세)은 애초 보드카를 마시고 무언가에 압도돼 일어난 일이라고 진술했으나 이날 모스크바 법정에서 이를 번복했다. 술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이유에서 파손하려 했다는 주장이다. 그는 사건 전 보드카를 마셨다는 기존 진술을 부인하고 애초에 의도를 가지고 그림에 접근했다고 진술했다.
포드포린은 법정에서 "그림은 거짓"이라며 "이반 뇌제는 성인(聖人)들 축에 낀다"고 진술했다고 로이터는 현지매체 보도를 인용해 전했다. 제정 러시아 최초의 황제 이반 4세는 공포정치로 '뇌제'로 불린다.
포드포린은 또 인권국 직원에게 "레핀의 작품이 잘못됐다고 생각한 지 오래됐다"며 "미술관에 들어선 순간 참을 수 없었다. 외국인들이 그 작품을 보고 러시아 대제를 뭐라고 여기겠나. 외국인들이 우리를 나쁘게 생각하는 걸 내가 오히려 막은 것이다"라고 주장했다고 러시아 일간지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지가 전했다.
훼손된 작품은 아들을 몽둥이로 내려쳐 죽인 이반 4세의 실화를 소재로 그려졌다. 이반 4세는 며느리 옷매무새를 지적하다 아들이 대신 나서 변호하자 그를 살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작품 속에서 이반 4세는 슬픔에 찬 얼굴로 피 흘리며 죽어가는 아들을 끌어안고 있다.
이반 4세가 '희대의 폭군'이란 일반적인 평가와 달리 최근 그를 재평가하는 정부 차원의 해석이 나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지난해 러시아 정부는 이반 4세의 공포정치가 철저히 서유럽 관점에서 평가돼 그에 대한 평가가 적절치 않다고 주장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아들을 죽인 이반 4세가 유죄인지 아닌지는 분명하지 않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chojw@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