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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상표권 논란, "오너 개인 돈줄" vs "정당한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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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표법상 대표명의 등록 가능, 특허청 "법인 등록 유도할 것"
업계 "상생 기류…투명한 운영 우선"

[서울=뉴스핌] 장봄이 기자= 프랜차이즈 가맹본부와 가맹점 간에 문제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엔 가맹본부 대표들이 상표권 소유·이전 문제와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업계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일부 가맹본부는 해외 상표권 사례를 제시하며 부당함을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해외와는 산업 환경이 워낙 다른데다, 가맹점이 지급한 상표 수수료를 대표 혹은 오너 개인이 사적으로 챙겼다면 문제라는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1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김철호 본아이에프(본죽) 대표와 최복이 본사랑 이사장, 박천희 원앤원(원할머니보쌈) 대표는 상표권 수익을 회사가 아닌 본인 명의로 챙겨 회사에 손해를 끼친 배임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기소된 상태다.

서울 명동거리에 한 치킨 프랜차이즈 매장 모습 (참고사진) /김학선 기자 yooksa@

본죽 김 대표와 최 이사장은 지난 2006년 9월부터 2013년 5월 사이 회사에서 가맹 사업에 사용할 목적으로 개발한 본도시락과 본비빔밥·본우리덮밥 등 상표를 자신들 명의로 등록, 상표사용료 명목 등으로 총 28억원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이 회사 대표의 상표권 제도 악용을 업무상 배임죄로 본 첫 사례로, 재판 결과에 따라 추가적인 수사나 소송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검찰 측은 가맹사업을 위해 개발한 상표를 개인 명의로 등록해 수수료를 수수하는 업무 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밝혔다.

◆상표법상 대표 명의 등록 가능…"개인 아닌 본부-점주 간 상표계약"

현행법상 상표권을 개인 명의로 등록한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상표법 제3조 1항에 따르면 국내에서 상표를 사용하는 자 또는 사용하려는 자는 자기 상표를 등록받을 수 있다. 

지난달 개정된 2항에는 상품을 생산·제조·가공·판매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가 공동으로 설립한 법인이 단체표장을 등록받을 수 있도록 법인 대상의 범위를 넓혔다. 현재 개인이나 법인 모두 특별한 제한없이 상표권을 등록할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프랜차이즈 특성상 상표는 가맹본부(법인)나 가맹점주에 의해 사용되는 것이지, 본부 대표 등 특수관계인이 상표를 직접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또 점주는 상표권 수수료를 지급하고 본부는 상표권 관리 등 비용을 부담하게 되는데, 지급수수료가 대표 몫으로 들어가면 사금고화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프랜차이즈 본부 관계자는 "상표권 소유 문제로 인해 가맹점주와의 분쟁이 발생하고 내부 문제가 발생한다면, 상표권자를 가맹본사로 돌리고 투명하게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전했다.

특허청이 공개한 '미국 상표법 제도에 관한 분석'에 따르면 미국 상표법은 사용주의를 따르고 있고, 국내에선 상표법상 등록 권리자에게 '독점 배타권'을 부여하는 등록주의를 취하고 있다. 프랜차이즈 상표권 문제를 선진국 사례와 단순 비교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독점배타권은 특허를 등록받은 자만이 기술을 사용할 수 있고, 타인은 이 기술을 사용하기 위해 적정한 사용료 지급 또는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의미다.

한 전문가는 "대표 개인이 소유하고 있으면 본부에 문제가 생겨도 상표권은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며 "상표권 이전 등 결정도 쉽기 때문에 이러한 장점을 이용하기 위해 개인 등록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점주들은 상표수수료가 대표 개인 앞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서울 영등포구에 김밥 가맹점주는 "우리는 가맹본부를 보고 본부와 계약을 맺은건데 그 수수료를 대표가 개인적으로 받는다는 건 이해할 수 없다"면서 "상생을 외치는 상황에서 서로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bom224@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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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제6사 사장 김일성의 출현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동북항일연군 제6사 사장 김일성(金日成)이 1937년 11월 13일 사살된 이후부터 한동안 이 부대에 대한 동향이 파악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38년 봄부터 갑자기 새로운 김일성(金日成)의 움직임이 일본 경찰 정보망에 잡혔다. 신임 제6사 사장 역시 소련으로부터 파견돼 온 자였다. 그는 소련 지령으로 전임자 김일성(金日成)의 이름을 이어받은 것이었다. 후임 제6사 사장 김일성(金日成)은 1939년 봄에 사(師)를 묶어서 방면군(方面軍)으로 편제를 변경하는 동북항일연군 제3차 개편 때 제1로군 제2방면군장(方面軍長)이 되었다. 소련은 중일전쟁 발발 후, 일본이 소련을 공격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동북항일연군에 적극적인 군사 지원을 하였다. 그중에서도 소련군 내 한국·중국인 군관들에게 유격 전술을 교육하여 파견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신임 제6사(제6사는 동북항일연군 제3차 개편 때 제2방면군이 된 부대) 사장으로 취임한 김일성(金日成)은 본명이 김일성(金一星)이다. 김성주 별호와 같다. 그는 1930년 5월 30일 간도 폭동 사건 때 용정에 있었던 한인이 다니는 대성중학교 학생이었다. 이날 밤(1930년 5월 30일) 김일성(金一星)은 용정역 기관차에 불을 지르는 등의 행위로 일본 경찰에 붙잡혔으나, 서울로 압송되기 전 탈출에 성공했다. 그 후 소련으로 건너가 적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련 공산당 지령에 따라 1938년 동북항일연군으로 파견돼 온 것이었다. [사진= AI 생성 이미지]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1938년 4월 26일 밤 제2방면군은 평안북도 후창(厚昌) 경찰서 부흥(富興) 주재소 대안 임강현(臨江縣) 제3구(三區) 6도구(六道溝)를 습격하였다. 병력은 약 500명이었다. 모두 개인화기를 소지하고 있었고, 경기관총 6정도 출동하였다. 총 5개 대(隊)로 나누어 나팔을 불며 공격했다. 일본인 세무서원 2명, 중국인 세무서원 1명을 현장에서 사살했다. 지역 주민 50여 명을 납치해 갔다. 현금 2천 원, 식량 1만 원 상당을 탈취하였다. 이에 일본군과 만주군은 중일전쟁 후방지역 안정화 차원에서 동북항일연군 토벌 작전을 강도 높게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군에 의한 토벌뿐만 아니라, 심리전, 교통 차단 등 다양한 봉쇄 작전을 펼쳤다. 그 결과 1939년 봄이 되면 동북항일연군 제2·3로군의 전투력은 거의 소진돼 버렸다. 제2·3로군 중 전투력을 일부 보전한 부대는 소련으로 도주하거나, 소만 국경 지대로 은거했다. 전투력을 유지한 부대는 제1로군 뿐이었다. 이때 제1로군 사령관은 중국인 양정우(楊靖宇)였고, 부사령관은 중국인 위극민(魏極民), 사령관 비서처장 겸 군수처장은 앞서 설명한 한인 오성륜(吳成崙)이었다. 총병력은 3000여 명이었다. 제1로군은 동변도(東邊道)라 부르는 길림, 통화 간도 일대의 험준한 산악지대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부대 정비에 들어갔다. 이때 제3차 부대 개편을 단행하였다. 전투력을 유지하고 있다고는 했지만, 병력 손실이 큰 데다, 추가 병력 보충이 어려웠다. 그래서 기존의 로군 아래 군(軍)을 없애고 군(軍) 예하 모든 사(師)를 통합하여 제1·2·3방면군으로 바꾼 것이다. 제1방면군장은 조아범(曺亞範), 제2방면군장은 김일성(金日成), 제3방면군장은 진한장(陳翰章)이었다. 일본군과 만주군은 1939년 10월부터 1941년 3월까지 1년 6개월간 더욱 강하게 동북항일연군 토벌 작전을 전개했다. 이때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양정우가 1940년 2월 23일 몽강현(濛江縣) 남쪽 490고지에서 사살되었다. 그는 부하 몇 명만을 거느린 채 끝까지 항전하다 죽었다. 양정우가 죽자, 부사령관 위극민, 비서실장 겸 군수처장 오성륜,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 등 11명의 동북항일연군 수뇌부는 1940년 3월 사령관 양정우 사후 문제를 논의했다. 첫째 군은 대중 속으로 들어가 병력 획득 공작을 벌인다. 둘째 소부대로 분산하여 가능하면 북상하여 제2·3로군과 합류한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이때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부대를 10명 이하의 여러 개의 소부대로 나누어 북상하도록 하면서 모두 '김일성 부대'라는 명칭을 사용하도록 하였다. 이에 김성주가 속한 소부대도 '김일성 부대' 명칭을 사용하면서 소련 방향으로 이동하였다. 이 무렵 일본군과 만주군은 머리를 빗는 식의 섬멸 작전을 뜻하는 빗질 작전, 쇠파리처럼 끝까지 따라붙는다는 쇠파리 작전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제1로군 제1방면군장 조아범이 1940년 4월 8일 부대 내 한중간 민족 대립으로 한인 부하로부터 암살당했다. 제3방면군장 진한장은 1940년 12월 8일 일본군에게 사살되었다. 제1로군 사령관 비서실장 오성륜은 1941년 1월 30일 일본군에게 투항했다. 군 수뇌부가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자, 동북항일연군은 급속하게 무너졌다. 1941년 3월 말 기준 유기 시체 1282구, 투항 1040명, 체포 890명의 손실을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부대를 여러 개의 소조직으로 재편하여 각자도생식(各自圖生式: 제각기 살길을 도모함)으로 도주하여 소련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하였다. 이때 소련으로 도주한 동북항일연군은 대략 300명이었다. 주요 인물을 살펴보면, 제2로군 총사령 주보중(周保中), 제3로군 총사령 장수전(張壽錢), 제2로군 참모장 최용건(崔庸健), 그리고 문제의 김성주와 그의 처 김정숙(金靜淑)도 이들 무리에 끼어있었다. 1940년 11월이었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2026-03-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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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재룡, 강남서 사고 뒤 도주 [서울=뉴스핌] 김가희 기자 = 서울 강남에서 교통사고를 낸 뒤 현장을 떠난 배우 이재룡이 경찰 조사에서 음주운전이 아니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8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강남경찰서는 도로교통법 위반(사고 후 미조치) 혐의로 이씨를 조사하고 있다. 이씨는 지난 6일 오후 11시께 서울 강남구 청담역 인근 도로에서 차량을 운전하던 중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은 뒤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현장을 떠난 혐의를 받는다. 이재룡. [사진=CJ E&M] 사고 이후 이씨는 차량을 자택에 주차한 뒤 지인의 집으로 이동했다가 경찰에 의해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이 실시한 음주 측정 결과 이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정지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다만 약물 간이 검사에서는 음성 반응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운전 당시 음주 상태가 아니었다"는 취지로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차량 블랙박스 영상 등을 토대로 사고 당시 상황과 음주 여부 등을 확인하고 있다. 한편 이씨는 과거에도 음주와 관련한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2003년 강남에서 음주운전 사고를 낸 뒤 음주 측정을 거부해 면허가 취소됐고, 2019년에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강남의 한 볼링장 입간판을 파손해 재물손괴 혐의로 검찰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rkgml925@newspim.com 2026-03-08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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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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